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개론

제2장. 언약백성

호리홀리 2015. 2. 24. 13:57

제2장. 언약백성

 


 

성경 본문: 창세기 12-50장


 

 

구약 성경은 표면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의 백성 이스라엘과 관계하시는지를 기술한 것이 구약 성경이라고 하겠다. 이스라엘 역사를 말하고자 할 때 맨 먼저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사천년전 아브라함은 갈대아 땅 우르라는 커다란 도시에 살고 있었다.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은 새롭게 '거룩한 씨앗'으로서 선택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고향 친척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아무런 불평 없이 길을 떠난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더러 갈대아 우르 땅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까? 결코 답하기 쉬운 물음인 것 같지는 않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은 그곳서 결코 주인으로서 살아본 적이 없다. 아내의 시신을 묻고자 땅을 사야만 했던 아브라함, 본주민들과의 마찰 때문에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던 이방인으로서의 삶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사는 아브라함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그는 일정한 곳에 집을 짓고 상주한 일도 없었다. 도시 출신인 그에게 천막 생활이란 결코 달콤한 낭만이 될 수도 없었다.

 


 

야웨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의 일방적인 약속이었다. 그가 앞으로 전개하실 중대한 역사의 중심지로 가나안 땅을 내정하신 것이었다. 이제 아브라함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새로운 역사의 첫 장을 열고 있는 것이다. 그 후 사천년에 걸쳐 이 땅에서 또는 이 땅을 중심으로 일어날 일들을 어찌 아브라함이 상상이라도 하였으랴마는, 그는 단순히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서 위대한 역사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 또는 '하나님의 선지자'(창20:7)라는 칭호로 불리우기에 적절한 사람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그의 약속을 그대로 믿고 그의 지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는 데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수 만리 이상이나 떨어진 곳에 살던 아브라함을 불러 내어 머나먼 약속의 땅으로 떠나게 하기에 충분하였다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떠해야 할지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지정학적으로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세 대륙이 만나는 지점이요, 동시에 과거 근동 역사에 있어서 북쪽의 메소포타미아와 남쪽의 이집트 양대 강대국이 늘 충돌하던 지점이기도 하였다. 기후 및 지형적인 면에서 볼 때, 인위적인 노력으로 나일강 물을 관개하여 농사짓던 평지의 이집트와는 달리 가나안 땅은 산과 골짜기의 복합체로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이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역이었다. 좀 속된 표현을 빌리자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그 목줄을 쥐고 있는 땅인 것이다. 하나님으로서는 자기 백성을 훈련하시고자 일부러 이런 장소를 택하였을 법하다.

 


 

아브라함의 대를 잇는 아들 이삭은 가나안 땅에서 태어나서, 비교적 조용한 인생을 산다. 그의 부모 나이 100세와 90세에 그가 태어났다는 것은 당시 기적이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의 대에 내려와서도 변함없이 이어진다. 이삭에게는 에서와 야곱 두 쌍동이가 태어난다. 이중 동생인 야곱의 다른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자손이란 이름은 명칭 그대로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 곧 야곱에게서 기인한다. 야곱은 뱃 속에 있을 때부터 자기의 쌍동이 형제와 싸우곤 하였다 (창25:22). 출생 때에도 야곱은 쌍동이 형제인 에서보다 뒤늦게 나올까봐 안간 힘을 썼다 (창25:26). 야곱의 장자권 탈취 작전은 그의 평생을 통하여 계속하여 전개된다. 야곱은 결국 속임수로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빼앗는다 (창27:36). 하지만 이 일이 결국 야곱 자신의 불행한 운명의 근본 원인이 될 줄이야.

 


 

장자권과 그에 따른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계획하자, 야곱은 할 수 없이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을 향하여 머나먼 도망 길을 떠난다. 잠시만 도망가 있으면 그 어머니 리브가가 부르겠노라고 약속하였으나, 그 잠시가 20년이나 되어 버렸다 (창31:41). 객지 생활 20년이 지나서 야곱은 마침내 환향을 결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다. 인간 야곱의 귀향은 결코 쉬운 걸음이 아니었다. 그로서는 연약한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각색 가축을 끌고 가야만 하는 머나먼 길의 위험은 그만 두더라도,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형 에서의 해묵은 분노를 대면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이때 야곱은 인간의 수단도 강구해 보았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도 하였다. 결국 야곱은 자신의 운명을 내놓고 밤새도록 천사와 싸워 마침내 승리를 얻고야 만다. 이때 야곱이 새로 얻게 되는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는 새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이다 (창32:28).

 


 

야곱에게는 모두 열 두 명의 아들이 있었다. 그들중 요셉의 운명은 그의 아버지 야곱의 운명보다 훨씬 파란만장하였다. 야곱의 운명이 스스로 택한 결과였다면, 요셉의 그것은 자신의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요셉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창45:5). 요셉은 자신이 꾼 일련의 꿈과 그에 따른 형들의 시기 때문에 기구하게도 원치 아니하였던 방랑의 삶을 시작한다. 그것도 자유인이 아닌 노예의 신분으로서. 대략 17세 때 (창37:2) 형들에 의하여 종으로 팔려 이집트에 내려가서 30세 때 (창41:46)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니, 요셉의 종살이와 감옥 살이는 모두 합하여 13년이 되는 셈이다. 그가 감옥에서 보냈던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2년은 감옥 살이를 하였음이 틀림없다 (창41:1). 요셉은 110세에 세상을 떴다. 결국 그는 17세 이후 죽기까지 자기 생애의 대부분인 93년을 객지에서 보낸 것이다.

 


 

우리는 요셉에게서 앞으로 오실 '거룩한 씨앗'이신 메시야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요셉이 형들의 시기로 이집트에 팔려가 종살이, 옥살이를 하였으나 결국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이집트 백성과 주변 각국에서 몰려오는 사람들에게 기근을 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나중에는 자기의 부모 형제들도 구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이방도 구하시고 마침내 자기 동족인 유대인도 구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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