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시리아의 멸망과 남은 자의 귀환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지상의 모든 나라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관리하에 놓여져 있다. 택함받은 이스라엘이 '아들'이라면, 앗시리아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훈계하고자 사용하신 '몽둥이'이다. 인자한 부친에게 있어서 징벌을 위한 징벌이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징벌하실 때는 반드시 그 목적이 있으며, 한계가 있다. 징벌의 목적이 성취될 때가 바로 징벌의 한계점이다.
야웨 하나님은 앗시리아라고 하는 '징벌의 몽둥이'에게 분명한 한계선을 정해주셨다 (이사야10:5-6). 그러나 앗시리아는 거만한 마음으로 이 침략의 여세를 몰아 예루살렘마저도 자기 손 안에 넣고자 한다 (이사야10:7-11).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벌하시는 근본 원인은 '임마누엘 왕국'을 건설하여 당신의 정의와 공평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하심이지, 앗시리아 왕국과 같은 특정 국가를 세워주시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지상에 있는 어느 나라이고 결코 그것이 임마누엘 왕국으로 화할 수는 없다. 임마누엘 왕국은 오직 위로부터만 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이 거만한 나라를 결코 간과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하실 일은 자기 백성을 징책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은 앗시리아를 꺾으실 것이다 (이사야10:12-19). 이 문맥에서 앗시리아를 벌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빛'이요, '그의 거룩한 자'라고 표현되었다 (17절). 지상에는 많은 나라들이 섰다가 무너지곤 한다. 나라마다 각기 자기들의 민족주의적 또는 국가적 자존심과 긍지를 되새기면서 지상에서 영원히 존속하며 번창하기를 원하지만, 이제까지 땅 위에 기록된 실제 역사를 통해 볼 때 영원히 명맥을 유지한 나라는 하나도 없다. 모든 나라는 반드시 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은 징벌을 받지만 다시 일어선다. 지난 2,000년 동안 나라없이 온 세상을 붸겨 다니며 온갖 박해와 살륙 속에서도 끊임없이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마침내는 조상들이 살던 고토로 다시 모여들어 나라를 세운 유대 민족의 실질적 역사는 '하나님의 선택'에 후회하심이 없음을 유감없이 보여준다고 하겠다. 물론 나는 유대 민족의 지상 나라가 통째로 임마누엘 왕국으로 화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지상에 있는 유대 민족의 역사는 인류의 운명을 가리켜 주는 '하나님의 시계'라고 하겠다. 그들은 지상 모든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정확성을 증거하는 '야웨의 증인'으로 택함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야웨의 증인',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사야10:20-23). 이들의 귀환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바로 '그들이 과거에 거역했던,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21절).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외세에 의지하지 아니하고 야웨만을 진실히 의뢰할 것이다. 과거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에 있었던 유다 자손의 귀환이나 20세기 들어서의 유대인의 귀환은 역사적 사건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귀환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들이 자기들의 왕 메시야 예수께로 돌아와야만 한다. 그리고 이 일은 그것을 작정하신 하나님의 열성 때문에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말씀을 가지고 '시온에 거하는 자기 백성'을 격려하신다 (이사야10:24-27). 이사야 10:28-32는 앗시리아가 유다의 영토 대부분을 점령하고 예루살렘의 목을 조여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목에까지 찬' 위험은 야웨 하나님의 직접적인 간섭으로 해결될 것이다 (이사야10: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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