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4:16-19,가난한 자와 부자

호리홀리 2015. 6. 16. 09:51

 눅 4:16-19

 

본문은 예수님의 갈릴리 첫 사역에 대한 기록입니다. 바로 앞 구절 14-15절에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전체를 요약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서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의 첫 사역지로 자신이 자라신 고향 나사렛을 선택하십니다. 예수님은 유대인 남성이라면 늘 하던 대로 안식일에는 자기 동네에 있는 회당에 갔습니다. 회당에서는 안식일에 성경을 읽고 또 그것을 설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대개 그날 할당된 율법서와 예언서와 시편을 읽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이사야서가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에서 이사야서 61:1-2과 58:6을 찾아서 읽습니다. 그리고 서서 그것을 여러 사람 앞에서 읽었습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은 선언하십니다.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절)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언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사역에 대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본 예언은 동사를 중심으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18a절: 여기서 동사는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입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말은 그리스도에 해당하는 동사입니다. 히브리 말로는 메시아이고 헬라 말로 번역하면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곧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로서 사명이 있다고 하십니다. 그 사명이란 다름 아닌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2) 18b-19절: 여기서 동사는 “나를 보내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분입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사명자입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1)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포로된 자는 전쟁 포로 혹은 빚에 의해서 노예가 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노예 혹은 빚으로 말미암은 노예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사탄의 포로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2)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누가복음에는 눈 먼 자가 다시 보게 된 기사가 나옵니다. 예수님의 중요 사역 중의 하나는 몸의 치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3)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눌린 자, 억압된 자는 말 그대로의 의미도 됩니다. 이것을 영적인 의미로 죄에 대한 용서로도 해석합니다(5:27-32; 7:36-50).

-(4)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며: 여기서 은혜의 해라는 것은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희년을 일컫는 말입니다. 희면 법은 매 50년 마다 그 동안 노예가 되었던 것에서 해방되고 팔았던 땅을 돌려받게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전체를 읽어보면 가난한 자는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1) 6:20-22----가난한 자, 주린 자, 우는 자, 핍박을 당하는 자

2) 7:22----맹인, 못 걷는 사람, 나병환자, 귀 먹은 사람, 죽은 자, 가난한 자

3) 14:13---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저는 자, 맹인

4) 14:21----가난한 자, 몸 불편한 자, 소경, 저는 자

 

그렇다면 복음이란 사람들이 현재의 불안하고 억압된 상태에서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고엘로서 오신 예수님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는 회복자로 오신 것입니다. 빚이나 전쟁으로 포로가 된 사람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 치유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복음은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란 말은 없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을 것입니다. 복음은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얻을 수 있고, 가난한 자 본인도 그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힘에 의지해서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자신의 신분, 건강, 물질을 다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부자는 하나님께 의존하지 않아도 이런 것이 대충 해결됩니다. 그래서 부자는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혜택은 덤으로 얻는 것이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꾸려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특히 부자는 자신이 가진 재물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것은 단순한 죄가 아니라 바로 우상숭배의 죄요, 그 재물이 하나님의 위치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재물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14)

 

누가복음 4:20-26 이하에는 심지어 부자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복이 있고 부자에게는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 비유(16:19-31)에서 부자는 음부에 내려갔고 나사로는 낙원에 갔다고 되어 있는데 다른 이유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사람은 부자였고 한 사람은 거지였다는 것 이외네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삭개오(19:1-10)는 부자였는데 회개하고 자신의 재물을 나누어 줌으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그 앞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를 따르라고 했지만 재물을 포기 하지 싫어 결국 예수의 제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니라.”(15:23)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재물에 대한 태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물을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고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는 이 점을 잘 갈파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물에 대한 설교에 비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코멘트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16:14)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비롯해 여러 종교 활동은 활발히 했지만 예수님이 돈에 대해서 말씀하시자 그만 비웃은 것입니다.

 

우리는 맘몬의 신을 버리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맘몬을 의지하는 것은 사실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불편하더라도 이 점을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을 나누어 가난한 자가 되어 복 받는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예수님의 태도는 요즈음의 이른 바 좌파를 닮았습니다. 부자들에게 화를 퍼붓고 가난한 자에게 복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칼 막스와 예수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커다란 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부자가 물질을 나누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맨 정신으로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8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선언을 하는 것은 주의 성령이 임해서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4:32-35에 보면 초대 교회의 물질의 유무상통이 일어나는데 그 전제는 바로 이들이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일은 성령의 임한을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19절에 보면 예수님의 사명은 희년 선포입니다. 그런데 구약에서처럼 희년이 50년마다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발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자발적인 희년은 성령의 능력으로 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자발적인 희년은 마음 속에 기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윤리가 따릅니다. 바로 예수님의 복음대로 우리가 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물질의 나눔보다 사람을 더 감동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자발적인 희년을 선포합시다. 성령을 받아 부자가 자발적으로 물질을 나누는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가 성령을 충만히 체험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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