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출애굽기

출애굽기1장,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

호리홀리 2015. 2. 7. 15:06

출애굽기(תומשׁ הלאו; Exodus)

 


 


 

이스라엘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이 출애굽이다.

 신명기 26장에서 보듯이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가장 크다.

우리가 출애굽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앞의 사건과 관계없이 그저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의 사건으로만 볼 것인가?

창세기부터 출애굽기까지는 연관된 역사이다.

그리고 출애굽기는 출발부터가 의미심장하다.

70인이 내려갔으나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고 이에 대해 세상 나라가 핍박하고,

그 핍박 때문에 세상 속에서 갈등과 투쟁을 한다. 결국 세상 속에서 교회는 싸울수 밖에 없다 = 전투하는 교회(militant church).

 그러나 이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다.

 

출애굽기 전체 성격을 파악하려면 서론 1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박해 받는 것과 창세기를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는가?

 출 1:1-7에 나와 있다.

 이것이 출애굽의 출발점이요 전체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출애굽기 1장의 내용

1-7절과 8-22절로 나눌 수 있는데 1-7절은 야곱의 혈속 = 예렉(허벅지) = 친혈족을 의미한다.

애굽에 내려간 이는 70인 이었는데 이들의 생육이 중다, 번식, 창성, 심히 강대해진 것이다.

이것이 출애굽의 출발점이다.

 관심의 촛점은 이스라엘(야곱)이고 이스라엘 역사가 주된 관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왕국을 기업으로 택한 백성이기 때문이다.

 

70인이 심히 강대해진 것의 의미는 아브라함의 언약의 성취이다.

그리고 야곱에게 브엘세바에서 하나님이 밝히신 이유는 이 민족을 큰 민족을 이루고 그것이 이루어지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창 46:3),

 즉 하나님이 약속을 이루셨고(큰 민족을 만드셨고),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의 약속을 이루시겠다.

즉 이는 창세기와 연결되며 출애굽의 배경이 밝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의 성취를 위해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셨다.

 이제 큰 일이 있게 되는데 이 시기를 사도행전 7:17절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1:8절 이스라엘 백성의 박해가 기록되어 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 - 새 왕조인가?

새로운 인물인가?

그 특징은 요셉이 애굽에 끼친 큰 공적을 모르는 이든지 아니면 요셉의 공적과는 관계없는 이일 것이다. 아마 공적과 관계없는 인물로서 새 왕조라 여겨짐, 즉 요셉을 아는 왕조는 Hyksos왕국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이 왕조는 셈족 출신, 요셉도 셈족 출신 같은 족속이므로 요셉에게 호의 베풀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한때 이 왕조가 애굽을 다스리다가 축출되고, 함족 출신의 왕이 들어섰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1:9절 이 새 왕이 이스라엘을 박해하기 시작하는데 이스라엘의 강성은 애굽에게는 위협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기들 가운데 유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심히 강해지므로 박해한다.

왜?

강해지는 것을 불안해 했는가?

만일 다른 민족이 애굽에 쳐들어 올 때 그들과 합세하거나 도망갈까봐.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 이스라엘 외의 백성은 이방, 세상, 이방(세상)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다.

 따라서 애굽의 박해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먼저 애굽으로 내려 보내셔서(세상 속에서) 큰 백성을 이루신다.

 자기 나라에서 점점 강성해지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세상은 점점 위협을 느끼는 것이다.

 따라서 강대국이 하나의 약소민족을 압박, 착취하는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이 하나의 약소민족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가 점점 강성해질 때 세상으로부터 박해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강성해지면서 세상과 필연적으로 갖게되는 갈등을 표현한 것이다.

바로의 염려한 핵심은 이스라엘이 강성해져서 애굽을 떠날 것을 염려한 것이다.

바로가 다른 이민족과 연합할 것에 대한 염려였다면 이스라엘을 내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날 것을 염려한 그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큰 유익을 주는 것 같았다.

즉 경제적, 지적으로 애굽에게 상당한 유익을 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적정 수준에 묶어 두어서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숫자만 남겨두어 자기 유익을 취하고자 즉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으려, 자기를 섬기게 하려고 하였다.

 

세상은 하나님 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함으로 배제하려는 것만이 아니고 좀더 적극적 의지를 갖는데, 즉 세상은 하나님 나라를 이용하여 자기를 섬기게하여 자기의 유익을 취하려 한다.

이같은 바로의 의지는 세상왕국의 특성, 즉 죄와 마귀의 속성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죄악 한 가운데 세워지며, 하나님 나라를 압박하는 세상은 항상 사단의 세력이 있어서 하나님 나라를 놔주려고 하지 않고 항상 자기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고 자기를 섬기게 하려고 하는 것이다.

 

노역을 강하게 시키나 이스라엘이 더 강해지고 산파들도 바로 왕의 말을 듣지않는다.

 이것은 앞으로의 승리를 암시해준다.

바로가 사내아이를 다 죽이도록 하는 그 계획(이스라엘을 멸절시키려는) 가운데 오히려 이스라엘을 구출해내는 사람이 애굽의 보호 아래 애굽의 심장부에서 자라게 된다.

 바로의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는 자기의 계획 속에 자기를 멸망하게 하는 일이 진행된다.

 출애굽의 역사는 사도행전의 역사와 유사한 점이 있다.

 

세상 핍박이 극에 달했을 때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모세가 태어난다.

죽음의 상징인 물 속에 모세는 갈대 바구니(תבת;테바트 방주)에 담겨있었다.

 즉 노아의 방주처럼 또 하나의 방주에 넣어져서 물 속에 던져진 것이다.

바로의 공주에 의해 죽음의 영역인 물 속에서 건져져서 바로 공주의 아들, 왕자(prince)가 된다.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우고 말과 행위에 능하였다(사도행전).

 애굽의 왕자로서의 교육은 통치자, 지도자로서의 교육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멸절시키려는 대적의 심장부에서 미래의 구원자를 교육시키시되 최고의, 당시에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시키신다.

 말도 능하였다는 말은 세상 모든 학식에 능함을 말한다

. 당시 최강국 애굽의 교육, 당시 가장 이상적으로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는 교육을 받았다.

당시 세상 교육은 강한 자가 칼과 무력으로 정복하는 통치자, 지도자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세상 교육을 받은 모세가 동족을 구하기 위해 처음 행하였던 것은 칼과 무력으로 동족을 구원하려 함이었다.

이렇게 세상적인 방법으로 했을 때 실패한다.

하나님 나라의 지도, 통치 방법은 세상 나라 통치 방법과는 다르다.

 이것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련되게 조작하는 것과는 다르다.

 

출 1:1-7은 창세기와 연결시켜 볼 때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 보내신 목적이 성취되었고 이제는 그 다음 단계의 역사를 기대하게 한다.

 

출애굽의 근본 의미는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을 다시 이끌어내심이다.

 큰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을 애굽으로 보내시고, 큰 민족을 이루시고, 다시 애굽에서 약속의 땅으로 귀환하는 것, 즉 하나님의 본래 계획이 긍정적으로 하나하나 이루어져간다.

하나님의 그 큰 계획이 단순하게 이뤄지지 않고 복합된 상황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즉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박해를 당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외적인 생존 수단이 가장 풍성한 곳에 내려가 이스라엘을 번성하게 한다는 것만이 그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애굽 왕이 이스라엘을 박해한 것을 보면 애굽은 세상 나라로 볼 수 있다.

즉 일반화시켜 그 의미를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곳은 세상 가운데서이다.

세상에서 유리된 별천지가 아니라 세상 한 가운데서 비록 겨자씨 같이 미미하게 시작했어도 큰 나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미하게 시작한 하나님 나라가 강성한 나라로 되자 세상 나라는 적대 세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커지는 것을 방해하고 하나님 나라를 자기 손에서 자기 수준에서 조작할수 있고 조종할 수 있는 상태로 이끌려고 한다.

 

아브라함 같은 미미한 존재로 하나님 나라가 존재할 때도 의와 공의의 증거로써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는 구실을 했다.

예로 소돔과 고모라 사건에서도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하는 구실을 했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제사장 나라로서 강력한 나라(물리적인 강력함이 아니다)이기를 원하셨다.

이 강력한 하나님 나라에 애굽이 위협을 느끼고 필연적으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산아제한과 산파로 사내아이를 죽이도록 명령하나 더욱 창성, 번식하자 노골적으로 사내아이를 애굽 나일강에 버리도록 한다.

한 가문이 겪는 애환이나 강대국에게 착취당하는 약속민족의 비애를 보고 하나님께서 억압받는 백성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면서 해방신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창세기부터 출애굽기를 연결시켜 볼 때 이런 관점은 틀리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는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세상 나라 세력 간의 갈등, 투쟁을 말하는 것이다.

 이 갈등, 투쟁이 어떻게 끝날 것인가를 모세를 통해 암시해준다.

이스라엘에게 고역시키고 산파를 조정하려 했으나 바로의 계획은 다 실패하고 이스라엘이 더욱 창성, 번식하게 된다.

이어 바로의 가장 극단적인 계획(강물에 던지는 것) 속에서 모세가 건져냄을 입고, 바로의 공주의 손에 바로의 궁중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모세가 자란다.

바로 궁중의 교육은 왕자의 교육으로서 통치자의 교육이다.

이 교육은 ①미래 통치자로서의 교육이기에 모세는 세상적인 통치자로서의 교육을 받는다. ②당시 최강국의 교육, 당시 사람들이 이상으로 삼는 통치자의 교육(칼과 무력으로 무자비하게 다스리고 통치하는 세상 나라의 교육)과 그 속성을 배우는 교육이었다(정복하고 통치함).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말씀하심, 요 18:36절 “내 나라가 세상의 나라일것 같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