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11장~12장,유월절

호리홀리 2015. 2. 7. 22:58

11장 . 지팡이를 던져 일으킨 재앙 사건들의 절정이 유월절 사건이다.

 이 사건들의 의미는

 

⑴ 하나님과 그 백성, 사단과 그 백성, 즉 세상 나라와의 전쟁이다.

 이제까지는 내보내지 않았으나 이 유월절 사건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빨리 나가라고 내쫓는다.

 유월절은 하나님의 절정적인 승리(사단과 세상 나라에 대한 승리).

 

장자 : 기력의 시작, 장자를 치는 것, 애굽 기력의 시작을 치는 것.

 원칙적으로 애굽을 깨부수는 것

, 결정적인 패배를 주는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과 동등한 세력이 아니다.

 마귀도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다.

즉 유월절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반역한 세력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앞의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역한 세력에 대한 심판의 성격을 갖는다.

 앞의 모든 사건은 명령을 거부한 것에 대한 징벌의 사건이요,

그 심판에서 이스라엘은 항상 구별되어 심판을 면한다.

 

유월절도 이 사건들의 절정이므로 사단과 그 추종자들인 세상 나라에 대한 심판이요 이스라엘은 그 심판을 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심판을 무엇으로 면하는 가가 유월절 사건에서 보여짐,

 즉 어린양의 피를 근거로 심판을 면한다.

 

유월절 사건과 비슷한 사건 : 이삭을 제물로 바침. 앞으로 성전이 세위질 곳에서 이스라엘을 위해 어린양이 피 흘려야 할 장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야 할 장소,

 어린양의 그 제사의 성격이 유월절 사건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진다.

 

*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① 그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지 않으시고 넘어가시는 것과

 

② 그 어린양의 살을 먹는데 모든 이스라엘이 참여하는 것,

각 개인이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 단위로 또 가족 수가 적은 자는 다른 가족과 합하여 먹음, 즉 공동체 단위로 참여한다.

 

① 피 : 생명을 의미, 나 대신 생명을 희생한 그것에 의해서 생명을 얻음, 새 생명을 얻는 것이요,

 

② 제육에 참여함 : 그 제사에 내가 하나된다, 그 양과 내가 하나된다.

 

아담이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에 뼈요 내 살 중에 살이라”는 것은 그가 나와 하나라는 의미.

 

로마서 6장에 그리스도의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에 하나됨,

즉 제육에 참여한다, 살을 먹는다 - 성만찬과 연결 -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뜻한다.

그런데 여기에 참여하는 것이 공동체 단위로 참여, 나 혼자만이 관계,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만이 아니고, 수평적인 관계 교제가 포함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 성만찬이 강조하는 것, 너희로 그리스도에게 하나되게 하는 것이요 이는 또 너희들도 하나되게 함

교회의 분열 계급화를 반대 = 제육에 참여함은 교회의 성만찬과 동일한 본질의 의미, 그리스도는 성만찬을 유월절과 관계시키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며 구약자체 내에서도 이를 읽을 수 있다.

 

유월절의 독특함 : 유월절 어린양을 대신함으로 내가 생명을 얻음,

 이 새 생명의 핵심에 대해 바울은 죄사함이라한다.

 죄사함을 위해 흘리는 어린양의 피라함 = 어린양과 하나가 됨과 동시에 그 어린양에 참여한 모든 지체와 또한 내가  하나됨을 포함한다.

 

이렇게하여 출애굽이 이루어지는데, 숙곳에서 발행하여 약속의 땅으로 간다.

 

 이때 불레셋 땅으로 가지않음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을 보고 후회할까 보아서이다.

요즈음 옛 지도가 발견되어지는데 옛 애굽의 수비대들의 위치를 그린 지도가 발견되었다.

 

어떻게 홍해를 건너게 되었는가?

 바로는 다시 마음이 강퍅해져서(하나님께서 강퍅케하심), 바로가 다시 전차를 내보내어 이스라엘을 추적한다.

 

* 추적하던 이 병거와 전차들이 홍해 속에 결국 몰사하고 만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한 나라의 세력은 군사력으로 단적으로 표현된다

 

. 병거, 전차는 그 당시 최신 무기, 강력한 무기요 그 병거는 600승이었다.

 이도 선정된 것이요, 최신예의 병거 중에서도 또 뽑아 선정된 것이 600승, 그런데 이것이 몰살된다.

 

장자를 침 = 애굽의 기력을 침, 세력의 기를 꺽음. 애굽은 이후 이스라엘을 괴롭히지 못한다.

 

병거를 몰살 = 다시 애굽이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적 사건으로 쐐기를 박는 것 같은 사건,

 이것은 하나님의 전쟁이라는 측면으로 보았는데 그 측면에서 사단 세력을 깨뜨린 하나님의 결정적인 승리의 사건.

 

*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고전 10:1-4절에서는 홍해를 건너는 것을 구름 아래에서 세례를 받았다라고한다.

 

홍해 : 옛 땅에서 새로운 땅,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는 최대의 장애, 그냥 건널 수 없는 죽음을 상징(애굽 병거의 몰살)한다.

 

구름 아래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다

.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서 애굽에서 노예상태로 있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인 죽음의 장소를 하나님의 임재 아래에서 마른 땅처럼 건넜다.

 

고전 10:2절 “모세 안으로 모세 속으로 모세에게 속하여 세례를 받았다”

 

모세를 그리스도와 비교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분,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신 종.

 

그리스도는 신약에서 구원사역을 이룸, 모세는 구약에서 구원사역을 이룸.

 

신약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사역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구원얻는 것처럼,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구원사역을 이루실 것을 믿고 모세를 의지하여 나아갈 때 구원을 받게하신다.

 이렇게 볼 때 홍해사건과 유월절 사건은 같은 내용이다.

 하나님께서 두 번 반복하신 것이다.

다시 돌이켜 홍해사건을 일으켜 하나님께서 애굽을 쳐부수고 이는 아무것도 아님을 보여주시고 두려움을 씻어주신 것이다.

 

이 사건들을 통해 최종적으로 보이신 목적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며, 애굽의 신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신이심을 보이시는 것, 즉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신 사건이다.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신 사건도 되나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이신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자유인이 됨, 즉 세상의 노예됨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인이 된 것이다.

 

*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을 못살게 하고 억압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복되게 하고 잘살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축복이요 생명이다.

 

유월절 사건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께서 사단(세상)의 세력을 멸하시고 그것에 사로잡혀 노예된 그의 백성을 구원하셔서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이 원리는 신약에서 그대로 적용되었다.

 

홍해 - 애굽과 약속의 땅의 경계, 두 영역을 나누는 것.

 

이스라엘은 이 죽음의 영역을 넘음으로 노예의 땅에서 완전히 결별 즉 노예생활과 세상문화, 세상의 타락한 생활 속에서 완전히 결별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새 생활이 시작된다.

 

세례 - 옛 사람의 죽음과 새 사람의 탄생을 의미,

 노예생활이 끝나고 새 생활이 시작됨, 이 새 생활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 백성을 내어보내라” 세상 세력에게 명령했는데 그 생활의 목적은 “나를 섬기리라”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새 생활을 하는 것. 이것이 적극적 의미에서 해방과 하나님이 주신 자유이다.

 즉 이제부터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유(성경 속의 작은 조직신학이라 할 수 있는 로마서의 구조가 이렇게 되어있다)가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해방되고 새 생활을 시작한 이스라엘에게 나타난 생활은 광야생활이었다.

 

광야의 의미 : 먹을 물과 양식이 없음. 즉 생존수단이 없음 = 죽음의 땅. 사람이 자기 힘, 능력으로 살기 힘든 땅. 바로 그런 땅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쓴 물(썩은 물, 먹으면 죽는 물)이 식수로 바꾸어 지며, 바위 속에서 물이 터져나오고, 아무 곡식이 없는 광야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으로 살아간다.

 

 이것은 신약 성도에게도 그대로 적용 - 예수를 믿으면, 중생하면 옛 존재 노예로 지내던 생활에서 자유얻어 새 사람이 된다.

이 새 사람이 살게 내버려둔 곳이 낙원이 아니라 이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순종하며 살라하신다.

이 새로운 삶의 본질적 성격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요,

그의 전 삶이 하나님을 순종하며 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세상 속에서 이렇게 사는 것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또 역설적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살 수 있다.

하나님이 죽음의 땅에서 솟아나게 하시는 생수로, 하늘로부터 내려주시는 음식으로 살 수 있다.

고전 10장에서 이 반석이 생수의 근원이라 했고, “나는 진정한 만나요”라고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이 내려주심인데, 예수의 생명을 직접 누리게 하시는 분 성령님,

 성령이 없으면 살 수 없다.

노력하면 할수록 안되는 것을 깨닫을 수 밖에 없게된다.

 그때부터 엎드리기 시작한다.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에서 살 수 있다.

 이 내용이 롬 7-8장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