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60:1-63:6,일어나 빛을 발하라

호리홀리 2015. 2. 14. 22:14

시온의 영광과 메시야 (60:1-63:6)

 

제60장 전반에 걸쳐 나오는 2인칭 여성 단수 '너'는 '시온'을 가리킨다. 앞서 59:20에서 야웨 하나님이 구속주(救贖主)로서 '시온', 곧 자기 백성에게 임하실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제 이사야 제60장에서는 그 결과로서 장차 시온에게 임할 영광을 기술하고 있다.

 

하나님은 시온을 향하여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하신다. 이미 51:17; 52:1-2에서도 하나님은 시온을 향하여 이와 비슷하게 "깨어라, 일어나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거기서는 시온이 형벌을 받아 비참하게 앉아 있는 상황이었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야웨의 영광이 시온 위에 비치므로, 시온은 그 빛을 받아 온 세상을 비추어야만 한다. 온 세상은 아직도 어두움에 덮혀 있다. 앞서 59:9-10에서는 죄악으로 인하여 온 세상이 깜깜하게 된 것을 언급한 바 있다. 이 어두운 세상에 한 빛이 떠오른다. 그 빛의 원천은 야웨 하나님으로서, 그분의 영광은 빛이 되어 시온 위에 반영된 것이다. 그리하여 열방과 열왕들이 시온의 빛으로 나아올 것이다 (이사야60:1-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마태5:14).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는 빛을 만들어내는 '빛의 근원' 내지 '빛' 자체가 아니라, 야웨 하나님의 빛을 받아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 어두움을 비춰주는 일종의 '반사체'에 불과하다.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한1:4-9 참조). '참 빛' 되시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가리켜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명과 동일한 사명이 있으며, 장차 동일한 영광을 누리게 됨을 가리킨다고 하겠다.

 

흩어졌던 큰 무리가 시온으로 나아온다. '시온의 자녀', 곧 '메시야의 씨'가 원근각지에서 몰려들어오는 것이다. 게다가 온 땅의 재물도 시온에게로 모이고, 야웨의 영광을 위하여 쓰인다. 옛적에 이스라엘 백성이 '야웨의 영광을 선포하라고, 지음받았던 것'처럼 (이사야43:21 참조), 이제 구속받은 이방인들도 시온으로 와서 모두 야웨의 영광을 전할 것이다 (이사야60:4-9). 사도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구원'은 하나의 절정을 이룬다. 바울이 표현한 바, '이스라엘의 넘어짐', '이방인의 부요함'을 거쳐서,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 있을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일'이 있겠다는 것이 바울의 메시지이다 (로마서11:11-15).

 

오늘날 '유대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다름 아닌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후예이다. 이사야의 예언을 통하여 볼 때 (성경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 이들 유대인들은 다시 자기들의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왕이신 메시야 예수께로 나아올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려 말할 때 '이스라엘 중 남은 자'와 이방인 중 구속받은 자들이 다 같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영광을 선포할 터인데, 전자는 이 마지막 '교회'의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19세기 말엽부터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살던 땅으로 다시 모여들기 시작하여, 지난 1948년 5월 마침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그간 전 세계에 흩어져 살았던 유대인들이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이스라엘 땅으로 모여들고 있다. 물론 이들중 거의 대부분은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의 영광'이 이들 위에 비치는 날, 이들은 다시 '일어나 만민 가운데 빛을 발할 것'이다.

 

이사야60:10-14에서는 열방을 다스리고 그들 위에 으뜸이 될 '시온의 영광'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다. 특별히 시온을 학대하고 멸시하던 자들도 시온의 발 아래 엎드리어 시온을 가리켜 말하기를, "야웨의 성읍,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의 시온"이라고 할 것이다 (14절). 12절에 '시온을 섬기지 않는 백성이나 나라는 망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스가랴14:16-21에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주전 8세기 말엽에 유다 땅 예루살렘에서 살았던 선지자 이사야가 여기 묘사한 바, '시온의 영광'은 이방인이 '교회'(구속받은 무리)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 상황에서 무언가 비실제적인 예언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사야2:2-4에서도 묘사한 것처럼, 구속사에 있어서 시온의 주도권은 무력이나 경제력에 의한 것이 아니요, 시온 곧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그의 가르침, 죽음과 부활 및 승천 등을 모두 포함한)에 의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인들의 마음 속에서 '시온'이란 이름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다. 문자 그대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시온'에 다시 모여 그들의 왕 메시야 예수를 찾을 때에 그 영광과 기쁨은 땅 위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가득차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시온은 더 이상 '버림받고 미움받아 황폐한 땅'이 아니요, 도리어 '영원한 자랑거리, 영원한 기쁨'이 될 것이다. 시온의 자녀는 모두 구원자 야웨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요, 그 땅에는 평강과 정의가 넘쳐서 더 이상 악독한 일들이 없을 것이다 (이사야60:15-18). 더 이상 슬픔이 없겠고, 야웨의 영광 빛이 시온을 비추어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60:19-22). 이사야 제60장의 메시지는 계시록21:23-27에도 짧게 반영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19-22절)의 약속은 이미 이사야4:5; 24:23; 30:26 등에 간단간단히 암시되어 있다. 이 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시온의 영광'은 59:20-21에서 설명한 바대로, 좁은 의미의 '시온', 곧 '야곱 자손 가운데 자기 죄과를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들'을 가리키는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메시야 예수님이 오신 이후로 '교회'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전체를 가리킨다.

 

이사야 제60장은 시온을 향한 야웨의 말씀을 담고 있는 반면에, 제61장에서는 '시온의 영광'을 회복할 '중재자', 곧 메시야의 말씀으로 옮아간다. 61:1에서 우리는 '주 야웨'와 '주의 영'과 ('나'로 표현된) '메시야'를 한꺼번에 대하게 된다 (이사야42:1 참조). '주 야웨'께서 '당신의 영'을 '나', 곧 '메시야'에게 (기름을 붓는 것처럼) 부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자유와 은혜와 심판과 위로의 복음'을 전하게 하심에서이다 (이사야61:1-3). 나사렛 회당에서 이 말씀을 읽으신 예수께서는 '이 글이 그들의 귀에 응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누가4:16-21). 자신이 바로 여기 예언된 이라는 것이다.

 

앞 장에서 묘사된 사상은 표현만 다를 뿐 여기서도 되풀이된다. 메시야의 사역은 이스라엘의 (땅과 백성의) 회복을 수반하기도 한다. 이때 이방인의 도움이 따를 것이요, 이스라엘은 뭇 백성 위에 영광을 누릴 것이다. 그리고 회복된 이스라엘 백성은 '야웨의 제사장', '야웨를 섬기는 자', '야웨께 복받은 자'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요, 야웨 하나님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세우실 것이다 (이사야61:4-9).

 

4절에서 묘사하고 있는 바, '오래 황폐하였던 곳', '무너진 곳',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이란 표현들에, 바벨론에서의 70년 귀양살이 동안에 그들은 아직 하나님과의 비뚤어진 관계 때문에 '약속된 영적 지위'에는 이르지 못하였다. 이제 우리는 이 예언의 나머지 부분도 성취되기를 바랄 뿐이다. '야웨의 영(靈)으로 부음받고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 (1절 참조), 곧 예수님만이 이 예언을 온전히 성취케 할 수 있는 열쇠이다. 그리고 이방인 가운데 이미 예수를 믿어 그의 '종'이 된 자들이야말로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여 이 예언이 속히 성취되도록 하는 일종의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일 것이다 (로마서11:11 참조).

 

이사야61:10-11의 노래는 시온이 부르는 것이라기 보다는, 문맥상으로 볼 때 61:1-3의 주인공인 '야웨의 종', 곧 메시야가 부르는 환희의 노래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 야웨 하나님이 자기를 통하여 시작한 '의와 구원' 사역이 반드시 결실할 것을 아는 '야웨의 종'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장차 있을 '시온의 영광'은 야웨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신 일이므로, 그분은 이 일을 이루기까지 결코 잠잠하실 수 없다. 시온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기까지 하나님은 결코 조용히 계실 수 없다. 시온은 다시 한 번 그 구원받은 백성에 의하여 채워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흠뻑 받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사야62:1-5). 이 일에 대한 하나님의 결의(決意)는 바꿀 수 없는 것이어서, 하나님은 친히 예루살렘 위에 '파수꾼'('쇼메르', 복수형)을 세우시고는 그들로 하여금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일을 하게 하신다. 여기 '쇼메르'나, 히브리어로는 다르지만 이사야52:8의 '빡페'('파수꾼'으로 번역됨)나 모두 '선지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야웨 하나님도 친히 이 일을 다짐하시며 맹세하신다 (이사야62:6-9). 8-9절의 표현은 이사야1:7의 '너희 토지는 너희 보는데서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와는 대조적이며, 이사야1:19의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라는 묘사와는 같은 사상을 나타낸다.

 

이사야62:10-12에서는 이사야40:1-11; 57:14; 35:5-10; 48:20-22 등에서 익숙히 들어온 '큰 길'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고 있다.

 

이사야63:1-6에서는 에돔의 심판을 들어 만민의 심판을 대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사야34:5-15에서도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에돔은 이사야25:10-12의 모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모든 세력'을 대표하는 역사적 실체로 언급되었다. 에돔은 모압과 더불어 발람이 예언한 바, '장차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 곧 메시야에 의하여 파멸될 민족에 속한다 (민수기24:17-18 참조). 이사야34:6-7에서 에돔에 대한 야웨의 심판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 행위'로 비유되어 있으나, 여기서는 동일한 에돔에 대한 심판을 '포도즙 틀 위에서 포도를 밟는 행위'(요엘3:13 참조)로 비유하고 있다. 계시록19:11-18에 묘사된 마지막 심판 기사가 다분히 이들 구약의 묘사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주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 날은 야웨께서 그의 원수를 갚는 날이요, 동시에 자기 백성을 구속하는 날이다 (4절). 이 일에 아무도 함께하는 자가 없으므로 야웨께서 친히 홀로 심판을 행하신다 (5-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