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35장~40장,구속사

호리홀리 2015. 2. 9. 15:22

35장 성막을 짓는다. 40장 성막 세우는일, 성막 봉헌식으로 마침.

 

출애굽기가 성막사건으로 종결짓는 것은 구속사의 흐름이 성막과 큰 관련이 있음을 말한다.

 구원의 마지막 모형은 성막으로서, 하나님이 그들을 다스리시며 통치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구원의 완성도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이 성막사건은 큰 의미가 있다.

 

성경은 역사 이야기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적을 가지고 나아가는 역사이다.

그 역사의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역사를 마태복음 1장을 통해 관찰하는데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 즉 창세기 12장으로 연결 올라간다.

즉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약속(세상으로부터 구원하시겠다는 약속),

 

 이 약속이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으나 아브라함 때 이미 맺어지고 성취되어 가고 있다

. 이 약속이 일단 다웟에게서 완성되었지만, 그러나 구약의 왕국은 그림자, 예표이다.

이 왕국이 몰락, 부패, 와해된다.

 

성경이 역사를 지배하고 있다.

성경의 역사를 강조할 때 중요한 면은 역사는 변하는 것, 변화를 전제로 한다.

역사 통해, 본질적으로는 아브라함 통해 이루어 왔으나, 각 시대마다 형식에서는 변화와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한 시대의 계시, 규례들이 다른 역사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있다.

여기서 구속사적 역사가 역사를 통해, 또한 상황에 따라서 구속사적 형식이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진다.

 

구약 - 짐승잡아 제사 = 예수님의 사역의 예표.

 

신약 - 짐승잡아 제사하면 죄 = 예수님의 구속사역 완성. 지금은 성만찬으로 기념.

 

율법이 타락전 : 아담이 지킬 수 있다.

 

       타락후 : 인간이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됨, 정죄하는 의미를 갖는다.

 

   성령오신후 : 성령 안에서 다시 지킬수 있는 법이 됨.

 

같은 율법이라도 시대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성경의 개념이나 중요사상 이해할 때 그것이 갖는 의미가 다름, 즉 어떤 역사적 상황에 서 있는가,

 구속사적 상황에 관련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봐야한다.

 항상 변해버린 구속사적 상황에 맞추어 해석하라.

 

성경을 역사적 시각으로 보는 관점을 이해하라.

 각 시대마다 역사 안으로 초청하여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통하여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Theophany로 보여진다.

 시내산에서 불꽃, 천둥, 번개, 구름기둥, 불기둥 등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는 이와같은 또는 성막 같은 물리적 처소 통해 임재해있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구약에서도 인격적, 영적 임재이셨다.

 하나님과 다른 인격이신 분이 인격적으로 임재하셨다.

 이것은 성부 하나님의 사역인지 성령 하나님의 사역인지 정리해야 겠으나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신구약에 하나님의 사역의 본질은 차이가 없다.

 구약에도 단순히 외적 의식 통해 성부만의 사역은 아니었다.

스데반의 설교에서 보면 ‘너희가 성령을 거스렸다’고 하여 구약시대에도 성령의 사역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의식의 특징은 과거, 미래의 일을 상기하거나 성취하는 것이다.

영적 실재를 경험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의식은 공동체로 많이 드려진다(예배).

 이스라엘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림 = communication이 있었고, 이는 언어나 외부적 상징물로 되어졌다.

 외적 상징은 의식도 포함되고 이도 역시 약속하는 것이다.

언어, 외적 상징, 의식 등 다 약속으로서 동참하는 자들의 내면을 하나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그러한 상징들은 그 자체만으로는 효력이 없고 믿음으로 참여할 때만 그 효력이 나타난다.

 


 

*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사자(הוהי ךאלמ; 말락 아도나이)

 

출애굽기 34장 이후에는 성막 중심화 경향과 함께 나타나는 것이 의식적 요소의 두드러집이었다.

 또한 이와함께 병행해서 주입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방식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방식과 관련하여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3:2,4에서 하나님과 여호와의 사자가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구약에서 말락 아도나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와 “여호와의 사자께서 말씀하셨다”가 거의 동일하게 나온다

. 즉, 말락 아도나이는 보통 신분이 아니다. 하나님이신 또는 하나님과 동등한 신분이신 분임을 알 수 있다.

 

14:19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는 분이 말락 엘로힘이었다

. 이분이 돌이켜 가면 구름기둥이 따라 움직였다.

 에담에서부터 불기둥, 구름기둥이 나타난다

. 이 신적인 분이 가시적 형태와 일치된 것은 하나의 신현현상(Theophany cloud)이다.

 구름기둥은 바로 말락 아도나이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형태였다.

그리고 밤에는 구름기둥에서 불꽃같은 것이 비워나온다.

3:2에서 불꽃형상으로 해석함은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불꽃형상으로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23:20은 3:2, 14:19와는 달리 여호와의 사자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앞의 두 구절이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고, 하나님과 동등시 되는 분이라는 막연한 암시가 있다면 23:20에서는 הלשׁ(αποστελλω; 샬라; 아포스텔로) 즉, 이스라엘 앞서 행하시도록 보내심을 받은 앞서 행하시는 분, 도중에서 너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내가 예비한 장소로 너희를 인도해 들이는 분으로 묘사한다. 이는 신약과 매우 흡사하다(요 14:1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