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32장,언약파기

호리홀리 2015. 2. 9. 15:11

25-40장까지는 모두 성막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성막이 얼마나 핵심적인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25-40장이 모두 성막문제인데 32장에 유일하게 금송아지 범죄 사건이 나온다.

그러므로 금송아지 사건은 성막과 관련하여 이해해야 한다.

 

금송아지 사건의 독특한 성격 : 금송아지 사건 전후에 성막에 대한 지시가 있다.

금송아지 사건은 성막이라는 내용에서 나타남,

 성막과 깊은 관계가 있다.

출애굽기 24장에서 피의 맹세로 다 순종하겠다 했으면서도 금송아지를 만든다.

 

모세가 산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자 이때까지 중보자 모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웠다.

불안해진 백성들은 ‘뭔가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님을 보이는 형태로 가시화시킨 것이다(후에 여로보암은 똑같은 죄를 범한다. 북방에는 법궤가 없으므로 금송아지를 만든다).

이것은 제 2계명을 범한 것이다.

 언약이란 ‘율법의 순종’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는데 이 사건은 스스로 율법의 불순종 = 언약파괴가 되고 말았다.

이스라엘이 스스로 언약을 파기한 것이다.

레위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을 도륙한다.

 

모세가 율법의 판을 깨뜨려버린 일은 모세의 화난 결과라기 보다는 깨어진 언약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계명의 판 - 증거의 판. 율법이 기록되어 있다.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기록된 판이다

 

. 판이 깨어짐은 언약이 깨어져 버림 - 언약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모세가 목숨을 걸고 기도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חלס;살라 = 무조건 용서) - 하자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계명을 다시 주심,

다시 증거의 판을 주심.

즉 언약의 갱신이다.

이것은 중보자 모세의 간구, 그리고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깨어진 언약이 회복된다.

 이 모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 34절이다.

 나의 사자가 나의 앞서 행하리라. 즉, 하나님이 동행하시겠다는 응답을 듣는다.

 

이 사건이 성막사건 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는, 깨뜨려진 언약이 성막에서 치유된다는 것을 말한다.

 성막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과 이 언약의 갱신의 의미와 관련있다.

이것이 레위기에서 제사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성막은 이동식 궁궐이다.

 이스라엘이 아직 약속의 땅에 정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후에 솔로몬의 성전은 정착된 것이다.

 

21절 רמת(타메르; 쓰게하다, 고통하게 하다)는 노엽게 하지 말라 → 신약에서 성령을 근심되게, 슬프게하지 말라 즉, 성령을 거역하여 근심케하지 말라고 한다.

너희의 반역을 내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처벌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볼 때 신약에서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 앞에 삼가 조심할 것이며, 순종하고, 반역하면 처벌당할 것을 말씀하신다.

 이렇게 볼 때 말락 아도나이는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다.

 그분은 과연 어떤 권세를 가진 분이신가?

 그 안에는 나의 이름(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이름은 매우 중요한 뜻이 있다.

 םשׁ = ονομα(쉠 = 오노마; 이름).

신약에서도 그의 이름을 믿는다고 했다.

그리고 구약에서 םשׁ은 하나님의 그 인격 자체를 표현하기도 한다(시 21편).

 

내 이름이 그 안에 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3:13에 볼 때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즉, 그가 어떤 분이냐. Who is he? 다시 말해서 내 이름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락 아도나이를 통해서 계시하시겠다는 의미이다.

3:13-14에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성을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행하실 역사를 인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나타내 보이겠다.

 

내가 이 사자를 통하여 나를 알리겠다는 즉, 나의 이 사자를 통하여 나의 역사를, 나의 일을 이루겠다는 의미이다.

또한 말락 아도나이의 사역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이스라엘을 안식의 땅까지 보호하여 들이시겠다는 것이다.

 

22절 말락 아도나이의 음성을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 같다.

 말락 아도나이와 하나님의 unlty가 암시되고 있다.

그리고 context를 살펴보면, 이 구절의 문맥적 상황을 보면 23:24-33에서 하나님 섬김의 순수성을 말하고 있다.

 

 너희는 참된 신앙으로 성결하게 살아야 할 것을 말하시면서 왜 성결히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신 것 즉, 말락 아도나이가 너희 가운데 계셔서 너희를 인도해 가시기 때문이다.

모세가 너희를 인도해 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신다고 했는데 이는 실제로는 말락 아도나이를 통한 임재에 의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해 가신다.

이것과 유사한 신약성경은 요한복음이다.

 

말락 아도나이에게 권세와 위엄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요,

그리고 절대순종을 요구하심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23장을 보면 이스라엘의 대적에 대해서 하나님이 대적하시겠다.

 즉, 하나님이 대적하심은 말락 아도나이의 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말락 아도나이는 신적인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