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누가복음

누가복음16:19-31,부자와 나사로

호리홀리 2015. 6. 16. 12:24

 눅 16:19-31 

본문은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거지의 이름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주인공은 거지가 아니고 부자입니다. 부자가 죽어 음부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음부란 유대교에서 본래 지하라는 뜻으로 땅 속을 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신약 성서에서는 지옥이라는 말의 동의어로 쓰였습니다. 이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 중에 자신의 형제들이 여기에 오지 않도록 나사로를 세상으로 다시 보내달라고 간절히 청원했지만 낙원에 있는 아브라함은 그것은 소용이 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들어주지 않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요즈음에는 이 본문으로 설교하는 것을 보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요즈음에 사람들이 사후세계 보다는 현실 세계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풍족하고 성공하는 삶을 살면 여기가 곧 천국 같기도 한 것입니다. 또 “지옥 등을 말하는 것은 부흥사나 하는 이야기이지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실까?”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 이야기는 지하철에서 피켓 들고 전도하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장소적인 천국 개념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많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 천당(天堂)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말은 불교에서 온 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신약에서 천국은 낙원(Paradise)이라고 표현되어 분명히 나옵니다. 이곳은 사후에 신자가 들어갈 곳입니다.

1)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을 의탁한 같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십니다(눅 23:43).
2) 바울은 스스로 “낙원”에 이끌려 간 체험을 고린도후서 12:4에 이야기합니다.
3) 요한계시록 2:7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4) 또 요한복음 14:1 이하에도 예수님은 고별 설교를 통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5) 오늘 본문에서는 음부와 반대되는 “아브라함의 품”으로 천국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낙원보다는 지옥 혹은 음부에 대해서 더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음부는 낙원의 대척어로 쓰입니다(마 11:23; 16:18; 눅 15:23; 행 2:27, 31; 롬 10:7; 계 1:18; 6:8; 20:13, 14). 또 예수님은 지옥이라는 말을 사용하십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게헨나’라고 하는데 이것은 히브리어 ‘게힌놈’(힌놈의 골까지)이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이곳은 자녀들을 불로 지나게 하는 인신 제사가 이루어지고 우상 숭배의 장소였습니다. 본래는 죽어서 들어갈 곳이라는 뜻은 아니었지만 신약에서는 심판을 받기 위해 죽어서 들어가는 곳으로 쓰입니다. 여기에서는 불의 고통이 있습니다.

1) 불꽃 가운데 괴로워하는 곳. 눅 16:24
2) 불이 계속 타는 곳. 마 5:29
3) 꺼지지 않는 불 막 9:43
4) 구더기도 죽지 않는 곳. 막 9:48
5) 꺼지지 않는 불로 소금치듯 당하는 곳. 막 9:48-49
6)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 마 25:30
7) 마귀와 그 사자들을 향하여 예비된 곳. 마 25:41
8) 영원히 불타는. 곳 마 25:41
9) 유황 불붙는 곳. 계 19:20
10) 바깥 어두운 곳. 마 8:12
11) 둘째 사망의 불 못. 계 20:15
12) 영벌 받는 곳. 마 25:46
13) 영원한 멸망의 형벌 받는 곳. 살후 1:9.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예수 천국, 불신지옥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이유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냥 거지였기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거지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까? 또 부자가 음부에 들어간 것도 예수 믿지 않아서라고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부자로서 호화롭게 즐기는 삶을 산 것 밖에 없습니다. 혹시 이 사람은 부자라서 음부에 들어간 것일까요?

먼저, 이 이야기는 신약의 신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 이야기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약 내세가 있다면 자신들 모두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당시 유대인 중에는 내세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기에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예수를 믿는 신앙, 불신앙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대로 어떻게 올바로 사는 것인가를 이야기 한 것이고, 여기에서 출발하여 어떤 사람이 낙원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으로 신앙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사후 세계에서는 부자와 거지의 처지가 역전되었다는 것입니다. 25절에 보면 부자가 고통을 받는 것이 이 땅에서 단지 부자로 살았기 때문이고, 나사로가 위로를 받는 것은 이 땅에서 고생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부자는 16:13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는데, 많은 부자들이 재물의 종이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의 이런 말씀을 비웃습니다. 바로 이런 문맥에서 예수님은 부자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16:19에 보면 이 부자는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도 하지 않고 호화로운 옷을 입고 자신의 인생만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16:30에 보면 천국에 들어갈 자는 바로 회개한 자입니다. 앞에서는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지만 부자의 말을 통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의 편지나 예수님의 다른 말씀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은 회개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회개한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른 성경 본문에서는 공개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을 회개라고 봅니다. 또 어떤 곳에서는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을 회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는 돈지갑이 거듭난 것을 회개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말로 회개했다고 해도 과연 돈지갑이 회개했는지를 보아야 그 사람이 참으로 회개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여기서 부자는 회개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나사로 같은 거지는 염두에 두지도 않고 홀로 독존하여 자신의 삶을 즐긴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바로 앞 구절에 나오는 바리새인들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동시에 재물을 섬길 수 없다”고 선언하십니다(눅 16:13). 이에 대해서 누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바리새인들을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눅 16:14). 누가는 대단히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입니다. 사람의 회개가 재물관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꿰뚫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경건하고 재물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누가는 이들이 사실은 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3) 가난하다고 모두 ‘나사로과’는 아닙니다.   

진정으로 회개했는지를 보려면 물질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앙적으로가 아니더라도 어떤 사람의 인품을 보려면 그 사람의 돈 씀씀이를 보면 됩니다. 어디에, 어떻게 쓰는 가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사실 우리는 많은 영적인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 뒤에는 검은 돈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고 해 놓고 물질적으로는 어떻게든 부유하게 살려고 하는 것은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태도입니다. 

본문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가 보다는 어떤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는가에 대한 본문입니다. 나사로처럼 가난하게 살면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 부자처럼 살면 음부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앞의 문맥에서 보면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면서 또한 돈을 섬긴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이런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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