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 18:1-8,끈질긴 기도

호리홀리 2015. 5. 5. 21:07

누가복음 18:1-8

 

 

본문에 나오는 과부는 힘도 없고 백도 없었습니다. 그녀는 “자주” 판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자기를 못살게 구는 원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부는 억울했습니다. 원한이 뼈에 사무쳤습니다. 자신의 원한을 풀어달라고 판사에게 호소했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원한을 풀어주소서.” 이 말은 헬라어 원어로는 ‘에크디케손’이라는 부정과거형입니다. 그 원형 ‘에크디케오’는 ‘누구를 위하여 정의를 확보해 주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롬 12:19). 그것은 억울한 분통을 풀어주는 것입니다(행 7:24; 고후 10:6; 계 6:10; 19:2).

 판사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과부는 계속 거절당해도 끈질기게 찾아갔습니다. 판사가 귀찮고 괴로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5절의 ‘번거롭게 하다’의 원어는 ‘괴로움을 유발하다’(‘파레케인 코폰’)는 의미가 있습니다. ‘괴롭게 하다’의 원어는 ‘몹시 괴롭히다, 못 견디게 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권투선수가 상대의 눈에 피멍이 들게 치는 것처럼 괴롭히는 것입니다.

본문의 과부는 얼마나 집요한지 모릅니다. 판사는 말하자면 눈이 시꺼멓게 멍들 정도로 몰렸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과부는 힘은 없어도 끈기가 있었습니다. 과부는 한두 번 호소한 것이 아니라, “늘” 호소했습니다(5절). “늘”이란 ‘끝까지’(‘에이스 텔로스’)입니다. 과부는 끝까지 물고 늘어졌습니다. 악명 높은 판사가 나가 떨어지도록 매달렸습니다.

주님은 6-9절에서 대조의 법칙으로 이 비유를 적용하셨습니다. 판사는 불의하나 하나님은 정의로우십니다. 판사는 매정하지만 하나님은 자비가 풍성하십니다. 판사는 오래 풀어주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속히 풀어주십니다. 판사는 풀어주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풀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판사는 자기의 편의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하나님은 선민의 유익에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과부는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이지만 선민은 하나님의 총애를 받는 사람입니다. 과부는 힘이 없지만 선민은 하나님의 왕자나 공주의 권세가 있습니다. 과부는 백이 없지만, 선민은 하나님 백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대조를 통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강조하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 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본문의 핵심이 이런 대조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6절을 보십시오. “불의한 판사가 말한 것을 들으라.” 항상 기도하다가 보면 하나님이 불의한 판사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억울한 과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좌절에 빠지고 낙심할 때가 있습니다.

응답이 당장 오는 기도도 있지만 전혀 오지 않는 것 같은 기도도 있습니다. 시편 기자가 “언제까지니이까?”고 탄식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시 40:1-2; 42편).

기도하지 않는 자는 기대도 없고 낙심도 없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자는 응답을 고대하기 때문에 역경이 계속될 때 낙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설령 우리가 생각하는 응답이 없어도 우리의 기도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허탕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손해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간절하게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막연한 믿음이 절실한 믿음으로 승화됩니다. 우리의 인격이 진주처럼 영글어 갑니다. 우리가 세속에서 탈피하게 됩니다. 우리가 타성에서 야성으로 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기대의 그릇이 커지고, 하나님의 시복의 보따리가 커집니다.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천국은행에 예금하는 예금액수가 늘어납니다.

하나님은 연단하신 후에 우리가 기대하지 않던 방향으로, 혹은 우리가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천장이 낮다는 듯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어떤 존재보다 더 확실하게 살아 계신다는 체험적 확신이 생깁니다.

 

로버트 슐러 목사님은 “하나님은 항상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다.

“내용이 옳지 않을 때 하나님은 ‘노’(No)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최선이 아닐 때 노(No). 그것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일 때 노(No). 그것이 본인에게는 도움이 되어도 남에게 문제를 일으킬 때 노(No).

시기가 맞지 않을 때 하나님은 ‘천천히’(Slow)라고 하십니다. 만일 당신이 손가락을 까딱하면 하나님이 항상 응답하신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주인이 아니라 당신의 종이 되실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일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지체하시는 것(delays)이 거절하시는 것(denials)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은 완벽합니다. 기도할 때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당신이 옳지 않을 때 하나님은 ‘성숙하라’(Grow)고 하십니다. 이기주의자는 이타성이 성숙해야 합니다. 비겁한 사람은 용기가 성숙해야 합니다. 우유부단한 자는 결단력이 성숙해야 합니다. 제 고집대로 하는 사람은 배려심이 성숙해야 합니다. 비판하는 자는 관용이 성숙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자는 긍정적인 태도가 성숙해야 합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동정심이 성숙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옳을 때 하나님은 ‘됐다’(Go)고 하십니다. 그 때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절망적인 알코올 중독자가 자유를 누립니다! 마약 중독자가 해방됩니다! 의심하는 자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 생깁니다. 병든 조직이 치료에 반응을 보이고 치료가 시작됩니다. 환상의 문이 활짝 열리고 거기 하나님이 서셔서 ‘이젠 됐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낙심했다가도 바로 툭툭 털고 일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자주,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실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에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끈질긴 기도에 마침내 응답하십니다. 기도하면 우리도 잘 되지만, 우리의 후손들이 덕을 봅니다.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천국은행에 예금을 많이 해 두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응답하시지만,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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