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

호리홀리 2015. 2. 24. 14:48

누가복음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 중에 첫번째는누가복음이고 두번째 책은 사도행전이다. 누가는 이방인 의사로 예수님의 역사적 생애를 연대순으로 정리한다. 누가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길고 광범위한 복음서로 죄인을 찾아 구원하러 오신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또한 예수님의 사역, 죽음, 부활로 나아가기 전에 자세하게 예수님의 계보, 탄생, 초기 생애를 제시한다. 본서의 내용에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여자들과 가난한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또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인자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까지 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통하여 영생의 길을 열어주고 참된 제자도를 훈련하여 제자로서 삶을 살게 하는 모습이 대비되어 나온다.

 

 

 

저자 누가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사랑받는 의사였다(골4:14). 누가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서 처음으로 바울과 동행하였으며(행16:10), 지혜있고 학식이 많은 사람으로 마지막에는 바울을 따라 로마까지 함께 갔던 인물이다(행28:16, 몬24절).

 

 

 

누가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주님의 사역을 정리하여 데오빌로에게 드릴 목적과 특히 헬라인들로 하여금 인자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깨닫고 확신있게 믿게 하기 위함이었다.

 

 

 

 

 

 

 

**누가복음의 특징**

 

 

 

14. 복음은 전세계적이며 전인류적인 것이다:

 

 

 

마태와는 달리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족보를 아담에게까지 소급함으로, 예수님이 전 인류의 구세주가 되심을 보여주며 세례 요한의 활동에 관해서도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눅3:6)는 이사야의 말을 인용해서 복음이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누가는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이 팔레스틴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이며 유대인을 엄어 전 인류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15. 연대기적 방법과 지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그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 즉 예수그리스도께서 주로 팔레스틴 안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 이후부터 바울이 로마에 입성할 때까지, 즉 예수님의 제자들이 땅끝까지 이방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 다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활동을 담고 있고 사도행전은 제자들의 활동을 담고 있다. 또한 누가복음은 주로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르는 복음 전파과정이 다루어지고 있고 사도행전은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로마에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을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라 말한다면 사도행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 전도와 선교가 크리스챤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임을 선포한다.

 

 

 

누가는 당시의 시대가 종말의 시대라고 믿었고 그래서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살았던 자들이 종말이 오지 않자 복음 신앙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재림지연문제). 이같은 상황에서 신앙적인 지도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신앙적 해답을 제시한다.

 

 

 

누가는 초대교회 교인들에게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주님이 오시기까지 온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행1:8) 즉 전도와 선교가 기독교인의 사명이요 교회의 사명이며 우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담고 있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에서 기독교 신앙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이같은 관심은 부자들에 대한 경고로 나타난다(눅14:12-13, 눅18:22). 즉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선언과 더불어 부자에 대한 저주선언이 나란히 강조되고 있다.(눅6:20,24/16:19-21 거지 나사로의 비유/ 눅12:16-21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세리와 죄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세리와 죄인은 소외되고 버림 받은 존재로 언급하고 있는데(눅5:30, 7:34, 눅15:1), 이들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에서 죄인 취급 받던 “세리와 죄인의 친구”(눅7:34)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여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다. 사렙다 과부(눅4:26), 나인성 과부(눅7:11이하), 마리아와 마르다(눅10:38이하), 예루살렘성에서 우는 여인들(눅23:27이하) 등 모든 이야기에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인 쪽보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마리아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은 복음서 가운데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가장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있다(9:51-56).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류(10:29-37)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경멸하고 천대하던 사마리아인을 오히려 유대인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강조하고 있다.

 

 

 

또한 눅17장의 10명의 문둥병자 고치심에 관한 내용을 보면, 10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 문둥병자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발 아래 엎드려 감사했음을 선포한다(17:15-16). 유대인이 아니라 오히려 사마리아인을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훌륭한 신앙인, 모범적인 예배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로 볼 때 가히 파괴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방인에 대한 관심: 누가복음을 특별히 “이방인의 복음서”라고도 부른다. 그것은 누가의 사상이 보편주의이고 그의 관점이 세계적이기 때문이다. 마태와는 달리 예수님의 족보를 온 인류의 조상인 “아담”에게까지, 하나님에게까지 소급한다. 또한 이방인들, 특히 로마인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로마의 관리와 총독들에게까지도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이었고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음을 강조하고 있다.

 

 

 

 

 

17. 두 아담의 비교에 대하여: 유혹을 이기는 비결

 

 

 

아담과 그리스도는 모두 세 가지 측면의 유혹에 직면했다. 아담은 그 유혹에 무릎을 꿇었고 그 결과 인류에게 죄와 죽음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유혹이 끊임없이 부딛쳐 온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가장 심플하면서도 가장 파워풀한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방법을 쫓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에 대적하였고 그 결과 인류는 의롭다함과 영생함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억하라!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약할 때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강할 때 실패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요일2:16   창3:6 첫번째 아담    눅4:1-13 두번째 아담 그리스도

 

 

 

육체의 정욕     먹음직도 하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김의 방법: 말씀으로 이겨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안목의 정욕    보암직도 하고         마귀가 ~~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김의 방법: 오직 주님을 위해 일하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이생의 자랑   지혜롭게 할 만큼      여기서 뛰어 내리라

 

                    탐스럽기도 한        *이김의 방법: 의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높이신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