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 중에 만백성이 야웨의 의를 배움 (25:1-27:1)
온 땅과 그 거민을 심판하시고, 친히 왕으로서 다스리실 야웨 하나님, 그분은 선지자에게 찬송과 영광의 대상이시다. 이제 이사야는 심판주이자 구원주이신 야웨 하나님을 시와 노래로써 찬양한다.
우선 그는 사납고 잔인한 열강의 요새와 도시들을 폐허로 만드시고 친히 '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야웨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사야25:1-5). 이런 계획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야웨께서 세우신 것이다. 그리고 때가 이르면 그분은 반드시 계획하신 바대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신다. 이때 이방인들도 야웨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다. 피난처 되신 야웨 안에서 보호를 받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 관하여는 이사야14:30; 29:19에서도 언급하고 있다. 참고적으로 시편에는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보호하시는 야웨에 대한 찬양이 곳곳에 담겨 있다 (시편12:5; 35:10; 40:17; 69:33; 70:5; 72:4, 12-14; 74:21; 82:3-4; 86:1; 109:22; 132:15; 140:12).
25:6-8은 24:23의 연속이다. 이들 사이에 이사야의 찬미시(25:1-5)가 삽입되어 있을 뿐이다. 야웨께서는 '이 산', 곧 시온산에서 만백성을 위하여 풍성한 잔치를 베푸신다. 만백성의 마음을 덮어왔던 '면박과 덮개'(고후3:15 참조)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이제까지 그들 위에 군림하여온 '죽음'을 영원히 '제하신다' (문자적으로 '삼키신다'). 그뿐만 아니라 야웨께서는 이들 '자기 백성'이 지상에서 당한 모든 수치를 없애 주신다. 이 약속은 야웨께서 말씀하신 것이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이러한 일은 사도들도 강조하여 다루고 있다 (고전15:50-56; 계시록21:1-4 참조).
'그 날에' 다음과 같은 기쁜 노래가 울려 퍼질 것이다: "보라, 이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이 분이 바로 우리가 기다린 야웨이시다. 그의 구원으로 인하여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다" (25:9). 25:10-12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웨의 백성'을 향하여 거만하게 행하는 자들의 비극적 종말을 시온산 인근에 위치한 모압을 예로 들어 기술하고 있다. 모압은 에돔과 더불어 (이사야34:5-7 참조) 발람이 예언한 바, '장차 야곱에게서 나올 한 별', 곧 메시야에 의하여 파멸될 민족에 속한다 (민수기24:17-18 참조).
요르단 강 동편에서 모압의 교만이 짓밟히는 동안, 강 서편 유다 땅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메아리칠 것이다 (26:1-19). 이 노래는 야웨께서 '구원으로 성곽을 삼으신 견고한 성'에 관한 것이다 (1절). 이 성에 들어올 시민들은 '진실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고이)'이다 (2절). '영원한 반석'되신 야웨께서는 당신을 '의존하는 이들'을 평강으로 지켜주신다 (3-4절). 모압과 같이 (25:10-12 참조) 교만한 자들을 낮추시는 야웨이시니 그는 얼마든지 의존할 수 있는 분이시다 (5-6절).
정직하게 행하는 의인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야웨의 길에서 그를 기다리며, 그의 이름을 사모한다. 왜냐하면 야웨께서 온 땅을 심판하실 때 만민이 그의 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9절). 악인은 의를 배우지 못하고 야웨의 위엄을 돌아보지 않는다 (10절). 그러나 자기 '백성'('암')을 위한 야웨의 '열정'을 보고는 그들도 마침내 부끄러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불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평강으로 다스리시며, 그들은 영원히 야웨만을 기억할 것이다. (11-14절).
야웨께서는 이 의로운 '나라'('고이')를 큰 나라로 만드시고 그 통치 영역을 땅끝까지 확장하신다 (15절). 이사야는 26:2, 15에서 보통 '백성'을 뜻하며 자주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데 쓰이는 히브리어 낱말 '암'을 사용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이방(異邦)'이나 아니면 단순히 '나라' 내지 '민족'을 뜻하는 '고이'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야웨만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자손과 이방인이 모두 포함되는 '확장된' (15절 참조) 하나님의 '백성(암,)'(25:8; 26:11, 20 참조)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의 구분이 필요없다. 거기에는 오직 야웨만을 의지하며, 그만을 사모하며, 정직하게 행하는 의인만이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일찍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한 민족을 택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한 나라'를 세우신다. 주전 8세기에 유다 땅에서 살았던 '택함받은 백성'에게는 너무나 요원(遙遠)하고 의심스런 일로 들렸는지 모르나, 당시 이사야 선지자의 눈에는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비친 것이다.
일찍이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환란과 징벌 중에서야 비로소 야웨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에게 기도를 올린다 (26:16). 이들은 '해산의 고통'과도 같은 고난을 겪지만, 땅 위에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심판으로 인하여 텅 비게 된 세상에 거민도 내놓지 못한다 (26:17-18). 선지자 이사야의 이름 뜻대로 '구원은 오직 야웨 하나님께' 속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 땅 위에 세우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를 야웨께서 친히 세우시는 것이다.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심으로써 그 백성을 예비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이요, 구원이다 (26:19).
여기 이사야26:19에서 언급하는 죽은 자의 부활은 계시록20:4-6에서 말하는 '첫째 부활'을 의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대심판(이사야26:20-21)에 관하여는 계시록20:7-15에서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계시록 20장이 전체적으로 이사야26:19-21을 보다 상세히 묘사하는 것임이 분명할 때, 연이어 나오는 이사야27:1 역시 (이사야24:21-22이 계시록20:1-3에서 반영되듯이) 계시록20:10에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계시록에서는 '마귀, 곧 사탄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고 불린 삼자(三者)가 유황 못에 던져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이사야서에서는 '날랜 뱀 (모양의) 리워야단과 꼬불꼬불한 뱀 (모양의) 리워야단과 바다의 용'이라고 불린 세 종류의 짐승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27:1에서 언급한 세 동물은 궁극적으로 계시록에서 말하는 바 사탄의 삼위(三位)를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적으로 이 사탄의 삼위(三位)를 물리치는데 쓰이는 칼을 '그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이라고 세 가지 형용사로 묘사한 것은 '언어의 천재'로서의 이사야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리워야단'은 구약 성경에 모두 6회 나오는데 (시편74:14; 104:26; 욥기3:8; 40:25), 우리 동양의 '용(龍)'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바다 괴물이다. 이 낱말은 성경에서는 시적인 표현에 사용된다.
'논문 > 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사야28장,경고 (0) | 2015.02.12 |
---|---|
이사야27:2-13,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 (0) | 2015.02.12 |
이사야24장,동전의 양면 (0) | 2015.02.12 |
이사야서23:1-18,두로에 대한 경고 (0) | 2015.02.12 |
이사야서22:1-25,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0) | 2015.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