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광야 생활
성경 본문: 민수기
이스라엘이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걸어야 하는 길은 그리 평탄한 길이 아니었다. 지나기에 거칠고 생존에 위협적인 광야!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에서 첫 걸음마를 하는 이스라엘로서는 몹시 곤고한 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광야야 말로 하나님이 독자적으로 이스라엘을 교육하시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원망과 불신과 실패와 좌절 등을 거쳐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데, 그것은 바로 한 세대가 모두 죽어 광야에서 흙이 되고 다른 새 세대가 다시 일어나는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이었다.
이집트 땅에서 나온지 제2년 2월 1일 되는 날 조사한 603,550 명의 남자 장정 (1:1, 46; 2:32)은 40년 광야를 지나는 동안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 모두 죽고, 가나안 땅의 문턱인 모압 평지에 이르러 새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601,730 명의 남자 장정이 주축이 되는 새로운 세대가 일어난다 (26:51, 63-65). 광야 40년 동안에 하나님의 백성은 완전한 '물갈이'를 한 것이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경험한 바 있는 구 세대는 광야에서 그 마지막을 고하고, 광야에서 새롭게 태어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새로운 역사는 항상 누군가가 새로운 문을 엶으로써 시작된다. 역학 법칙중 관성의 법칙이 있듯이, 인간사에도 역시 이와 비슷한 일이 있어서 사람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일은 비교적 쉽되 새로운 문을 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새로운 문을 여는 사람들은 대개가 보통 환경과는 다른 엉뚱한 곳에서 얼마간의 수련기를 지낸 후 인간 세계 안으로 뛰어 들어와 개혁을 외치기가 일쑤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이러한 개혁 정신을 함양해주는 가장 적합한 장소는 광야이다. 이스라엘은 기후적으로 동남쪽의 사막 지대와 북서쪽의 녹지대 사이의 점이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양한 기후 양상을 보일 뿐 아니라, 그 면적에 반하여 지형 또한 다채롭다. 이스라엘의 광야는 히브리어로 보통 '미드바르'라고 부른다. 히브리어 '미드바르'는 엄밀하게 말하여 '사막'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그것은 우리 한반도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의 넓은 들판이나 야산 지대도 아니다. '반사막'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미드바르는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이 아니라, 예로부터 유목민과 대상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삶의 현장이었다.
구약 성경에서 언급한 광야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났던 지역으로서 오늘날 시나이 (=시내) 반도라고 불리는 곳이다. 성경은 시나이 반도의 부분 부분에 다른 이름을 주어 광야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서 수르 광야 (출15:22), 신 광야 (출16:1), 시내 광야 (출19:1), 바란 광야 (민13:3), 찐 광야 (민20:1) 등은 이스라엘 자손이 멈추었던 지역으로서 모두 시나이 반도 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세가 바로를 피하여 은둔의 세월을 보냈던 미디안 광야 (출2:15; 행7:29-30) 역시 시나이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한고로 노예 근성을 쉽게 버리지 못했던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자주 민족으로 출범하기 전에 일종의 훈련 기간이 필요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40년 광야 생활은 그 이유야 어떠했든지 반드시 필요했던 요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도자 모세 역시 미디안 광야에서 여러 해를 보낸 다음에 사명을 받고 이집트으로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낸다. 이 광야 생활 동안 모세는 양무리를 돌보는 목자로서 자연히 시나이 반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그 지형을 샅샅이 익히게 되었을 것이다. 모세의 이러한 경험이 훗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에서 특별한 지도자로 훈련시키셨던 것이다.
예수님 역시 공적 활동을 시작하기에 앞서 40일을 광야에서 보내며 금식하며 시험도 받으시고 자신의 활동을 준비하셨다. 이스라엘 내의 광야는 그 남쪽과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남쪽의 광야를 가리켜 '네겝' (한글 개역 성경에 '남방'이라고 번역됨)이라고 부르고, 동쪽의 광야는 유다 산지 동편 언저리에 위치하므로 유다 광야라고 불리운다. 예수님이 계셨던 광야는 예루살렘에서 멀지 않은 유다 광야였을 것이다.
광야에서 준비 기간을 보낸 또 다른 선구자는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앞잡이 세례 요한이다. 세례 요한 역시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다. 세례 요한의 출생지가 유다 산지의 한 동리였던 점을 통해 볼 때 (눅1:39), 그가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있었다'(눅1:80)고 하는 광야 역시 유다 광야였을 것이다 (마3:1).
한편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구세대는 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는가? 그것은 인도자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생활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뢰하는 자만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음을 잘 입증해준다. 광야에서 성장하였거나 또는 생장한 신세대는 비록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 찌든 경험은 없으나 광야라고 하는 새로운 '시험의 장'에서 전능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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