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웨의 포도원에 임할 심판
이사야 제5장은 포도원 비유(1-7절)로 시작된다. 첫 1-2절은 이스라엘 땅의 산지에 포도원 만드는 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스라엘 땅의 산지에서는 양질의 포도가 많이 생산된다. 여기 농부는 햇빛이 잘들고 기름진 산 언덕을 택한다. 아마도 높은 위치 때문인지 쟁기를 사용하지 아니하고 일일히 호미로 땅을 파서 돌을 골라낸다 (이스라엘 산지에는 돌이 아주 많다). 그리고는 거기에 좋은 품종의 포도 나무를 심는다.
골라낸 돌들을 가지고는 보통 포도원 전 지역을 잘 감시할 수 있는 한가운데에 망대를 세우고, 양이나 염소 떼, 또는 다른 야생 짐승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낮은 돌울타리(민수기22:24; 잠언24:31 참조)를 만들어 그 위에는 이스라엘 산지에 흔히 있는 가시 덤불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는 포도원 가까운 곳에 넓고 편편한 암반 지대(포도를 밟는 곳은 넓고 편편해야만 좋다)를 찾아 수확한 포도를 으깨어 즙을 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물론 암반의 낮은 곳에는 즙이 모이도록 꽤 커다란 홈을 파내야 한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났다. 농부는 양질의 포도를 기다린다. 결실기에 이르러 보니 거기에는 좋은 포도는 커녕 알이 조그마하고 맛도 없는 들포도(또는, 머루)만이 맺혀 있었다. 농부는 너무나 속이 상한 나머지, 울타리 위의 가시 덤불을 걷어내고 돌울타리 마저도 헐어낸다. 이제 포도원은 얼마든지 짐승들의 발 아래 놓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저주받은 포도원에는 더 이상 가지 치기도, 북주기도 없을 것이다. 거기엔 가시와 엉겅퀴(이스라엘 땅에는 특히 건기인 여름철 내내 도처의 경작되지 않은 땅에서 가시와 엉겅퀴를 볼 수 있다)가 무성하며, 비도 내리지 않을 것이다.
7절에서 밝히기를, 농부는 야웨 하나님이시요, 포도원은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포도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한다. 위의 비유를 좀더 풀어본다면, '기름진 산언덕'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출애굽기15:17; 신명기8:7-9; 11:9-12),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내는 행위는 가나안 족속들과 싸워 그들을 제거함을 (시편44:2), 망대는 왕도 예루살렘과 더불어 그 안에 우뚝 솟은 시온 성채를 (미가4:8), 포도즙 짜는 곳은 성전을 (시편36:8)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포도원의 울타리를 허는 행위는 예레미야5:10; 12:10에 잘 설명되어 있다. 참고적으로 이사야5:1-7의 '실망을 준 포도원 노래'와 대조적인 '아름다운 포도원 노래'는 이사야27:2-6에 기록되어 있다.
이제 선지자는 비유를 매듭짓고, 이 백성의 죄악과 그에 따른 형벌을 슬픈 심정으로 하나씩 하나씩 열거한다 (이사야5:8-30). 8-24절 안에는 각각 '오호라'(히브리어로 '호이'는 탄식할 때 시작되는 낱말이다)로 시작되는 여섯 조목이 나온다. 먼저 이 여섯 조목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8-10절: 부자들의 탐욕적인 재산(당시는 주로 부동산) 증식은 조물주의 진노와 재앙을 불러 일으킬 뿐이다. 하나님은 땅 매매를 영원히 금지시키시고 (레위기25:23), 또 희년 제도를 정하시어 만일 어느 이유에서든 남에게 이전된 땅일지라도 희년에는 반드시 돌려주도록 명하셨다. 부자들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아니한 예는 왕상21:1-16(아합왕과 나봇의 포도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미가 선지자 역시 이러한 탐심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미가2:2).
과거 단순한 농경 사회에서 토지는 경작을, 가옥은 거주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땅이나 집이 일부 부유층에 의하여 자기들의 배만 채울 목적으로 차지되는 것은 조물주의 뜻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이기적인 목적에서 부동산 투기를 하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집들은 훼파되고 토지 또한 황무케 되어 제대로 소출을 내지 못할 것이다.
11-17절: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온갖 향락에만 빠진 이들 역시 조물주의 진노와 재앙을 벗어날 수 없다. 이 백성은 포로되어 끌려가고, 향연 대신에 굶주림과 목마름의 노예가 될 것이다. 향락에만 빠졌던 자들은 죽음으로 내려갈 것이요, 그들이 죽거나 끌려가고 남은 폐허에서는 어린 양떼가 풀을 뜯고, 유목민이 황폐해진 밭의 산물을 먹을 것이다.
18-19절: 악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에 대하여 비웃고 악한 말로 모독하는 자들도 물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심판을 무시하거나 또는 아예 잊어버리고자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아니면, 적어도 많은 이들이 '내게만은 이런 재앙이 임하지 않겠지'라고 하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20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도덕적 기준을 뒤집거나 바꾸어 놓는 자 역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벗어날 수 없다. 문명 세계의 현대인들은 점차로 도덕적인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비근한 예를 들자면,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동성 연애(레위기18:22)는 오늘날 서구에서 법적 제재나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도리어 일종의 보호 대상이 된다. 오히려 동성 연애자들은 협회를 구성, 정치적으로 일종의 압력 단체 구실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러가지 사업이나 공무상의 속임수, 온갖 비리, 부정 부패는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다. 가정들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고, 낙태, 폭력과 테러, 마약 등이 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있다. 저속하고 선정적이거나 심지어는 파괴적인 음악, 무용, 미술, 코미디, 연극, 영화, 비디오, 전자 오락, 컴퓨터 프로그램 등이 우리 주위에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죄를 죄라 하고 악을 악이라 분명히 말하는 자가 점점 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다는 점이다. "남들 다 그러는데, 너만 왜 유별나게 살려고 하느냐"라는 말 한 마디로 하나님의 가치관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것이 현실이다.
21절: 스스로 지혜있다고 하는 자들 역시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온갖 교만으로 가득차 있다. 과학적 성취, 기술의 진보, 우수한 고등 교육, 경제력의 신장 등이 우리 인간의 교만을 키워주는 듯 하다. 그러나 성경은 가르치기를, "야웨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한다 (잠언1:7; 9:10).
22-24절: 여기서는 술에 노예가 되고 뇌물에 의하여 판결을 굽게 하는 재판관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술과 뇌물 때문에 '사회의 성실한 종' 노릇을 못하는 공무원들은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법도와 그의 말씀을 버리고 멸시한 이들은 결국 심판의 불에 소멸될 것이다.
이상의 죄악들로 인하여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분노하신다. 그리하여 우선 머지않은 장래에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에게 전쟁에 의한 대살륙이 있게 될 것이다 (이사야5:25). 이 예언은 요담의 아들인 아하스 때에, 아람왕 르신과 북왕국 이스라엘 왕 베가의 연합군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함으로써 성취되었다 (왕하16:5). 이 전쟁의 결과를 역대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대하28:5-7).
그러므로 그 하나님 야웨께서 아람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희가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붙이시매 저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야웨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 이만명을 죽였으며, 에프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그래도 하나님의 분노는 식지 아니하실 것이다. 아직도 남은 재앙이 있다 (이사야5:25하-30). 앞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람이나 이스라엘 같은 인근 나라가 아니라, 먼 곳에서 나라들을 끌어 오실 것이다. 이러한 위협적인 예언은 이미 오래전에 모세에 의하여 선포된 바 있다 (신명기28:47-57). 그리고 이 침략의 대열에서 가장 앞장 설 나라가 바로 앗시리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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