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개론

제12장. 다윗의 길

호리홀리 2015. 2. 24. 20:39

제12장. 다윗의 길

 


 

성경 본문: 열왕기상하

 


 


 

다윗은 온갖 환난과 한두 차례의 치명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주종 관계를 끝까지 신실하게 지킨 사람이다. 다윗이 늙어 죽을 날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어린 왕자 솔로몬을 후계자로 지명한다. 솔로몬은 부친의 유언을 따라 매사를 지혜롭게 처리하여 국권을 견고히 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인척 동맹을 통하여 국제적인 평화를 다진다.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일은 유명한 일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솔로몬은 미리 구축해 놓은 부귀와 존영과 평화를 바탕으로 하여 야웨 하나님께 성전을 건축하여 바친다.

 


 

그러나 솔로몬의 부귀와 영달과 인척 동맹을 통한 평화 추구 정책 등이 도리어 그에게 올무가 될 줄이야! 솔로몬은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여 그녀들이 들여온 이방신 숭배를 묵인하다가 허용하고, 결국에 가서는 그것에 빠지는 큰 누를 범하게 되었다. 그토록 유명하던 솔로몬의 지혜가 이방 여인들의 품안에서 그만 녹슬고 만 것이다. 또한 지혜와 더불어 그의 신앙심 마저도! 이제 솔로몬의 실패는 이스라엘의 장래에 어떠한 불행을 가져올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솔로몬이 죽고 그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하면서 부터 나라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게 된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은 결정은 이 분열의 속도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마침내 나라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갈라져서, 북쪽은 과거 솔로몬의 신복이었던 여로보암의 통치하에 들어간다.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남왕국만은 다윗 가문에게 맡기신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그 출발부터 우상 숭배를 받아들이는 혼합 종교의 길을 택하였다. 여로보암은 백성의 마음이 남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위치한 야웨의 성전으로 기울까 염려하여 자국의 남북단 경계 도시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세운다. 그리고 그는 이 금송아지 숭배를 주축으로 한 새로운 종교 체계를 확립한다. 여로보암의 죄악에 대한 심판이 남왕국 유다로부터 온 한 선지자에 의하여 예고되는가 하면, 이후로 여로보암의 죄악은 온 이스라엘을 타락케 한 근본 요인으로서 지적되곤 한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쿠테타에 의하여 그 정권이 빈번히 교체된 반면에, 남왕국 유다는 여러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겨우 다윗 자손을 통한 왕위 계승이 유지되어 내려갔다. 그럴지라도 남왕국의 많은 왕들은 북왕국의 풍습을 따라 곧잘 이방신 숭배에 빠지곤 하였다.

 


 

이처럼 대부분의 군왕들이 야웨 하나님의 대리자 노릇을 제대로 수행하기는 커녕 도리어 하나님을 거스려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는데 앞장서자, 하나님은 선지자라는 새로운 심부름꾼을 통하여 당신의 목적을 본격적으로 이루기 시작하신다. 물론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과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등도 모두 선지자라고 불린 바 있다. 그러나 분열 왕국 시대에 이르러 이들 선지자들은 보다 체계적인 조직체를 이루어 학교를 운영하는가 하면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분열 왕국 시대 전반기의 가장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이다. 이들 두 사람은 사제 관계로서 둘다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다. 야웨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불씨 마저도 점차 꺼져가는 듯이 보이던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이들의 존재는 다시금 신앙의 불을 질러주는 촉진제가 되었다. 따라서 성경 기자는 북왕국 이스라엘의 어느 왕보다 이들 두 사람에 대한 기록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왕상17-19장; 왕하1-9장, 13장 참조).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의 메시지에 전적으로 부응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무시하면서 각자의 소견대로 권력의 칼을 마음껏 휘두르고자 하였다. 우상 숭배와 아울러 사회 전반에 걸친 도덕적 부패의 정도도 점점 깊어만 갔다. 마침내 북왕국 이스라엘은 죄의 무거운 짐에 눌리어 그만 질식사하고 만다. 주전 723년 앗시리아의 침입을 받아 멸망하고 만 것이다.

 


 

한편 남왕국 유다는 북왕국과는 달리 비교적 많은 수의 현군을 만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의 전반적 부패라는 점에 있어서는 북왕국과 다를 바가 없었다. 북왕국이 멸망한 이후로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신실한 군왕도 있었지만, 므낫세 같은 왕은 유다를 멸망으로 이끄는데 선봉장 역할을 한다. 이 무렵 유다 나라에는 과거 어느 시대 보다도 선지자의 활동이 활발하였다. 이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른 유다의 멸망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남은 자의 구원, 이스라엘의 회복, 메시야 왕국의 도래 등 거창한 메시지들을 힘차게 토해냈다.

 


 

주전 588년 마침내 남왕국 유다 마저도 북왕국 이스라엘의 전철을 따라 파멸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유다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멸망하고 만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 안의 성전과 더불어 불에 타고 많은 유다 사람들은 잡혀서 머나먼 낯선 땅으로 끌려가게 된다. 그 옛날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예견한 바가 (신명기 28장, 31-32장 참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복과 저주, 생명과 멸망의 길을 분명히 제시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스스로 생명의 길을 버리고 멸망의 길을 자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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