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30:1-33,유다에 대한 경고

호리홀리 2015. 2. 12. 19:55

헛된 도움을 청하는 어리석은 유다에 대한 경고 (30:1-33)

 

'오호라'로 시작되는 네번째 경고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이집트에 고위층 사신을 파견하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유다 왕조를 향하여 먼저 그 포문을 연다. 이집트는 유다에게 도움은 커녕 창피거리가 될 것이다 (30:1-5). 소안과 하네스는 당시 이집트의 큰 성들이다. 6-7절은 유다의 사신들이 원조를 청하러 나귀와 낙타 등에 예물을 싣고 네겝 지방의 험한 광야(지금의 시나이 반도)를 지나 이집트로 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6절의 '네겝의 짐승'은 유다의 사절단을 빗대어 부르는 말일 것이다. '라합'은 아마도 일종의 '바다 괴물'에 대한 명칭으로서 (욥기9:13과 26:12의 칠십인역 참고), 이집트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이사야51:9; 시편87:4; 89:10).

 

신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따르지도 않고, 자기 마음의 계획과 자기 지혜대로 일을 추진함도 하나님 보시기에 큰 죄악이 된다. 자기의 상식과 세상 풍조에 의존하여 '남들 모두 하는대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자식'(1절 참조)이라는 책망을 들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기의 지혜를 의지하여 사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됨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류의 교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정도(正道)는 듣기 싫어하고, 자신의 처세술을 뒷바침해주는 '부드러운 아첨의 메시지'나 '망상적인 얘기'만을 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런 이들에게 환영의 대상이 될리 만무하다. 결국 이런 이들의 태도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8-11절). 12-17절에서는 '잠잠히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 방법대로 헛된 것을 의존하는 이들에 대한 재앙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공평하신 야웨의 자비하심은 인간의 죄악과 그에 대한 심판을 훨씬 초월한다. 많은 사람이 심판을 면치 못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25절 참조), 죄악된 행실을 버리고 '스승'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야웨를 기다림으로 시온에 거하며 복을 누릴 '남은 백성'이 있다 (18-26절). 이 약속은 앞서 나온 28:5-6, 23-29; 29:17-24의 약속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여기 20절의 '환난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신다' 함은 비록 예루살렘이 적군에 의하여 포위된 상황이지만 그 가운데도 백성이 최소한의 양식은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왕상22:27; 역대하18:26에서는 포위 또는 감금시 주는 최소량의 식량 배급을 가리킴).

 

유다 다윗 왕조가 이집트의 도움을 청하러 사신을 거기로 파견한 것은 발등에 떨어진 불 격인 앗시리아의 침입 때문이다. 그러나 야웨 하나님께서는 친히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것이다 (27-33절). 33절의 '도벳'은 힌놈 골짜기에 있는 지점으로 거기서 아이들을 몰렉신에게 바치곤 한 곳이다 (왕하23:10; 예레미야7:31-32; 19:6, 11-14). 이 때문에 '도벳'이라는 지명에 '진멸과 태움의 장소'라는 뜻이 생겼다. 야웨께서는 앗시리아 왕을 위하여 이미 도벳을 설립하셨고, 거기에 심판의 '불과 유황'을 준비하셨다. 앗시리아를 위한 '도벳'의 준비는 사탄과 그의 추종자들, 곧 하나님을 거스리는 뭇 사람을 위해 예비해놓은 '불과 유황 못'(계시록19:20; 20:10)과 일맥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