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1:27-30절,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호리홀리 2015. 6. 23. 14:25

27-30절,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27절]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 . . .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대리적 속죄의 죽음으로 죄인들이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소식이다. 이것이 십자가 속죄의 복음이며 사죄(赦罪)와 칭의(稱義)의 복음 곧 하나님의 은혜의 구원의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복음 안에서 값없이 주신 의에 일치하게 죄짓지 않고 의롭게 사는 것과 할 수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하고 변호하는 일을 위하여 사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어야 한다. 바울은 에베소서 4:1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라”고 교훈하였다. 하나님께서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신 방향이 있다. 우리는 그 방향을 역행하지 말고 그 방향대로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

특히,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생활로 두 가지를 언급하였다. 하나는 복음을 위한 일치된 협력이다. 우리가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복음에 합당하게 행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위해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일심으로,’ ‘한 뜻으로’라는 말들은 교회가 생각과 뜻에 있어서 일치되어야 함을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0에서도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빌립보서 2:2에서는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고 말했다. 성경은 ‘마음을 같이하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고후 13:11; 벧전 3:8). 예루살렘 교회는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고(행 1:14),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행 2:46),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했고(행 4:32),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다(행 5:12). 이와 같이, 우리는 일치된 마음으로 복음을 믿고 전파하고 변호하고 복음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28절]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 . . .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의 또 한가지는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믿으려 할 때와 복음을 전하려 할 때 항상 대적자들이 나타난다. 그것은 사탄의 방해 때문이다. 사탄은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과 성도들이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생활과 전도의 생활에는 항상 환난과 핍박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과 그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자들은 그런 환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다.

성도의 환난과 핍박은 그것을 일으키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증표이며, 그것을 당하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증표이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는 말은 이렇게 진실히 믿고 핍박까지 당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뜻이다. 우리가 받은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고전 4:7). 우리의 우리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고전 15:10). 우리가 환난과 핍박을 받는 것도, 또 그것을 잘 이겨나가는 것도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 곧 하나님의 은혜이다.

[29-30절]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 . . .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성도가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구원의 삶은 그리스도를 위한 삶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도 받는 삶이다. 그리스도를 위한 삶 속에는 당연히 그를 위해 고난도 받는 것을 포함된다.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은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조롱을 당하고,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을 받고,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는 자리에까지 나아가는 삶이다. 주께서는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고 하셨다(마 5:11-12). 바울에게는 그런 고난과 싸움이 있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그는 자신이 전도의 일을 하면서 당한 고난을 자세히 증거하였다(고전 4:9-13; 고후 6:4-10; 11:23-27). 바울뿐 아니라 빌립보교회도 같은 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초대교회는 많은 고난과 핍박을 경험한 교회이었다. 우리나라의 초대교회도 그러하였다. 모든 시대의 성도들은 고난을 각오하며 살아야 한다.

27절부터 30절까지의 말씀은 무엇을 교훈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자. 그것은 죄를 멀리하고 의와 선을 행하는 삶이요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이다. 둘째로, 우리는 복음을 위해 한 마음으로 협력하자. 복음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그 일을 위해 협력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이다. 셋째로, 우리는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을 각오를 하자. 주 예수께서 가신 길은 십자가의 길이었다. 사도들의 간 길도 그러하였다. 오늘 우리도 고난을 각오하고 주를 따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