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28장,경고

호리홀리 2015. 2. 12. 19:46

제28-33장/역사의 주인

 


 

이사야 제28-33장에 나오는 말씀들은 이사야가 활동하던 때의 역사적 상황에 필요한 말씀인 동시에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장 필요하고 유효적절한 말씀이다. 하나님보다는 자기의 수단 방법을 더 믿고 의지하는 사람, 조용히 '하나님의 뜻과 행동'을 기다리기보다는 처세술이나 인간적인 판단에 입각하여 '자신의 행동'을 서두르는 사람에게 아주 적절한 경고의 말씀이 될 것이다.

 

'이사야'라는 이름이 보여주듯이,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야웨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루실지 '그 계획과 방법과 장래의 영광스러운 모습'까지 모두 알고 계시다. 하나님의 계획과 방식을 거절하거나 무시하고 인간적인 처세술에 근거하여 일을 꾸미는 자는 결국 화를 당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동조하여 믿고 잠잠히 기다리는 자만이 장차 하나님이 이루실 영광스러운 나라에서 마음놓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이사야 제28-33장에는 '오호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 히브리어 '호이'로 시작되는 여섯 번의 경고가 나온다 (28:1; 29:1; 29:15; 30:1; 31:1; 33:1). 에프라임, 곧 북 왕국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대한 경고로 시작되고, 유다에 대한 경고를 거쳐,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와 장래의 구원으로 끝을 맺는 이 부분은, 위기시 참된 도움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더 나아가서는 자기를 믿고 의지하는 자를 종국에 가서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야웨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그리고 있다.

 


 

앗시리아의 위협과 그 결과

 

그러면 이사야 제28-33장의 메시지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하여, 유다 왕 아하스 때부터 히스기야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앗시리아의 위협과 그에 따른 결과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다 왕 아하스 때 (대략 주전 734년), 아람과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입으로 유다 거의 전 국토가 초토화되자, 유다는 앗시리아 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대하28:16). 이에 앗시리아 왕은 그 청을 듣고 곧 올라와서 아람의 왕도 다메섹을 쳐서 취하여 그 백성을 사로잡아 가고 또 르신을 죽였다 (왕하16:9). 앗시리아의 역사 기록에 의하면,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주전 734-732년 사이에 아람을 침공하였으며, 다메섹은 주전 732년에 완전히 함락되었다. 이때 북왕국 이스라엘 역시 디글랏 빌레셀 3세에게 국토의 3분의 2를 빼앗기고, 많은 백성은 사로잡혀 가게 되었다. 이 일로 베가의 통치가 막을 내리기 시작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왕하15:29-30).

 

한편 앗시리아 왕 디글랏 빌레셀 3세는 유다를 돕기는 커녕 도리어 유다를 쳐서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대하28:20). 할 수 없이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보물을 꺼내어 앗시리아 왕에게 바친다 (왕하16:7-8; 대하28:21). 그는 앗시리아 왕에게 복속하고 조공을 바쳐야 했던 것이다.

 

주전 727년 앗시리아 왕 살만에셀이 침공하자, 북 왕국 이스라엘의 최후 통치자 호세아는 그에게 신복하고 조공을 바친다. 얼마가 지나서 호세아는 이집트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내통하고는, 앗시리아를 배반하여 그에게 더 이상 조공을 보내지 않는다. 호세아의 반역은 앗시리아 왕의 진노를 불러 일으켜 결국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하고 만다 (주전 723년). 이때는 바로 유다 왕 히스기야 제6년이었다.

 

주전 722년에 앗시리아 왕 사르곤은 북 왕국 이스라엘 지파들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다가 다른 곳으로 옮긴다. 사르곤은 계속하여 블레셋 지역으로 진격하여 가사 왕을 사로잡고, 원군으로 나온 이집트의 사바코(Sabacos)를 격퇴시킨다 (이사야20:1-6 참조).

 

히스기야 제14년, 곧 주전 715년에 있었던 앗시리아의 유다 침입은 거의 유다 전 국토를 초토화시켰고 예루살렘만이 덩그렁 남게 되었다 (왕하18:13-16). 이사야7:18의 '이집트 나일강 끝에 있는 파리'는 어쩌면 이때 앗시리아의 산헤립과 싸우고자 출정한 '구스 왕 (당시는 아직 왕자였다) 티르하카'를 (왕하19:8-9) 가리킬 것이다. 이 해에 앗시리아 왕은 유다와 이집트에 세금을 부과시킨다 (왕하18:14-16 참조). 이집트 제25왕조의 왕들은 구스, 곧 에티오피아 왕들이었다. 거의 전국적으로 일어난 반란과 앗시리아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구스 왕들이 다스리던 이집트 제25왕조는 막을 내리고, 주전 671년 마침내 제26왕조가 그 문을 연다.

 

주전 8-7세기 사이에 근동의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적인 존재였던 앗시리아는, 주전 613년에 바벨론이 니느웨를 함락시킴으로써 완전히 무너진다.

 


 

에프라임과 유다의 지배층에 대한 경고 (28:1-29)

 

'오호라'(히브리어로 '호이)로 시작되는 첫번째 경고(28:1-29)는 남북 두 왕국의 지배층에 대한 것이다. 1-4절은 '에프라임의 취한 자들', 곧 교만하고 환락에만 빠져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지배층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여기서 '에프라임'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대표적 지파로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쓰인 이름이다 (이사야7:2, 5, 8, 9, 17; 9:9; 11:13; 호세아5:12, 13, 14; 6:4, 10 등 참조). 야웨께서는 '강하고 힘 있는 군대'를 보내시어 이들을 짓밟게 하실 것이다. 에프라임은 마치 '제 철(여름)이 오기도 전에 먼저 익어서 사람이 보자마자 따 먹고 싶어하는 향내나고 탐스러운 무화과 열매'와도 같아서 (이 비유에 대하여는 호세아9:10; 미가7:1를 참조할 것), 적군의 눈에 띄자마자 약탈의 대상이 될 것이다.

 

에프라임의 '자랑스런 면류관'은 그들의 지배층이 아니다. 장차 야웨께서 에프라임의 남은 백성에게 친히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실 것이다. 그리하여 재판석에 앉은 자에게는 '공평의 영(靈)'이 되어 주시고, 전쟁에 임한 자들에게는 '사기(士氣)'가 되어 주실 것이다 (5-6절). 이 세상의 콧대높은 정치 지도자들은 우리의 참된 '소망'이 될 수 없다. 심판을 지난 후에 사람들은 야웨만이 우리 인간의 유일한 소망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북쪽 에프라임에 임하는 형벌을 보고 남쪽 유다가 기뻐하거나 잘난척할 이유는 없다. 이제 선지자의 경고의 화살은 남왕국 유다로 향한다 (7-22절). 먼저 술 취한 주정뱅이가 되어 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제사장과 선지자를 책망한다 (7-8절).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직무에 임하는 제사장은 술을 마실 수 없다 (레위기10:9). 이들은 참 선지자 이사야가 전하는 야웨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각성하기는 커녕, 도리어 비아냥거리는 말로 그를 조롱한다: "도대체 이 자가 누구를 가르치고, 누구한테 설교를 한다는 거야? [이제 막] 젖뗀 아이들이나 [엄마] 품에서 떨어진 애들한테 한다는 건가? '중얼중얼, 응얼응얼, 예서 조금, 제서 조금'" (9-10절). (10절은, "마치 코흘리개를 대하듯이 말투마다 명령이요, 어린 아이들에게 알파벳을 가르칠 때 하듯이 꼬치꼬치 짚어 가면서 말하고, 깊이 없이 여기저기서 조금씩 따 와서 가르친다"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이는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는 바울을 가리켜 '말장이'(헬라어로 '스페르모로고스'; 이 낱말은 본래 '곡식 알갱이를 줍는 새'를 가리키는데서 시작하여 '하찮은 것을 구하는 비열한 사람'의 뜻으로 사용됨)라고 부르며 비웃은 것과도 같다 (사도행전17:18).

 

'피곤한 백성을 쉬게 하여 모두가 평화롭게 살도록 하라'는 야웨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선지자를 비웃는 이들 종교 지도자들에게 임할 재앙은 '장차 야웨께서 이 백성이 알지 못하는 외국어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11-12절). 이는 일찍이 모세가 예언한 재앙 가운데 "야웨께서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을 원방에서부터 데려와서 너를 치게 하신다"고 하였는데 (신명기28:49), 그 예언이 성취될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선지자 이사야를 비웃은 말 그대로 (10절 참조), 야웨의 말씀이 그들에게는 "중얼중얼, 응얼응얼, 예서 조금, 제서 조금"이 되어 (달리 해석할 경우, "일일히 명령이요, 꼬치꼬치 추궁하는 것이요, 여기저기서 조금씩 가져온 것"과 같이 되어서), 그들로 하여금 넘어지고 부러지고 걸리고 잡히게 할 것이다 (13절). 하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고 방탕한 생활에 빠진 종교 지도자들 역시 불쌍한 백성의 소망이 되지 못한다.

 

예루살렘의 위정자들은 앗시리아와 이집트 사이에서 교묘한 외교 활동을 통하여 얼마든지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거짓과 속임수를 통하여 교활한 정치를 하면서 어떠한 재난도 자기들에게 임할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을 향하여 (14-15절), 야웨께서는 "시온에 귀하고 견고한 기초돌을 두겠다"고 말씀하신다 (16절). 무슨 재앙에도 요동하지 않을 자는 '거짓과 속임수를 상책(上策)으로 삼는 예루살렘의 권력자들'이 아니요, 오직 '이 기초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 뿐이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이 '기초돌'이라고 밝히 말한다 (로마서9:30-33; 벧전2:4-8; 이사야8:14 참조).

 

'공평과 정의'를 통한 메시야의 통치가 확립되는 날, '거짓과 속임수'를 상책으로 삼는 모든 자들은 그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다 (17-20절). 과거 다윗이 블레셋을 바알-프라찜과 기브온 골짜기에서 크게 물리쳤듯이 (삼하5:17-25; 역대상14:8-17), 이제 야웨께서는 다윗 왕가와 유다 백성을 향하여 진노하실 것이다 (21절).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미 심판을 작정하셨으니, 비웃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22절).

 

에프라임의 지배층을 경고한 (28:1-4) 뒤 바로 그들 중 남은 자를 향하여 희망적인 약속을 던진 것처럼 (28:5-6), 유다의 지도자들을 경고한 (28:7-22) 후에도 선지자는 위로의 메시지(28:23-29)를 잊지 않는다. '언어의 천재'인 이사야는 농사 비유를 통하여, 마치 농부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 땅을 갈고 씨앗을 심거나 뿌리고, 익은 곡식을 타작하고, 가루를 내듯이, 야웨께서 이 백성을 여러 모로 다루시고 심판하심도 이들을 멸하고자 하심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축복하시기 위함이라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적절한 농사법을 가르쳐주신 조물주 하나님은 (26, 29절), 인간 역사를 다루심에 있어서도 알맞는 법도대로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