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29:1-24,예루살렘의 위기와 구원

호리홀리 2015. 2. 12. 19:51

예루살렘의 위기와 구원 (29:1-24)

 

'오호라'(히브리어로 '호이')로 시작되는 두번째 경고는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다 (이사야29:1-14). 우선 1-4절에서는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되어 극심한 곤경에 처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아리엘'은,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적 용어이다. 참고적으로 에스겔43:15-16에서 '아리엘'은 새 성전의 '번제단'을 가리킨다. 선지자는 1절의 "(한) 해 위에 (한) 해를 더하라"(문자적 해석)를 통하여 아마도 '2년의 세월'을 의도한 듯 하다. 다시 말해서 "2년 안에" (32:10의 '1년 남짓이 지나면' 참조)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사야의 다른 예언들이 그러하듯이 여기서도 예루살렘의 포위에 대한 이 예언은 제2차, 제3차 얼마든지 더 성취될 것이다.

 

예루살렘을 멸하고자 하는 적군의 의도는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은 야웨의 징벌을 피할 수 없다 (5-8절). 예루살렘 또는 이스라엘이 적군에 의하여 포위되지만 야웨 하나님의 극적인 간섭에 의하여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예언은 요엘3:1-21; 스가랴14:1-21; 에스겔38:1-39:29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예언들은 아주 멀리 떨어진 마지막 때의 일임을 명시적으로 보여준다.

 

'하나님의 계획'은 믿음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사람의 지혜나 판단으로 감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야웨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누누이 당신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밝히시고, 믿음을 촉구하신다. 그러나 이 백성의 종교 및 정치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믿지도 않을 뿐더러 깨닫지도 못한다 (9-12절). 이러한 불신과 무지는 그들이 하나님을 비웃고 스스로를 속임으로 자초한 것이다. 믿음대로 살지도 않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지도 아니하며, 형식과 의식에 치우친 위선적 예배활동 만으로 만족하는 종교인들은 늘 선지자들의 책망의 대상이었다 (이사야1:10-17 참조).

 

29:15-24는 '오호라'('호이')로 시작되는 세번째 경고로서, 내용상 두번째 경고의 연속이다. 야웨의 눈을 피하여 은밀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조물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착각하고 있는 자들이다 (15-16절). 세상에서 권세를 부리는 자들이 무시하고 조소하는 야웨 하나님은, 마치 기름진 밭을 숲으로, 숲을 기름진 밭으로 바꾸듯이, 멀지 않아서 온 세상의 상황을 뒤집어 엎으실 것이다 (17절). 지금은 사람들이 믿지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나, 머지 않아 '귀머거리'가 듣게 되고, '소경'이 보게 되며, '가난한 자들'은 야웨를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18-21절).

 

그 날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힘을 믿고 남을 압제 하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사람, 틈만 있으면 악을 행하는 사람' 등을 대신할 것이다 (20-21절). 야곱 자손, 곧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을 겪은 후에 다시는 옛날과 같지 아니하여, 더 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고, 야웨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오직 그분 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22-24절). 앞(28장)의 경고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 백성을 심판하심은 궁극적으로 '남은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마찬가지로 당신의 '교회'를 심판하실 것이다. 교회의 예배 의식이나 종교적 제도에는 충실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마치 하나님이 못보기라도 하듯이 생각하여 은밀히 죄악속에 사는 '종교인'들은 심판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새로운 질서의 메시야 왕국'에서 사는 영광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