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겔서 강해(구속사)

에스겔서48장/여호와삼마

호리홀리 2015. 3. 26. 22:23

(3). 땅의 내적 구획(48:1-29절)

 

①. 예물로 드릴 땅 북쪽과 남쪽의 지파들(1-7, 23-29절)

 

  각 지파들의 위치는 그들이 역사 속에서 차지했던 위치보다 야곱의 자손들의 지위를 반영한다는 원칙이 좀 더 지배적이다. “예물로 드릴 땅”(참고 48:8)에서 가장 먼 북쪽과 남쪽에는 야곱의 첩들인 실바와 빌하의 아들들의 지파(1-3; 27-28절)가 위치한다. 그리고 좀 더 중심에 가까이 야곱의 본처인 라헬과 레아의 아들들이 북쪽과 남쪽에 각각 네 지파씩(4-7, 23-26) 위치한다.

 

  여기서 ‘예물로 드릴 땅’에 가장 인접해 북쪽에는 유다 지파, 남쪽에는 베냐민 지파가 위치하는데 이는 그들의 역사적 위치와 반대이다(7, 23절). 즉 ‘남유다 왕국’으로 대표되던 유다 지파도 새로운 땅에서 ‘북쪽’에 위치할 것이다. 이런 새로운 배치는 다시 회복할 나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눔이 없는 하나 될 것임을 상징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새 땅에 대한 이상은 왕국 시대 이전의 모습에 기초한다.

 

  48:7절에 “동쪽에서 서쪽까지는 유다의 몫이요”유다 지파가 야곱의 육적(肉的) 장자된 르우벤 대신 거룩한 땅에 연접 할 수 있었던 것은 야곱의 축복을 통해 메시야의 출생을 언약 받은 영적 장자의 신분이었기 때문이다(창 49:8-12). 또한 유다 지파는 베냐민 지파와 함께 반역한 북이스라엘 왕국에 동참한 10지파를 대항해 이스라엘 왕국의 정통성을 이어갔다는 점에서 타지파 보다 신앙적, 역사적인 우월성을 가졌다. 한편 거룩한 땅을 분기점으로 북쪽과 남쪽의 지파 배열이 동등한 6:6의 비율로 정해지지 않고 7:5의 비율로 배분된 것은 완전수 ‘7’은 항상 대표적인 수로, ‘5’는 그 ‘7’의 보충적인 수로 여긴 히브리적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Hengstenberg). 따라서 이러한 배분은 북쪽 일곱 지파 중에서도 대표적인 유다의 탁월한 위상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② ‘예물로 드릴 땅’

 

  ‘예물로 드릴 땅’의 위치도 회복될 땅의 새로움을 잘 보여 준다. 이 특별한 땅의 위치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다. 라이트의 지도를 살펴보면 ‘특별 보류지’의 남쪽에 위치한 지파들의 땅의 폭이 북쪽에 위치한 지파들의 그것보다 좁은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특별 보류지’의 위치를 역사적인 예루살렘의 위치와 동일시할 때 그려진다. 반면, 두굿의 지도는 각 지파들의 땅의 폭이 모두 동일한 반면에 ‘거룩한 땅’의 위치가 역사적인 예루살렘의 위치보다 북쪽으로 약 48km쯤 떨어진 곳으로 예루살렘 이전에 회막과 언약궤가 위치했던 예배의 중심지인 실로(참고 수 18:1; 삼상 1:3, 24; 4:3) 근처가 된다.

 

  예배 중심지의 새로운 위치는 예루살렘이 우상 숭배로 더러워졌던 것(참고 8-11장)을 생각해 볼 때, 그리 놀랄 만한 것이 아니다. 또한 새로운 땅의 기업 분배가 왕정 이전의 전통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오히려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요컨대, 에스겔서는 좀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회복을 바라보고 있다.

 

  ‘예물로 드릴 땅’의 자세한 구획은 45:1-8에 이미 나와 있다. 45장의 기록과 비교해 48장이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있는 부분은 ‘성읍의 기지’에 관한 것이다(45:6; 48:15-19). 이 성읍 기지의 크기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줄 땅들과 비교해 길이는 같고 폭은 그것들의 절반이다(라이트 507쪽: 참고 두굿 666쪽 그림). 이 성읍 기지는 그 중앙에 위치한 성읍(15-16절)과 그 둘레의 땅(성읍 사방의 남은 둘레7)와 성읍 양쪽에 남아 있는 땅, 17-18상절)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남아 있는 땅의 용도이다. 지파를 막론하고 성읍의 일하는 자들이 그 땅을 경작할 것이고 그 산물이 그들의 양식으로 된다(18하-19절), 즉 이 땅은 일상적 노동의 터전인 셈이다.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길이는 동쪽으로 만 척이요” 여기서 ‘남아 있는 땅’은 곧 성과 성의 들을 제외한 성읍을 가리키며 이만 오천 척 되는 총 장의 길이에서 성과 성의 들의 장의 길이인 오천 척을 제외하면 그 성을 중심으로 동 서편에 각각 장 일만 척의 성읍이 남게 된다. “그 땅의 소산을 성읍에서 일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지라” 이에 관해서는 몇 가지 다른 이견들이 제시된다. (1) 그 성읍이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란 점에서(45:6) 열두 지파에서 선발된 사람들이 성읍을 건축하고 인근에 있는 성전 봉사자들을 위해 그 땅을 경작함을 가리킨다 (Havernick, Gesenius). (2) 이 땅이 성소가 있는 거룩한 땅과 연접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를 수비하기 위한 군인들을 가리킨다(Hengstenberg). (3) 그 성읍에 거주하는 일반적인 노동자를 가리킨다(Kliefoth, Delitzsch). 문맥상 (1)의 견해가 가장 적합한 듯하다.

 

  개역한글은 48:15에 있는 히브리어 단어 ‘홀’을 ‘속된 땅’ 혹은 ‘속된 지역’으로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한글의 ‘속되다’라는 표현은 뭔가 잘못된 듯한, 심할 경우에 죄와 관련된 듯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표현으로써 히브리어 ‘홀’의 의미를 오해하게 만든다. NIV는 이 부분을 ‘성읍을 위한 일반적 용도’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일반적이다’라는 번역이 히브리어 ‘홀’에 더욱 적절하다. 개역한글에서도 같은 단어가 쓰인 사무엘상 21:4-5에서는 이 단어를 ‘보통’이라고 번역하고 있다(‘보통 떡’, ‘보통 여행’,). 여컨대, ‘속된’ 일상은 악하거나 부정한 것이 아니다. 이런 일상적 노동의 터전이 비록 ‘거룩하게 구별할 땅’(트루마트 하코데쉬, 10, 18, 21절)과 구별되지만, ‘예물로 드릴 땅’(하트루마 아쉐르 타리무, 8절)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4). 여호와께서 계시는 성읍(48:30-35)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은 48:15-19에서 언급된 성읍에 관해 문들과 그 성읍 자체의 이름을 언급하며 마친다. 성읍 기지의 중앙에 위치한 성의 출입문들을 언급한다. 곧 이 출입문들은 성의 사면에 각각 3개씩 모두 12 개가 있게 되며 그 각각의 출입문에는 이스라엘 12지파의 이름이 명명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2대문에 12지파의 이름을 명명한 새 하늘과 새 땅의 새 예루살렘 환상 기사가 수록된 계 21:12과 연관되어 있다(Delitzsch). 왜냐하면 본장의 새 성전의 성읍 역시 궁극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성취될 온전한 하나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성의 출입문들이 12지파의 이름으로 명명되었다는 것은 곧 그 성읍이 온 이스라엘의 공동의 소유인 것을 암시하는데, 이러한 성읍이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로 명칭 되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새 이스라엘 공동체와 항상 함께하시리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한편 에스겔의 사역이 절정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35절에서 “그 날 후로는”(욤) 여기서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구원 사역이 완성되는 이스라엘의 온전한 회복의 날인 동시에 본서에 기술된 모든 예언과 규정과 지침들이 완전하게 성취되는 때를 가리킨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원전상 본서는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란 뜻의 ‘여호와 삼마’라는 단어로 종결되는 바, 이는  에스겔 선지자의 전(全)사역을 함축하는 본서의 총괄적인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곧 에스겔 선지자가 환상 중에 목격한 여호와의 영광의 떠나심(10:18-22;11:22-24)과 다시 돌아오심(43:4)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그 새 성전에 거하시면서 다시는 당신의 백성을 떠나지 않으시리라 하신 약속으로 귀결되며(43:7) 결과적으로 그 모든 사역이 이 ‘여호와 삼마’로 종결되는 것이다. 이 성읍이 12지파, 곧 전 이스라엘의 공동 소유란 점에서, 단순하게 여호와의  처소를 지칭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새 이스라엘과 그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임재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궁극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이 성읍은 정사각형 모양이 상징하는 것처럼 완벽할 것이며(참고 계 21:16), 각 문의 이름이 보여 주는 것처럼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 되어 한 성읍을 위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성읍의 이름은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