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2:19-30절,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호리홀리 2015. 6. 23. 14:36

19-30절,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19-20절]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 . . .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 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귀한 동역자(同役者)이었다. 그는 바울과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자이었다. 주의 일,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뜻을 같이하고 생각과 정신을 같이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것은 복이다. 아모스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同行)하겠으며.” 또 디모데는 빌립보 교인들의 사정, 곧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진심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이었다. 참된 일꾼은 교인들의 형편과 처지를 살필 수 있는 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일꾼들은 많으나 충성된 일꾼은 드문 것 같다. 옥에 갇힌 바울에게는 지금 뜻을 같이하여 그들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디모데 외에는 없었다.

[21-24절]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 . . .

“[이는]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수고하였음이니라].” 본문은 디모데가 바울에게 둘도 없는 귀한 동역자인 이유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은 복음 전파의 일이다. 성도들은 다 자기 일에 바쁘고 교회 일꾼들도 그러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위해서는 생각과 마음과 시간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디모데는 그렇지 않았다. ‘디모데의 연단’이라는 표현을 보면, 디모데는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인격의 훈련을 받았던 것 같다. 그런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이제 디모데의 신앙 인격은 진실한 교인들에게 알려졌고 인정을 받았다. 디모데는 마치 자식이 아비에게 행함같이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다. 오늘날에는 누가 바울과 디모데처럼 복음을 위해 수고할 것인가?

바울은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을 보내기를 바라고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그는 지금 옥에 갇혀 있으므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의 수족(手足)이 되어줄 사람이 디모데이었다. 바울은 할 수 있는 대로 속히 디모데를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내어 자신의 소식을 전하며 그 교회의 형편을 살피게 할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기 자신도 속히 가게 될 것을 주 안에서 확신한다.

[25절]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 . .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바울에게는 에바브로디도라는 동역자가 또 있었다. 그는 빌립보교회의 사자로서 바울의 쓸 것을 돕기 위해 파송되어 왔던 자이었다. 그는 주 안에서 바울의 형제이었고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한 자이었다. 바울은 그를 ‘함께 군사된 자’라고 표현한다. 신앙생활과 전도는 마귀와 죄와 세상과의 영적 전쟁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군병들이다. 특히, 주의 종들과 전도자들이 그러하다.

군인들은 전쟁 때를 위하여 잘 훈련되어야 한다. 성도들의 훈련은 성경말씀들을 읽고 듣고 배우며 그 말씀들을 실천하고 기도하기를 힘쓰는 생활이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된 성도는 어려운 일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군인에게 필요한 것은 철저한 훈련과 죽음을 각오한 정신이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며 죽음의 싸움터에도 용기 있게 나가야 한다. 성도들과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26절]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 . . .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바울에게 왔던 에바브로디도는 병이 들었다. 이 소식이 빌립보교회에 전해졌다.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인들을 사랑하고 간절히 사모했기 때문에 자기의 병든 소식 때문에 빌립보 교인들이 걱정할까봐 심히 근심하였다. 사랑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며, 사랑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염려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다. 에바브로디도에게 바로 그런 사랑의 심령이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성도들을 위한 이런 진실한 사랑이 필요하다.

[27절]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 . . .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하나님이 저를 긍휼히 여기셨고 저뿐 아니라 또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내 근심 위에 근심을 면하게 하셨느니라.” 사람의 육신은 참으로 약하다. 에바브로디도는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었다. 그것은 바울에게 근심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도라 하더라도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초대교회에 주셨던 병 고침의 은사는 사도시대 말기에 점점 사라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바브로디도를 긍휼히 여겨주셨다. 병의 치료는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기만 한다면, 고치지 못할 질병이 무엇이랴? 그러므로 우리가 병들었을 때는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의 긍휼을 구할 것밖에 없다. 야고보서 5:14-16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28절]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 . . .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 그는 하나님의 긍휼로 병이 낫고 건강을 회복한 에바브로디도를 급히 빌립보교회로 돌려보냈다. 그것은 그를 봄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이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으로써 빌립보 교인들이 상심할까봐 염려했던 바울의 근심도 덜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상대방을 생각하고 그를 염려하는 마음으로 표현된다.

[29절]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 . . .

 “이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영접하라고 부탁한다. ‘모든 기쁨으로’라는 말은 마지못해 하는 영접이 아니고 진심의 기쁨과 즐거움의 자세로 영접하라는 뜻이다. 그는 에바브로디도에 대해서만 국한하여 말하지 않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말한다. 우리는 충성된 일꾼들을 모든 기쁨으로 영접하고 그들을 존귀히 여겨야 한다. 군대에서 훌륭한 지휘관이 귀하고 중요하듯이,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는 복음을 위해 진실하게 자신을 바친 충성된 일꾼들이 귀하고 중요하다. 그런 자들이 없다면, 교회는 참된 인도자들을 가지지 못할 것이며 주의 일은 매우 쇠잔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충성된 종들을 귀히 여기신다. 성도들도 그런 자들을 모든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 한다.

[30절]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 . . .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에바브로디도는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놓은 자이었다. 그는 참으로 후대의 교회를 위해 희생적 봉사의 모범이 되었다. 주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명하셨다. 주를 위해 바르게 살다가 주를 위해 죽는 것이 참된 충성이다.

19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교훈을 준다. 첫째로, 우리는 복음의 참된 동역자가 되고 또 함께 군사된 자가 되자.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바울에게 그런 자이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런 자들이 필요하다. 오늘날 교회에도 바울 같은 바른 종들이 필요하고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동역자들과 복음의 군사들이 필요하다. 오늘날에는 누가 주를 위해 그런 역할을 감당할 것인가?

둘째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사모하자.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일, 곧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변호하고 그 복음을 믿은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견고하게 세우는 일이다. 바울은 이 일을 위해 수고했다. 많은 성도들이 자기 일에 바쁘고 주의 일에 관심이 적거나 없었을 때,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는 주를 위해 진실하게 바쳐졌다. 에바브로디도는 주의 일을 하다가 병들었고 죽기에 이르렀으나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않았다. 오늘날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사모하며 그 일을 위해 바쳐진 진실한 종들이 필요하다.

셋째로,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들과 일꾼들을 온전한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겨야 한다. 오늘날도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위해 바쳐진 충성된 종들도 필요하지만, 교회와 성도들이 그런 자들을 온전한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는 일도 필요하다. 교회는 주의 진실한 종들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복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