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4장,하나님의 능력으로

호리홀리 2015. 2. 7. 22:40

4장에서 모세는 그래도 사양한다.

나는 무능한 자이므로 못맡겠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능력을 행할 수 있는 기적을 보이신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능력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있겠다는 약속과 관련 내가 너를 통해 큰 역사를 이루겠고 그것으로 내가 어떤 자인 것을 보이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능력으로 하나님을 보이시며 그들로 순종케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표적은 항상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다(신약에서도 마찬가지).

 

4:10절에 계속해서 말 못하는 자라 사양하자,

아론을 대변인으로 삼아서 가라하심. 모세가 주저할 때마다 그것에 추가되어 모세의 사명이 분명해지고 하나님의 뜻이 명확해진다.

 모세의 궁중교육과 광야 목동생활 전체로 인해 모세는 하나님이 쓰실만한 사람이 된다(자기부정 → 하나님의 능력 표현).

 

4:13절 하나님 그만 하십시요.

보낼 딴 사람을 찾아 보십시요.

하나님이 노하시고 가라하신다.

 이일을 통해 복합적인 뜻이 있는데(가라, 못 가겠읍니다. 할 때 이런 일련의 행동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①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는 자로 하여금 철저히 자기를 부정하게 함이요, 무능한자와 함께 하나님이 역사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겠다.

무능한 것을 알리시고 무능한 자로 하나님이 함께하셔 하나님이 이루심을 보이신다는 것이다.

 

② 부수적으로 하나님이 기묘하게 이루시는 이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역사하실 것이며, 그가 사용하실 도구를 세우실 계기가 된다.

 즉 모세와 아론이 부르심과 세우심을 입고, 모세를 통해  이루어질 출애굽의 사건은 결정적인 사건이다.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되게 하신 사건은 출애굽 사건을 시편 등의 성경에서 말한다.

출애굽이 결정적인 사건임을 잘 드러내주는 성경구절은 출 3:14 이스라엘의 출애굽시키실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 할까요?

이는 모세 자신의 질문이기도 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내가 누군인가는 앞으로 사건을 통해 가르쳐 줄 것이다.

이 명칭은 대대로 영원한 기념 칭호가 될 것이다.

 오고 오는 세대를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출애굽을 행하신 하나님으로 기억될 것이다.

 

4:22-23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바로 앞에 서서 어떤 말을 하라고 하셨나?

출애굽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밝혀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요 이스라엘을 내보내어 나를 섬기게 하라” = 이것이 출애굽의 의미의 핵심이다.

 여기서 출애굽의 최종적 목적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겨서 구원얻는 것은 아니다.

출애굽이 예표적 사건이라 할 때 구원의 목표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해드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삶,

이것이 진정한 삶이요, 구원이요, 축복이요, 생명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식으로 이루어지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구원이요, 삶이요, 축복이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내가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해드려 그 댓가로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는 구원의 가장 큰 방해거리요, 사단의 가장 교묘한 속임수이다.

 

구원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 하나님 백성으로 사는 것, 구원하신 목적 자체가 율법을 지키는 것, 구원하신 것에 감사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 것이요,

 하나님 은혜의 핵심은 성령이시다.

 하나님 섬기는 그 자체가 나의 생명이요 축복이다.

이것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고 하나님께 무엇인가 해 드리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자신의 신앙을 check해봐야 한다.

 

4:24-26절 수수께끼 같은 불가해한 사건이 나온다.

모세를 여호와의 사자가 죽이려 하신다.

 

십보라가 그 아들에게 할례를 행한다.

‘당신은 나의 피의 남편이요...’, 이는 모세 아들의 할례에 관한 사건으로 이제까지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행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여기서 피의 남편이라는 이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으로 미디안의 제사장이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길리가 없고 이방인으로 자기의 신을 섬겼을 것이다.

그 지방 제사장과 함께 살므로 모세가 자신의 신앙(분)을 드러내놓지 않은지도 모르고 그래서 자기 아내, 아들에게 자기의 신앙이 받아들여지도록 되지 않은 것 같다.

즉 언약 백성으로서 자신을 내보이지 못함을 추측할수 있다.

 피의 남편이라 함은 육체의 남편만이 아니고 언약과 연결된 신앙의 동질성을 십보라가 인식하게 된 사건이 아닌가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