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4:4-7절, 주 안에서의 특권

호리홀리 2015. 6. 23. 14:56

4-7절, 주 안에서의 특권

[4절]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항상 기뻐하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그리스도인의 복된 특권이다. 슬픔이 많은 이 세상에서 누가,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주 안에서’라는 말에 있다.

‘주 안에서’라는 말씀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과 그 안에 포함된 모든 은택들을 가리킨다. 주께서는 우리의 근본적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그러므로 죄의 결과들인 그 외의 모든 문제들은 주 안에서 이미 다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그 완전한 성취를 누리게 될 것이나(롬 14:17), 지금 이 슬픔 많은 세상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복을 누린다. 기쁨은 성령께서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서 일하셔서 맺게 하시는 복된 열매이다(갈 5:22).

[5절]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이라는 원어(에피에이케스)는 ‘온유함, 친절함, 너그러움 등’의 뜻이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가? 혹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다 할지라도, 어떻게 자기와 친분 관계가 없는 모든 자들에게, 인격적으로 부족한 자들에게, 심지어 자기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다. “너희 온유함과 친절함과 너그러움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성도가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까닭은 주께서 오시면 모든 일을 다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선악간에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이 그 뜻이다. 장차 온 세상을 심판하러 오실 주 예수께서 가까이 와 계신다. 주의 재림이 심히 가깝다.

그러므로 모든 판단을 그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만 알고 이 세상의 것만 구하는 자들이라면 모르지만, 우리가 장차 오는 천국을 알고 천국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을 구하는 참 성도라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관용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큰 은혜 받은 것을 잊지 말고 다른 이들에게 온유하고 친절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 . .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염려하고 걱정할 일들이 없지 않다. 학생은 학교 성적이나 진학의 염려,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거나 구타를 당할 염려, 청년은 취직과 결혼의 염려, 장년은 직장, 사업, 경제 문제와 자녀들을 인한 염려, 또 건강의 염려, 노년은 자녀들의 평안, 자신의 건강, 노후의 경제적 대책, 외로움 등의 염려가 있을 것이다. 인생은 염려가 많은 삶이며 이 세상은 염려가 많은 세상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셨다. 실상, 우리가 염려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염려는 우리의 기쁨과 평안과 활기를 빼앗아 갈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좋다. 염려하지 않는 삶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특권이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또한 하나님께서 보장하실 것이다.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주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6장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마 6:25). 그는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화로 예를 드시면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만물을 다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자기 백성의 의식주의 문제를 돌아보지 않으시겠느냐고 교훈하셨다.

그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셨다(마 6:31-33).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염려하지 말고 그 대신 기도하라고 가르친다. 우리가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시고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리고 그가 우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고 우리를 위하시고 지키시고 도우시기를 원하심을 안다면, 우리는 어떤 환경 처지에서도, 어떤 어려운 문제를 직면했을 때라도 염려하거나 당황하고 낙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다. 우리는 염려 대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신적인 일도, 육체적, 물질적인 일도, 개인적인 일도, 가정적인 일도, 교회적인 일도, 국가적인 일도 무슨 일이든지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이다. 믿음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되 ‘감사함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감사함이야말로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하나님께서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을 믿는 자가 아니고서는 결코 범사에 감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감사할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28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했고, 또 로마서 8:32에서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또 감사함으로 우리의 모든 소원들을 하나님께 낱낱이 아뢸 수 있다.

[7절]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 . . .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응답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금방 오지 않는 경우가 많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 뜻과 다를 경우가 많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를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기도가 금방 응답될 때도 있으나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문제될 것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무지하고 조급한 우리도 시간이 지난 후에는 하나님의 최선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사람은 누구나 고난의 현실을 피하고 싶어하고 건강이나 물질적 풍요만을 복이라고 잘못 생각하지만, 건강이나 물질적 풍요는 복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화이기도 하다. 사실상 참된 복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기고 죄 짓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고난이나 질병이나 가난의 경험은 하나님의 미움이 아니고 그의 사랑의 증거이며,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고 오히려 복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현실을 믿음과 평안으로 대처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일차적인 응답은 마음과 생각의 평안이다. 마음과 생각의 평안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즉각적이고 가장 고상한 응답이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표현은 ‘모든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평안’이라는 뜻이다.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현실 속에서도,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를 지키신다는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의 시작이다.

하나님의 평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고 기도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 기도 응답과 그 응답으로서의 마음과 생각의 평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성도의 특권이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서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현세와 내세의 모든 삶을 보장한다. 그것은 내세의 천국과 부활과 영생뿐 아니라, 현세의 마음의 평안과 건강과 의식주의 공급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우리와 함께하신다.

4절부터 7절까지의 본문은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세 가지 특권을 증거한다.

 첫째는 항상 기뻐하는 삶이다. 항상 기뻐하는 삶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주 안에서 죄사함받고 주 안에 거하고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을 받은 성도들은 항상 기뻐할 수 있다.

 둘째는 모든 사람들에게 관용과 온유함과 친절함을 나타내는 삶이다. 이것은 주의 재림이 가깝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고 상과 벌을 내리실 것이다.

 셋째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오직 기도함으로 평안을 누리는 삶이다. 이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이요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삶이다. 성도에게 주시는 마음의 평안은 기도 응답의 시작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신 기쁨과 친절과 평안의 삶을 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