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3:17-21절, 나를 본받으라

호리홀리 2015. 6. 23. 14:47

17-21절, 나를 본받으라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 . . .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나를 본받으라’는 말은 두 가지 요소를 포함할 것이다.

 첫째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즉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의 확신이며,

 둘째는 완전 성화(聖化)를 향한 성실한 달음질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음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며 우리의 구원의 내용이요 성도의 생명이다. 또 완전 성화를 향한 성실한 삶은 성도에게 합당한 일이다. 그것은 바로 경건한 삶이요 의로운 삶이다. 바울은 육체를 의지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義)만 확신하는 복음 신앙을 가지고 있었고, 또 고난 중에도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힘써 달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의 믿음과 그의 달음질을 본받으라고 담대히 권면한다.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는 말씀에서 ‘보이라’는 원어(스코페이테)는 ‘주목하라’는 뜻이다(NASB). 바울의 걸음을 본받는 자들이 있었다. 복음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고 완전을 향해 성실히 달려가는 진실한 성도들이 있었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우리도 그러하다. 우리는 성경의 교훈대로 믿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위해 힘쓰는 자들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본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18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 . . .

 “[이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행함이니라].”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야 할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할례를 받고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결국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효화시키는 잘못을 범하고 있었다. 또 그러면서 저 행위구원론자들은 십자가의 은혜의 복음만을 전파했던 바울과 그 동료들을 핍박했다. 저런 거짓 교사들은 실상 그리스도의 종들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원수들이었다. 바울은 그런 자들에 대해서 갈라디아서에서 자세히 언급하며 논박하였다.

바울은 교회 안에 있는 저 거짓 교사들과 이단자들에 대해 이미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고 있다. 바울의 전도의 생애는 단순하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고, 바른 복음을 변호하기 위해 때때로 싸워야 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현실이었고 2천년 신약교회의 역사이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오늘날도 기독교회들 안에 배교자들과 또 그들과 타협하는 불성실한 종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 아니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오늘날도 진실한 종들과 성도들은 저 배교자들과 타협자들로 인하여 바울처럼 눈물을 흘린다.

[19절]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 . . .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이단자들에 대해 몇 가지로 묘사한다.

첫째로, 그들의 끝은 멸망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 19:20은 마지막 대 심판 전에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지옥 불못에 던지울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와 같이 거짓 교사들의 결말도 지옥 불못이다.

둘째로, 그들의 신(神)은 그들의 배다. 이것은 그들이 육체적 욕심을 최고 가치로 알고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먹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며 그 외에도 그들은 물질욕, 정욕, 명예욕, 권세욕 등에 사로잡혀 그것들에 종노릇하는 자들이다. 탐심은 우상숭배이다. 그들은 욕심을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다.

셋째로,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다. 이 말씀은 그들의 현재의 영광이 결국 부끄러움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교사들과 이단자들에게 참된 영광을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들의 영광은 사실상 그들의 수치이다. 마지막 날 그들에게는 큰 고통과 부끄러움이 있을 것이다.

넷째로, 그들은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들이다. ‘땅의 일’이란 썩어질 것, 허무한 것 그리고 죄악된 것을 의미한다. 요한일서 2:16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증거했다. 하나님과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지 않는 모든 자들은 다 헛되고 죄악된 것만을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절]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 . . .

 “[이는]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있음이니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17절에 이어서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야 할 이유를 말한다. ‘시민권’이라는 원어(폴리튜마)는 ‘시민권’ 혹은 ‘나라’라는 뜻이다. 거짓 교사들과 달리,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천국 백성이며 천국의 시민권자이다. 이것은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사실인가?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을 부러워하지만, 천국 시민권은 그것에 비교할 수 없이 더 가치 있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으로부터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 천국에 계신 주 예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다(계 22:20). 우리는 그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우리를 죄와 불행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이다.

 구원은 하나이지만, 세 단계가 있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과거의 단계이고, 성화(聖化)는 현재의 단계이고, 영화(榮化)는 미래의 단계이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이미 얻었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거룩함을 이루어가지만, 장차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게 될 것이다. 그때 우리는 실제로 죄와 불행과 죽음이 전혀 없는 삶을 경험할 것이다.

[21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 . . .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할 수 있는 역사로](원문)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예수께서는 친히 만물을 자신에게 복종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는 전능(全能)하신 주님이시다. 그는 다시 오셔서 그의 능력으로 우리의 낮고 비천한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실 것이다. 우리가 영생하기 위해 가질 부활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이 영광스러울 것이며 또 썩지 않고 강한 몸일 것이다(고전 15:42-44). 사람들은 비싸고 좋은 옷을 부러워하지만, 하나님의 예비하신 부활체는 그 어떤 비싼 옷보다도 더 귀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여기에 성도의 기쁨의 이유가 있다. 부활과 천국과 영생은 성도의 기쁨의 이유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우리는 천국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며 장차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영광스러운 부활체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에 소망을 두고 천국 백성답게 경건하고 의롭게 살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교회들 안에 배교자들과 타협자들이 많은 말세지말에 우리는 시대의 풍조를 따르지 말고 깨어 믿음을 지키고 의롭고 선하고 진실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