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3:1-9절, 내가 가진 의(義)

호리홀리 2015. 6. 23. 14:40

1-9절, 내가 가진 의(義)

옥에 갇힌 바울은 육신적으로는 고통스러웠을 것이지만 기뻐했고 또 빌립보 교인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했다. 바울의 기쁨의 이유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義) 때문이었다.

[1절]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 . . .

 “종말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교훈은 본서신의 주요 교훈이다. ‘주 안에서’라는 말은 기쁨의 이유와 원천을 보인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의 이유이시며 원천이시다. 예수님 외에 다른 것들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건강도, 물질도, 육신의 아름다움도, 쾌락도, 세상 권세도 다 일시적이며 어느 날 없어지는 것들이다. 또 그것들을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을 때에도 그것들은 진정한 기쁨이 되지 못한다. 참 기쁨은 우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평강 가운데 흘러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적 기쁨은 기쁨 후에, 아니 기쁨 중에도, 고독과 고통과 슬픔과 허탈이 있다. 우리의 기쁨은 그런 유의 기쁨이 아니다. 우리의 기쁨은 오직 예수님의 구원 때문에, 즉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었고 의롭다 하심을 얻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확실한 소망을 얻었기 때문에 갖게 되는 기쁨이다. 모든 슬픔은 근본적으로 죄의 결과이다. 죄가 없는 천국은 기쁨으로 충만한 곳이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거기서 기쁨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 안에서 기뻐할 수 있고 또 기뻐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너희에게 안전하다고 표현하였다. 잘 아는 내용이지만 진리의 교훈은 귀하고 안전하다.

[2절]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개들’은 도덕성이 없고 남을 물어뜯듯이 해치는 자들을 가리킨다. ‘손(損)할례당’이라는 원어(카타토메)는 ‘절단자’라는 뜻으로 할례의 참 뜻을 알지 못하고 몸만 상하게 한 자, 즉 거짓 할례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것은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교인들을 비꼬아 한 말이라고 본다. 그들은 참 경건도 도덕성도 잃어버린 자들이었다. 성도들은 그런 외식자들을 조심해야 한다.

[3절]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 . . .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할례의 참 뜻은 마음의 성결에 있었다. 이것은 중생(重生)과 성화(聖化)를 가리켰다고 본다. 참으로 중생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힘쓰는 자들이 참 할례당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영으로] 봉사하는[예배하는] 자들이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과 도움심으로 해야 한다. 또 그들은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자들이다. 성도는 자신들이 죄악되고 허무하고 무가치함을 아는 자들이므로 그들은 자신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예수 그리스도만 기뻐하고 자랑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의(義)와 거룩과 완전이시요 예수 그리스도만 우리의 위로와 힘과 기쁨이시기 때문이다.

[4-6절]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 . . .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는 저 율법주의 교사들처럼 육신적으로 자랑할 만한 자이었다. 그는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외적으로는 흠 없는 자이었고 열심으로 말하면 교회를 핍박하기까지 한 자이었다.

[7-9절]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 . . .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들, 즉 유대인이라는 신분과 혈통, 율법을 지키는 행위의 의(義) 등을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하였다. 오늘날로 말하면, 외모, 학력, 재산, 건강, 가문, 경력, 사회적 신분 등을 배설물과 같이 여긴 것이다. 그것들의 가치가 과연 무엇인가? 구약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헛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전쟁이나 지진이나 무서운 전염병 등으로 죽거나 비천해질 때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더욱이 그것들은 신앙에 방해거리이다. 그것들은 인간을 교만하게 만들고 영적인 일에 무감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주께서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며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 성도는 땅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바울이 세상의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던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義)를 최고의 가치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디아 톤 크리스톤)[그리스도 때문에] 또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에’ 그러했다고 말한다. 성도가 가진 의(義)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義)라는 것이 하나님의 복음의 요점이요 기독교의 진수(眞髓)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밝히 해설되고 강조된 복음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그 의와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고 무가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에 오히려 해가 된다. 세상 것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것들을 자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요일 2:15-17).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데마처럼 어느 날 교회를 떠날 수밖에 없다(딤후 4:10). 아무도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자랑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의 이유요 원천이시다. 우리는 땅의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자.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실상 허무하고 무가치하다. 우리의 육신적, 물질적 가치들은 죽음 앞에 설 때 다 무가치하게 된다. 그것들은 오히려 사람을 교만케 하고 참된 경건을 방해한다. 우리는 바울처럼 오직 우리의 의(義)가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 최고 가치로 고백하자. 우리의 의(義)는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것만이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고 용납되고 기도의 응답과 복을 받을 수 있는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