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빌립보서

빌립보서4:8-9절, 무엇에든지

호리홀리 2015. 6. 23. 15:00

8-9절, 무엇에든지

[8절]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 . . .

 

 “종말로[마지막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목표를 증거한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적 완전이다. 우리에게 어떤 덕이나 기림[칭찬]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것이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추구해야 할 바들이 무엇인가는 분명하다. 로마서 8:5-6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성령]을 좇는 자는 영[성령]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에 속한 자들이 아니고 성령에 속한 자들이므로 마땅히 성령께서 주시는 덕들, 즉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그것들을 몇 마디로 표현한다.

첫째로, 그는 ‘무엇에든지 참되며’라고 말한다. 우리는 범사에 참되고 진실한 삶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위선과 거짓과 속임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악이다. 그것은 마귀의 속성이다. 우리가 비록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고 자란 가정적, 사회적 환경이 나빠서 유능한 인물이 못 된다 할지라도 참되고 진실한 인물은 되어야 한다. 성도의 성도다운 덕성은 그의 진실함에 있다.

둘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경건하며’라고 말한다. ‘경건하다’라고 번역된 원어(셈노스)는 디모데전서 3:8, 11에서 ‘단정하다’라고 번역된 말로서 ‘존경할 만하다, 품위 있다’는 뜻을 가진다. 성도들은 범사에 존경받을 만한 태도로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은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모범이 됨을 가리킨다.

셋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옳으며’라고 말한다. 옳은 삶, 의로운 삶,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목표이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불의하고 불법, 위법하고 부당한 것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항상 정정당당하게 살기를 힘써야 한다.

넷째로, 바울은 ‘무엇에든지 정결하며’라고 말한다. ‘정결하다’는 원어(하그노스)는 ‘순결하다, 거룩하다’는 뜻을 가진다. 죄는 더러움이다. 우리는 불의한 일을 멀리하고 부정당한 욕심, 사사로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물질 문제나 이성 문제나 명예와 권리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고 흠 없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라는 말은 인격의 아름다움을 묘사한다. 진실함, 존경받을 만함, 의로움, 순결함, 사랑할 만함, 칭찬할 만함 등은 인격의 완전함을 잘 드러낸다. 성도들은 도덕적 완전을 생활 목표로 삼고 이런 덕목들에 생각과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9절]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 . . .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원문에서 ‘내게’라는 말(엔 에모이)은 ‘내 안에서’라는 뜻이며 ‘본 바’라는 말에 걸린다. 본절을 다시 정확하게 번역하면, “너희는 배우고 받고 듣고 또한 내 안에서 본 그것들을 행하라”이다.

빌립보 교인들이 배우고 받고 들은 것들이란 앞에서 언급한 도덕적 완전함이다. 그들은 무엇에든지 참되고 무엇에든지 존경받을 만하고 무엇에든지 옳고 무엇에든지 순결하고 또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고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배웠고 그 교훈을 받았고 그 말씀을 들었다.

또한 그들은 그 도덕적 완전함의 한 본을 바울의 신앙생활 속에서 보았다. 바울은 범사에 모범적 삶을 살았다. 비록 그가 엄격한 의미에서 완전한 모범은 아니었을지라도, 그는 비교적 흠이 없는 인격자로서 성도들 앞에서 행하였다. 그래서 그는 3:17에서도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4:3-4에서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간증하였고, 또 고린도전서 4:16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 말하였다. 바울의 생활 교훈은 자신이 직접 실천한 바이었다. 가장 효과적 교육은 선생이 직접 실천하며 본을 보이는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완전함을 생활 목표로 삼고 실천하라고 가르친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삶을 항상 생각하고 완전한 삶을 실행해야 한다. 구원은 생활의 변화이다. 생활이 변하지 않는 구원은 구원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더러운 자가 변하여 깨끗한 자가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구원이다.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은 자라면 바로 그러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덕적 완전은 바로 우리의 삶의 목표요 실천 강령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약 2:17).

바울은 또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고 말했다. 그것은 온전한 삶의 결과를 증거한다. 온전한 삶의 결과는 첫째로 하나님과의 동행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특권 중의 특권이요 가장 든든한 보장이며 보증이다. 그것은 각양의 기도 응답을 포함한다. 과연 요한일서 3:21-22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씀했다. 온전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늘 들으시는 복된 삶인 것이다.

온전한 삶의 결과는 둘째로 하나님의 평강이다.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경에서 ‘평강’이라는 말(에이레네, 히브리어 솰롬)은 포괄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그것은 마음의 평안 뿐만 아니라, 몸의 건강, 물질적 여유, 환경적 평화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것은 불안, 병, 가난, 전쟁과 반대되는 말이다. 그것은 우리말의 ‘안녕’이라는 말과 같다. 이 평안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때에 오고 사람이 죄를 지을 때에 거두어지는 것이 율법의 기본 정신이다. 이사야 48:18은 말씀하기를, “슬프다, 네가 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만일 들었더면 네 평강이 강과 같았겠고 네 의가 바다 물결 같았을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 이사야 48:22과 57:21은 악인들에게는 평안이 없다고 말했다(사 48:22).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평안이 넘칠 것이다.

8절과 9절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도덕적 완전을 생활의 목표로 삼자. 그것은 진실함과 존경받을 만함, 올바름과 순결함, 사랑할 만함과 칭찬할 만함으로 표현된다. 그것은 성경에 교훈된 내용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도덕적 완전이다. 그것이 우리의 성화의 목표이다.

둘째로, 우리는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자.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이 되셨다. 사도 바울도 우리에게 본이 되었다. 기독교는 단순히 이론의 종교가 아니고, 이론을 가진 실천의 종교이다. 먼저 믿은 자들은 나중에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평안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고 체험하자.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도덕적 완전을 실천하는 성도들에게 약속된 놀라운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