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3:10-16절, 부름의 상을 위하여

호리홀리 2015. 6. 23. 14:43

10-16절, 부름의 상을 위하여

 

[10-11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 . . .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그의 성육신(成肉身), 그의 독특한 인격, 그의 속죄사역, 그의 은혜와 사랑은 참으로 깊고 신비한 사실들이다. 바울은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를 원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통과 수치와 저주의 죽음을 죽으셨으나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의 부활은 죽음을 영원히 이기신 부활이었다. 그의 부활체는 장차 성도의 부활체와 영생할 몸의 모습이었다. 장차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은 부활을 경험할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였으나 그의 부활의 권능을 알기를 원한다. 예수 믿는 우리 모두의 삶도 고난의 삶이다. 바울이 고난 중에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알고 부활에 이르기를 원했듯이, 우리 모두도 고난의 현실 속에서도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를 원한다.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 . .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몸의 부활은 아직 미래의 사건이다. 그것은 육신적, 도덕적 완전 상태, 곧 완전 성화의 상태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아직 불완전한 성화의 상태에 있다. 성도에게는 아직도 육신의 연약성이 남아 있다. 성도의 기쁨과 평강도 때때로 현실 속에서 흔들리고 일시적으로 위축된다. 바울은 아직 부활을 얻었거나 완전 성화를 이루지 못했으나, 그것을 향하여 달음질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주시기로 작정하신 구원의 완성인 영광스런 몸의 구속(救贖) 곧 몸의 부활과 영생을 향해 달려간다는 뜻이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작정된 복이다.

성도의 삶은 부활과 영생을 향한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해졌고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로 간주된다. 그 구원은 법적으로 완전하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나타날 영광을 위해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의(義)는 장차 우리가 얻을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을 보장하지만, 우리는 그 날을 위해 현재 성화(聖化)의 길을 성실히 달려야 한다. 성도들은 천국과 부활과 영생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서 6:22에서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고 말하였고, 갈라디아서 6:8에서는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썩는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하였다.

[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 . . .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한 일’()이란 ‘한가지 일’이라는 뜻이다. 신앙생활에는 많은 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오직 한가지다. 누가복음 10:42의 전통 사본에 보면, 예수께서는 ‘한가지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마리아처럼 주의 발 아래 앉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 요한복음 6:27, 29에 보면, 예수께서는 다른 모든 일은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에게 참으로 중요한 한가지 일은 앞에 있는 푯대 혹은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 목표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1)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구원의 완성 곧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이다. 그것은 이미 법적으로 얻은 의(義)가 완전하게 실현되는 것 즉 ‘완전 성화’이다. 바울은 그 목표를 향해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한다. 성도는 잘한 일이든지 못한 일이든지 간에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도는 지나간 날들에 잘못된 일들을 다 하나님께 고백하고 씻음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성도는 오직 완전 성화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우리는 열심히 성경 읽고 기도하며 예배 시간을 귀히 여기고 성경 교훈대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15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 . . .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온전히 이룬 자들’이라는 원어(텔레이오이)는 ‘완전한 자들’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2:6에서도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한다”고 말했다. 성도의 완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법적 완전이다. 성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법적으로 완전해졌다. 히브리서 10:14,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테텔레이오켄).” 물론 이 완전은 실제적 완전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28에서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말했다. 성도가 법적으로 얻은 완전한 의(義)는 자만(自滿)이나 나태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미 무엇을 얻었거나 이루었다고 자만하거나 나태하지 말고 뒤의 것을 잊어버리고 앞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16절]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전통사본에는,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우리는 같은 규칙으로 행하고 같은 생각을 가지자”2)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변함이 없다. 시대는 변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와 교훈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성장과 성화(聖化)의 정도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의 인격 형성이 얼마나 이루어졌든지 간에, 우리는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또한 나태하거나 해이해지지도 말고 오직 신앙의 목표인 부활과 영생을 위해, 즉 완전 성화를 위해 진지하게, 성실하게 달려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의 신앙의 목표는 동일하다. 그것은 영광스런 부활과 영생이며 완전 성화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통해 능력으로 영광의 부활에 이르셨다. 우리에게도 그 부활이 약속되어 있다.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목표는 한가지뿐이다. 그것은 죄 짓지 않고 의를 행하는 완전 성화의 삶이다. 하나님은 현재 우리의 생각과 마음가짐과 삶을 중시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뒤에 있는 것들, 즉 과거의 성공과 실패의 자취들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앞에 있는 완전 성화의 목표를 향해, 주께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인 부활을 위해 달려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