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40장,내 백성을 위로하라

호리홀리 2015. 2. 14. 11:02

이사야 제1-39장과 제40-66장의 관계

 


 

주로 이스라엘 백성, 그 중에서도 특히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메시지(제1-12장)로 시작된 이사야의 예언은, 13장에 들어오면서 이방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진다. 이방 세계에 대한 이 메시지는 23장까지 계속되는데, 물론 이스라엘과 유다의 운명도 포함되어 있다. 7-12장에서 '제국들, 그중에서도 특별히 앗시리아의 흥망과 임마누엘, 곧 메시야'에 관한 예언이 있은 후, 보다 넓은 범위에서 이방 세계의 운명을 언급하는 것은 자연스런 연결로 보인다. 왜냐하면 임마누엘의 통치는 온 누리에 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이사야 제24-27장은 자연스럽게 13-23장을 이어 온 땅에서 메시야의 통치를 완성시키기 위한 '마지막 심판'에 관한 예언으로 이끌어주고 있다.

 

이사야 제28-33장에서 선지자는 다시 유다의 현실로 돌아온다. 그는 유다의 현실적 문제를 다루며, 앗시리아의 위협 앞에서 이집트의 도움은 헛 것이며, 앗시리아 제국이 하나님의 전적인 간섭에 의하여 망할 것과, 예루살렘은 온갖 위기를 겪으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구원 얻을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제34-35장에서는 이러한 관계-하나님이 택하신 백성과 그 대적과의 관계-를 역사의 마지막 시점으로 끌어가는 동시에 그 범위도 더욱 확대시켜서 인간 세계 뿐만 아니라 온 우주로 넓혀간다.

 

이사야 제36-39장에서 선지자는 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앗시리아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유다와 예루살렘이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던 주전 715년(히스기야 재위 제14년)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다룬다. 제36-39장은 제28-33장에서 예고한 바 있는 '예루살렘의 위기'를 묘사하고 또 이를 극복한 역사적 사실을 기술함으로써, 28-33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고 있는 셈이 된다.

 

이상 이사야 제1-39장의 구성과 내용을 통해 볼 때, 이사야의 예언은 '유다와 예루살렘'이라는 선지자의 현실 공간에서 출발하여 온 땅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가는 다시 현실로 돌아오고, 또 다시 전 세계로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가는 독특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아울러 시간적으로 볼 때 선지자는 현실과 가까운 장래, 또는 먼 미래를 오고가며 마치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 양 역사를 기술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만약 이사야서가 순수하게 이사야라는 한 인간의 작품이라면 그는 가히 천재적이요 기인(奇人)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사야는 제6장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전적으로 야웨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밝히고자,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경위를 비록 짧지마는 분명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사야는 개인의 지혜나 통찰력에 의하여 이 메시지를 준비한 것이 아니요, 전적으로 야웨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쳐주신 그대로 전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은 '역사(歷史)'라고 하면 으례히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일', 다시 말해서 '과거에 발생했던 일들'만을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한 치 앞 일도 내다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역사와는 다르다. 그분에게는 공간도 물론이거니와 시간상의 제한이 없다. '과거, 현재, 미래'라고 하는 우리 피조물의 시간 구분이 어찌 보면 그분에게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하겠다. 엄밀한 의미에서 조물주 하나님께는 '영원한 현재'만이 있을 뿐이다. 이사야의 메시지가 공간과 시간이라는 틀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흐르고 있는 것은 그가 야웨 하나님을 대변하는 참 선지자라는 사실을 입증해준다고 하겠다.

 

앞서 우리는 '이사야 제34-35장이 이사야 제1-33장을 종합하는 동시에, 그 사상과 언어에 있어서, 이사야 40-66장의 축소판과도 같다'고 하였다. 현실과 미래를 오고가며 '하나님의 역사(歷史)'를 기술하고 있는 이사야 제1-39장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암울하고 침침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유인즉, 메시야 왕국에 앞서 존재하는 세상 나라들의 마지막을 전하는 메시지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4-35장만을 별도로 떼어 볼 때, 34장에서 '참혹한 심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 침울한 분위기는 '구속받은 백성의 영광'을 노래하는 바로 뒤 35장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 때문에 금새 흐려져서 잊혀짐을 느낄 수 있다.

 

이사야 제40-66장도 앞의 1-39장 못지 않게 '죄에 대한 책망과 심판의 경고'에 관한 메시지를 많이 담고 있다. 그러나 40-66장은, 마치 제35장이 34장에 대하여 그러하듯이, 미래의 희망에 찬 메시지들을 통하여 전체적인 분위기를 아주 밝고 환하게 바꾸어 준다.

 

이사야의 메시지는 하나의 '강'과도 같은 제1-39장을 흘러서 마침내 제40-66장이라는 넓은 '바다'로 들어온다. 1-39장 속에서는 간결하게 묘사된 예언들이 40-66장에서는 보다 폭넓게 펼쳐져서 그 절정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제1-39장에서 '왕 메시야와 그의 왕국'에 대한 예언은 조금씩 조금씩 전개되어 나간다. '전쟁이 없는 메시야 왕국'(2:1-4)을 필두로 전개되는 이 주제는 대략 4:2-6('야웨의 싹과 그의 백성'), 7:14('처녀의 몸에서 태어날 임마누엘'), 9:6-7('다윗의 왕권을 이어갈 한 아기'), 11:1-10('이새의 뿌리에서 태어날 왕과 그가 가져올 평화'), 32:1-8('의의 왕') 등에서 조금씩 조금씩 그 정체를 드러낸다. 그러나 '왕 메시야와 그의 왕국'에 관한 메시지는 40-66장에서 훨씬 더 넓고 자세하게 전개됨을 알 수 있다.

 

이사야 제40-66장은 내용상 쉽게 세 부분으로 나누인다: 40-48장, 49-57장, 58-66장. 첫 부분(40-48장)에서는 '야웨 하나님과 우상', 그리고 '이스라엘과 열방'이라는 대립 관계를 보게 되고, 둘째 부분(49-57장)에서는 '야웨의 종, 곧 왕 메시야가 받는 고난과 그의 장래 영광'이 대조적으로 묘사되었으며, 마지막으로 58-66장에서는 '메시야 왕국에 합당한 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있다.

 

이사야서 전체가 그러하거니와, 특히 이사야 제40-66장은 그 전체가 마치 하나의 웅장한 '서사시(敍事詩)'와도 같다. 야웨 하나님은 친히 '인간 역사의 현장'으로 나오셔서 자신만이 유일한 '창조주'요 '주재(主宰)'이심을 외치고 또 외치신다 (40-48장). 장차 '야웨의 종'이 오셔서 받을 '고난'과 그의 '장래 영광'은 야웨의 절대 주권을 땅 위의 사람들 가운데 확립할 '충분 조건'이 된다 (49-57장). 그리고 야웨께서는 '메시야 왕국'에 적합한 사람들을 친히 선별하실 것이다 (58-66장).

 

이사야 40-66장을 통하여 야웨 하나님은 당신의 '굳은 의지'를 역설하신다. '하나님의 의지'는 반드시 현실화되는 것이기에 바로 '하나님의 역사(歷史)'가 되는 동시에, 현재, 과거, 미래 전 시대를 통한 우리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 중에도 선지자는 매 부분마다 그 마지막에 거역하고 조롱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잊지 아니한다: "야웨께서 말씀하시기를,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신다" (48:22); "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고 하신다" (57:21);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다.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육체에게 두려움이 될 것이다" (66:24).

 


 


 

제40-48장/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제40-48장은 (제40-66장 전체적으로도 마찬가지임) 그 내용에 있어서, 일차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귀양살이하는 때를 시대적 배경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바벨론으로부터의 유대인 귀환과 더 나아가서 궁극적으로는 메시야를 통한 새 시대의 도래(到來)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이사야가 볼 때는 비록 미래사이긴 하지만, 만유의 주재(主宰)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를 받은 선지자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이 아님에는 틀림없다. 이제 선지자는 장차 임할 중대한 일들을 가리키며 장차 올 세대를 향하여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이 메시지는 결국 이사야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이사야 제40-48장에는 '야웨 하나님과 우상', '이방 세계와 이스라엘의 운명', '코레쉬를 통한 이스라엘의 구원' 등 몇 가지 주제들이, 때로는 함께 어울러서, 때로는 산발적으로, 몇 차례씩 되풀이되어 나타난다. 그러므로 편의상 이 부분 전체의 서론격인 40:1-11을 별도로 먼저 다루고, 그 다음에는 각 주제별로 장절 순서에 관계없이 다루고자 한다.

 


 

장차 나타날 야웨의 영광 (40:1-11)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이사야40:1). 이사야서의 제2부라고 할 수 있는 제40-66장은 이처럼 '위로하라'는 명령문으로 시작된다. 40:2에서는 '내[=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예루살렘'이 그 죄악으로 인한 고역을 마치고, 그 죄값을 모두 치렀기 때문이다. 제1부(1-39장)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죄악과 그에 대한 형벌과 그리고 회복을 개괄적으로 말하였다 (특별히 제1장을 볼 것). 이제 제2부(40-66장)에서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하여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고자 한다.

 

예루살렘의 고역이 마치는 날, 야웨의 출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므로 한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광야에 야웨의 길을 닦으라'는 외침이다. 야웨의 영광이 드러나기 전에 거침없이 확트인 길이 준비될 것이다 (40:3-5). 시적으로 묘사된 이 구절들은 바벨론에서의 유대인 귀환과 연관시켜 이해할 수 있는 동시에, 복음서 기자들의 해석에서 보는대로 (마태3:1-3; 마가1:1-5; 누가3:3-6), 세례 요한의 복음 선포로 그 막을 열게 되는 메시야 예수님의 구속 사역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메시야의 재림을 앞에둔 우리 세대에도 이 외침은 또 다시 들려야 할 것이다.

 

두번째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치라." 누군가가 대답하기를, "무엇을 외칠까요?"라고 한다. 인생의 무상함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외치라고 한다 (이사야40:6-8).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히 설(=성취될) 것이다. 고난받는 이스라엘 또는 하나님의 백성이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풀'과 같은 인생이 아니요,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다. 5절 끝의 "야웨의 입이 말씀하셨다"와 8절 끝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설 것이다"라는 말씀은 이 예언의 확실성에 대한 인장(印章)과도 같다.

 

야웨의 출현은 '큰 희소식'이므로 그분을 맞이하는 예루살렘 역시 크게 외치라고 초청을 받는다 (이사야40:9). '시온' 또는 '예루살렘'은 (이 두 고유 명사는 히브리어에서 둘 다 여성으로 간주됨) '복음 전하는 자'(히브리어로 여성 분사 '메바쎄레트'가 쓰임)의 목적격이 아니요 (칠십인역, 아람어 타르굼, 개역 참고), 동격 관계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표준 새번역 참고). 능력으로 임하시는 그분은 악인과 선인 모두에게 보응(報應)하시고 친히 통치하러 오신다 (이사야40:10). 그분의 통치는 선한 목자가 양떼를 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이사야40:11). 참고적으로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요한10:1-18)에도 이 구절과 동일한 사상이 반영되어 있다.

 

이사야40:1-11절은 이사야 제40-66장 전체의 서론과도 같다. 여기 나오는 예언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유대인이 바벨론 귀양살이에서 귀환할 때에 현실화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메시야의 출현으로 더욱 심도깊게 성취되고 그의 재림은 이 예언을 완성시켜주는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야 말로 현재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위로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