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에스겔서 강해(구속사)

6). 여호와의 주권회복(에스겔서38-39장)

호리홀리 2015. 3. 26. 11:33

6). 여호와의 주권회복(38-39장)

 

  38-39장은 새로운 이스라엘의 대적인 마곡의 곡 및 그 수하 집단과 벌일 최후의 전쟁을 묘사하고 그 결과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선포한다. 따라서 에스겔은 전쟁의 위협이나 외부 및 경쟁이나 내부의 나쁜 지도력이 모두 제거되고 생존 환경이 잘 정리된 상태에서 새로운 성전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40-48장을 통해 선포한다. 이런 에스겔의 회복 프로그램은 그 과정의 주체가 이스라엘 공동체나 그들의 지도자가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곡은 에스겔 38-39장과 요한계시록 20:8절에만 등장한다. 그리고 창세기 10:2과 역대상 1:5에서 마곡의 곡은 메섹 및 두발과 함께 야벳의 아들이라고 말한다. 에스겔에서는 마곡의 곡을 여호와 하나님이 멸망시킬 최후의 전쟁 상대자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체가 더욱 궁금하다.

 

  본 구절에서 그 마곡 땅에서 온 ‘곡’이 뒤이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에 의해 수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서의 ‘마곡 땅’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을 포괄하는 명칭이다(Schroder). ‘곡’(고그)은 역대상 5:4에서 르우벤 지파의 후손으로 등장하기는 하나 개인적 명칭이기보다는 마곡이란 말에 대한 병행의 의도로 사용된 정치적 관료의 명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Schroder, Delitzsch). 곧 학자들은 ‘곡’의 어원을 ‘높다’, ‘장엄하다’, ‘오르다’란 뜻의 ‘게에’로 유추한다. 만약 그렇다면 이 ‘곡’은 정치적 최고 권력자에 대한 명칭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곡’은 본장의 묵시 문학적 형태상 그 이름의 역사성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의 수장을 상징한다는 점, 곧 종말론적으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대변하는 사탄을 지칭한다는 점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실제로 ‘곡과 마곡’은 계 20:8에서 하나님을 연합하여 대적하는 자들로 나타난다.

 

  38-39장을 읽는 대상은 포로로 잡혀가 회복을 염원하는 유다의 지도자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겔의 예언이 추구하는 목적은 마치 이사야 40-55장과 같다. 이사야는 고국으로 귀환하기를 두려워하는 바빌론의 유다 포로민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면서 회복에 대한 희망을 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원수들을 불러내는 여호와 하나님(38:1-6절)

 

  에스겔은 여호와로부터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곧 곡에게로 얼굴을 향하고 그에게 예언하여”(2절)라는 말씀을 듣는다. 그 내용은 “너를 돌이켜 갈고리로 네 아가리를 꿰고 너와 말과 기마병 곧 네 온 군대를 끌어내되 완전한 갑옷을 입고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가지며 칼을 잡은 큰 무리와 그들과 함께 한 방패와 투구를 갖춘 바사와 구스와 붓과 고멜과 그 모든 떼와 북쪽 끝의 도갈마 족속과 그 모든 떼 곧 많은 백성의 무리를 너와 함께 끌어내리라”(4-6절)는 것이다.

 

  곡의 동맹군은 다섯 나라 즉 바사, 구스, 붓, 고멜, 도갈마를 포함하여 메섹, 두발의 일곱 족속으로 ‘7’은 전부 혹은 완전하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들의 위치는 구스와 붓이 남쪽 끝에서 오고, 고멜과 도갈마가 북쪽 끝에서 오기 때문에 곧 벌어질 전쟁은 세계적 규모의 마지막 전쟁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세계 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일곱 동맹국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가시적으로 살벌하고 가공할 만한 원수들이 몰려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여호와의 손길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2). 전쟁의 시기와 장소(38:7-9절)

 

  전쟁이 일어날 시기는 본 예언의 종말론적 특성을 극명하게 드러낸 말로서  8절에 ‘여러 날 후’는 단순한 미래의 의미보다는 긴 시간의 축적으로 도래하는 최종적인 역사의 끝을 가리키는 말로 ‘해의 마지막 때’란 뜻의 ‘말년에’와 동격으로 쓰여진 것이다(Delitzsch, Schroder). 곧 여기서의 ‘말년’은 궁극적으로 도래할 세상의 종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인 메시야 시대를 가리키는 것이다(사 24:22;계 20:7 이하). 곡이 전쟁을 일으키는 뚜렷한 목적이나 명분은 설명되고 있지 않지만 전쟁의 위세를 보여주고 있다. “광풍같이 이르고 구름같이 땅을 덮으리라” 여기서 ‘광풍같이’는 ‘폭풍’이란 일차적 의미 외에 ‘파괴하다’, ‘황폐하게 하다’란 결과적 의미를 함축하는데, 엄청난 폭풍이 지나간 뒤처럼 철저한 파괴와 황폐의 정황을 상징한다. 그리고 ‘구름’이 성경의 용례상 종종 완전한 절망과  재앙의 도래를 상징한다는 점에서(30:3, 18;욜 2:2) 본 구절은 곡의 세력이 이렇듯 모든 것을 철저하게 파괴시키고 황폐화시킬 만큼 막강함을 강조 한다

 


 

(3). 전쟁의 목표(10-17절)

 

  10절은 곡이 심중으로 “악한 꾀를 내어” ‘악한 꾀’( 마하샤바 라아)란 ‘악한 생각을 품다’, ‘악한 계획을 도모하다’란 뜻으로 곡의 이스라엘 침략이 그들의 불의한 야심과 이기적 정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기인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로 이러한 그들의 악의마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최후 심판을 위해 이용 하신다. 전쟁 대상자들은 “평온의 고을들”에 거주 하면서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 없이 다 평안히 거하는 백성”이다(11절). 전쟁을 통하여 얻으려는 것은 “은과 금을 빼앗으며 짐승과 재물을 빼앗으며 물건을 크게 약탈”(13절) 하는 일이다. 이와 같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여호와의 주도적 역사로 인한 일이고 그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내가 너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의 눈앞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들이 다 나를 알게 하려 함”(16절)이다.

 

  마지막 날에 벌어질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이 오래전에 계획한 사건이 실현 되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곡과 그의 동맹국 일곱 나라는 북쪽 끝과 남쪽 끝에서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사로잡혀 간 이방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산으로 귀환해 오랫동안 평안히 거주하는 백성이 재물을 약탈하려고 몰려들 것이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일어난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어 그를 알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전쟁의 의사도 없이 평안히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엄청난 위기에 빠질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하는 전쟁이므로 결국 모두가 하나님의 거룩하심만을 기억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4). 곡을 멸망시키는 하나님(18-23절)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하는 전쟁이므로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전쟁에 광분한 곡이 이스라엘 땅을 치러 오면 드디어 하나님의 ‘노여움’이 표출될 것이다. 그 노여움은 큰 지진(19절)과 같은 자연 재해, 여기서 ‘지진’으로 쓰인 ‘라아쉬’는 원어상 ‘지진’이란 의미 외에도 ‘진동’, ‘동요’, ‘소란’ 등의 의미를 통해 이스라엘 땅에 일어날 실제적인 지진(earthquake, NIV)으로 보며(Delitzsch) 또 다른 학자는 상징적 의미에서 하나님의 권능의 임함을 통한 땅의 진동이나 소란(shaking, KJV, LB, RSV)으로 이해한다(출 19:16, Schroder). 그 어떤 해석을 취하든지 ‘지진’이 하나님의 극한 진노를 상징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전염병과 피, 쏟아지는 폭우, 비처럼 내리는 큰 우박덩이와 불 그리고 유황 같은 재난으로 나타날 것이다(22절). 여기서 심판의 요소들이 더욱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이 재앙들은 소돔과 고모라에 임한 재앙과 출애굽 당시 애굽에 임한 재앙 등 성경에 나타난 거의 모든 종류의 자연적 재앙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13:11, 13;창 19:24;출 7:14-25;9:8-35;수 10:11) 전우주적 심판의 종말론적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곡과 그 동맹국에게 내려지는 재난을 통해 그들은 패배할 것이다. 곡의 패배에 이스라엘은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다. 곡을 이긴 여호와 하나님을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보여 주실 것이다(23절).  ‘내 존대함’이란 원어상으로 모든 측면에서의 '탁월함'을 의미하는 바, 곧 하나님의 전지전능 하심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대적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심으로써 그것을 목격한 대적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깨닫게 하신다. 이로써 하나님은 영적 이스라엘 된 당신의 백성들에 대한 변함없는 구원 의지를 드러내셨다.  

 

(5). 곡의 패배와 땅의 정화(1-20절)

 

  하나님은 곡의 왼손에 든 활과 오른손에 든 화살을 쳐서 떨어뜨린 후 이스라엘 산에서 쓰러뜨릴 것이다. 본 절은 일반적으로 활을 왼손에, 화살을 오른손에 들고 사용하는 모습에서 유추한 것으로 곧 하나님께서 곡 연합군의 모든 무기를 무력하게 만드시며 결과적으로 그를 철저한 패배와 멸망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문학적 표현이다(시 37:15;46:9). 그리고 그들의 시체는 독수리, 매, 까마귀와 같은 각종 사나운 새와 사자, 하이네나 ,표범과 같은 들짐승에게 먹힐 것이다(2-5절). 본 구절은 매장을 중요시 했던 고대 근동의 관습에 비추어 볼 때 죽어서까지 버려지는 극단적인 신적 저주의 정황을 암시하는 것으로, 패망한 곡의 군대가 매장조차 당하지 못하고 철저하게 버려지게 되리란 예고이다(신 21:22, 23).

 

  이어서 하나님은 곡의 영토인 마곡과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들에게 불을 내릴 것이라고 선언한다. 여기서 ‘불’은 일차적으로 38:22에 언급된 자연적 재앙의 하나인 동시에 이차적으로는 철저한 파멸을 상징하는 보편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계 20:9, Schroder, Delitzsch). 그리고 “평안히 거주하는 자”는 지중해 연안의 해안국들과 섬나라들로서 곡과 동맹한 이방 국가들의 백성을 가리킨다. 이는 특히 먼 지방이란 의미를 함축하는 바, 종말로 있을 적그리스도 세력의 전우주적 규합을 예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본 절은 곡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단지 이스라엘을 침공한 그의 군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곡의 고토와 그를 원조한 여타 이방 국가들에까지 미칠 것임을 가리킨다. 이는 또한 종말로 있을 심판의 엄중성과 적그리스도 세력의 철저한 소멸을 시사한다(계 20:7-10).

 

  그 다음에 곡의 패배로 인해 땅에 떨어진 무기들을 이스라엘 성읍 거주자들이 불살라 없애는데 7년이나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또 전쟁 중 땅에 버려진 시체는 땅을 부정하게 하므로 거주민들이 일곱 달 동안 그 시체들을 매장할 것이고 그 장소는 ‘하몬곡의 골짜기’로 도시의 아름은 ‘하모나’(군대)로 부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11-16절). 여기서 ‘하모나’는 ‘많은 무리’, ‘소란’ 등의 뜻을 가진 ‘하몬’에서 유래된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죽어간 수많은 곡 군대의 사체가 매장된 곳이라는 사실을 잘 암시해주는 이름이다.

 

  17절부터는 매장되지 않은 시신 처리를 언급하고 있다. 특히 ‘잔치’(제바흐)는 구약에서 짐승을 잡아 드리는 희생 제사를 말한다. 흔히 제사에서는,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피와 기름은 여호와의 것으로 따로 드리고 나머지 살코기는 나눠 먹는다. 그런데 여기서 제사에 참여해 제물을 먹는 자들은 사람이 아닌 ‘각종 새와 들의 각종 짐승’이다. 그들이 먹는 것은 죽은 시신들의 피와 살이다. 이것은 아마 죽임을 당한 곡의 군대에 대한 또 다른 처리 방식을 언급함으로써 그들의 패배를 다시 한 번 단정하고 자축하는 모습을 거듭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6). 회복된 하나님의 영광(39:21-29절)

 

   21-24절은 역사의 종말에 벌어질 전쟁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전쟁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는 자신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 날 이후에 이스라엘 족속은 내가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을 알겠고” 곡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방인들과는 달리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이 그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보호와 구원의 원천이 되며 유일한 신앙 대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 과거에 포로로 잡혀갔던 일은 여호와의 무능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 받은 것임을 여러 민족들이 알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혀 갔던 줄을 알지라 그들이 내게 범죄 하였으므로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고 그들을 그 원수의 손에 넘겨 다 칼에 엎드러지게 하였으되” 그리고 이스라엘의 몰락은 하나님이 그 얼굴을 가렸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더러움과 그들의 범죄한 대로 행하여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가리웠었느니라”(겔 39:24) 여기서 성경의 용례상 하나님의 얼굴은 종종 그 백성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지극한 관심과 긍휼을 상징한다(시 11:7; 사 54:8; 계 1:16). 또한 ‘가리웠다’( 사타르는 ‘숨기다’, ‘감추다’란 뜻으로 하나님께서 그 얼굴을 숨기셨다는 것은 곧 그들의 죄악을 질책하시기 위해 철저하게 대적들의 수중에 그들을 버려두셨음을 뜻한다. 신앙 공동체는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끝없는 은혜와 자비를 신앙 공동체에 베풀어 주셔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라. 그 얼굴을 가리게 하는 일을 삼가라. 의롭고 바르며, 선하고 성실하게 살아라,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