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3:11-14 ,그릇된 신앙관들

호리홀리 2015. 1. 26. 17:54

롬13:11-14

 


 

1. 그릇된 신앙관들

 

① 사도 바울의 접근 방식은 행실에 대한 전체 문제를 다루는 신약의 방식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❶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 위하여, 이러한 도덕적인 권면을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❷ 우리가 이와 같이 살아 가야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인 것이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❸ 그것은 우리가 행위로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받기 때문입니다. ❹ 먼저 믿음이 따르고, 그 믿음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행위가 그 신분에 맞는 행실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를 테면 열매 없는 나무가 죽은 것과 다름없는 것처럼, 행실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말씀이 여기에 적용이 될 것입니다. ❺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은 뒤에 그에 걸맞은 행실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행위는 어떤 면에서 믿음의 열매라고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 믿음이 온 후에 우리는 선한 행실이라는 열매로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성화가 믿음으로 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❶ 성화의 동기는 가장 먼저 심판의 두려움에 의해 주어집니다. ❷ 그러나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신의 양심으로 인하여 하는 것입니다. ❸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조명 받은 양심을 가지고 있어서 옳은 것이 무엇임을 이해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뜻하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를 이해하고 있습니다. ❹ 그러나 더욱 전진하여 진보한 상태에서는 주님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안에서 살아가며,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인하여 성화를 이루어 가게 됩니다.

 


 

2. 때와 역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언제나 교리와 진리의 결과요 적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12장 1~2절에서 시작했던 호소를 강화시키고 있는데,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멸하도록 하라.”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렇게 해야 할 큰 이치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또한 ... 이 모든 것을 하되 특히 ... 에 비추어서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성경은 두 역사의 타입이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❶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제 아래서 허용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❷ 두 번째 유형의 역사는 이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역사로서 이 유형의 역사는 허용하시는 역사가 아니라 산출하시는 역사입니다. 그것은 거룩한 역사, 구속의 역사라고 합니다. ❸ 허용의 역사는 하나의 배경에 불과하며 하나님께서 설치해 놓은 무대에 불과합니다. ❹ 구속사의 특징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역사로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을 이루는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항상 먼저 일하시는 최상의 동작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전체의 역사를 창세전에 계획하셨고, 이 시간 세계 속에서 그것을 사건들로 구체화시키고 계십니다. 그 역사는 미리 정하신 목적을 향해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산출하시는 역사 속에 존재하는 시간의 요소는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가장 우선적이고 본질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❶ 세상은 무지함 속에서도 바른 일을 시행하는데, 세계가 역사를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 in the year of our Lord)로 나누는 것입니다. ❷ 세상은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믿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은 그 구분법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❸ 항상 시간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차원에서 나누고 있는 성경은 시간을 세 등분으로 구분합니다. ꊧ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의 시간 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세상에 사시고 시간 세계에서 떠나 영광으로 돌아가신 때 ꊩ 다시 최종적으로 오시는 때로 나눕니다.

 

④ 그리스도께서 오심은 때가 찼기 때문입니다. ❶ 우리의 역사관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고, 과학의 발전과 혼인과 재산의 취득, 전쟁과 같은 것에 의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❷ 우리는 진정으로 문제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인 독생자의 인격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❸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고, 가르치셨으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마지막 원수를 정복하셨고, 그리고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면서, 그의 원수가 발등상 되기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마지막 시기, 이 세계 역사의 마지막 국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❹ 시간과 역사에 관해서 그러한 관점을 취하면 또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인생에 대한 매우 분명한 관점을 어떤 방식으로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❺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세상 너머의 내세와 그 내세의 삶에 대해 매우 분명한 관점을 가져야 하는데,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바로 이 점에 대한 이해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3. 삶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기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기로 규정하고 우리의 지상 생활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면에서 참으로 보배로운 요점입니다.

 

① “밤”과 “어두움”이라는 두 단어에서 우리는 세상이 바로 그 “밤”과 같다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계속해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말해 나갑니다. ❶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오늘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인생의 “밤”, “어두움”이라는 관점을 가집니다. ❷ 그리스도인이 아니면서도 선하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것들은 “어두운”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인생 전체를 “어두움”으로 봅니다. ❸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외인”, “나그네”로 여기며 삽니다. ❹ 성경 전체의 교훈은 세상을 언제나 “어두움”으로 규정합니다.(요3:19; 8:12; 12:36; 고전4:5; 골1:10~13; 벧전2:9; 요일1:5~7; 2:8~9; 행26:16~18)

 

② 인류는 인생과 삶의 전체 목적에 관하여 무지한 어두움에 처하여 있습니다. ❶ 죽음은 헤아리기 어려운 어두움에 불과한 것이며, “소망도 없이 무덤”을 기뻐하는 것과 같은 양상입니다. ❷ 그들에게는 죽을 때 모든 것이 붕괴되어 보이며, 그것이 마지막 어두움입니다. ❸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세상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알기만 한다면 일초라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❹ 영혼과 죽음 너머에 있는 모든 것과, 심판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무지합니다.

 

③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은 빛에 속하여 있으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와 행인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하며, 세상과 육체와 마귀를 대적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❶ 이 세상에 관한 우리의 관점은 어둡고 망할 세상입니다. ❷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어서 정죄를 받을 세상입니다. ❸ 정치가들에 의해서라도 이 세상을 바꾸지 못하며, 그들은 단지 표면에 파장만 일으킬 뿐입니다. ❹ 그들은 진정한 위치에 대해서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❺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영구한 도성이 없고 오직 장차 올 것을 찾나니”(히13:14)라는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❻ 우리가 세상만을 바라본다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❼ 우리에게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영원한 도성의 문이 우리 앞에 열려 있음을 압니다.

 

④ 장차 오는 세상에서는 모든 천사들이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받은 우리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❶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❷ 구원은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오는 세상입니다. ❸ 우리의 소망의 기업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❹ 우리가 아직 그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믿음이 있고, 그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즐거움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❺ 우리가 완전하고 최종적인 구원에 대한 전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매일 그러한 것들에 비추어서 일상의 삶을 영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4. 이미와 아직

 

우리는 우리 속에 일어난 변화로 인하여 시간과 이 세상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과 내세에 관하여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바울은 그 점을 다시 두 단어로 표현하는데, ❶ 그 첫 번째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에 관하여 구원이”라는 뜻인데, “우리”라는 단어는 그 모든 것을 매우 잘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❷ 두 번째는 “우리가” 인데,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벋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여기에서 “우리가”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들과 우리를 구별시키는 단어입니다. ❸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예리하고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를 그들의 행실이 아니라 그들의 성품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❶ 그리스도인은 거듭나 새로운 성품을 받았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❷ 그리스도인은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❸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비 그리스도인보다 전적으로 선해야 함은 마땅한 것입니다. ❹ 우리는 영적 출생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느 사람도 하나님의 권속이 될 수는 없습니다.

 

③ 우리의 품격은 하늘에 있습니다. ❶ 우리가 속한 곳은 하늘입니다. ❷ 그 하늘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❸ 우리가 잠시 동안 그 하늘로부터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❹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여러 나라들의 시민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❺ 그러나 비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지상 나라의 시민들입니다.

 

④ 우리는 영화롭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❶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광은 우리를 위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절대로 진리입니다. ❷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그 영광 속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것들을 들여다 볼 때 함께 체험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❸ “하늘을 미리 맛봄”은 세상적인 즐거움이 아닙니다. ❹ 세상적은 즐거움이 아무리 정화되고 최고도에 달한다 할지라도 그런 맛을 내지 못합니다. ❺ 그러나 “영광이 이 땅 아래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광이 이미 우리를 위해서 출발을 한 것입니다.

 


 

5. 성화의 방식

 

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딛2:14) ❶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용서받게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로 선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❷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죽으신 전체 목적이었습니다.

 

② 주님께서 모든 것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시 섬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③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❶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❷ 하나님은 빛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 빛에 거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빛은 어둠과 함께 할 수가 없으며, 빛은 어두움을 쫓아내기 때문에 우리는 빛으로서 어둠이 조금이라도 섞일 수가 없습니다. 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 품위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❹ 우리는 도덕을 지키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초월한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살고, 또한 도덕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나오는 것 자체가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만족시키신 우리 주님의 의로움이 우리의 행위에 묻어 나오는 것입니다.

 

④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에서 “깰 때”라는 말은 잠에서 일어날 바로 그 시간 속에 있다는 뜻인데, “자다가”는 말을 단순히 느슨해져 있는 조건을 뜻하는 것입니다. ❶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일깨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❷ 축 늘어진 상태나,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상태나, 무기력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들을 분발시켜야 합니다. ❸ 그들은 그것을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 : 눅21:34~36; 막13:33,37; 고전15:34; 16:13~14; 엡5:14; 살전5:6~8; 벧후1:5; 딤후1:6) ❹ 자신을 흔들어 깨운 다음에 우리는 자신을 향하여 소리쳐야 하며, 자신의 영혼이 정말로 살아 있고 항상 경계하는 상태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고후13:5) ❺ 우리는 각자 “정말 우리가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시간을 쓰는 방식을 복음이 결정하는가? 복음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❻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에 대하여 각성하는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데, 우리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영적 싸움을 위해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⑤ 우리는 교회 안에서 그저 습관적으로 행해 나가고, 어떤 추진력에 의해서 이끌려가는 무기력한 삶에서 깨어나, 예수님 안에 있는 진리에 참여하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❶ 성경을 읽되,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❷ 성경을 이해하도록 돕는 책들도 읽어야 합니다. ❸ 그러나 책을 읽는 것만을 의지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❹ 영적인 사람들,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성령 충만하게 되었던 사람들의 전기를 통해서 그들의 삶에 대해서 탐사하고 우리 자신을 검증해야 합니다. ❺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메시지로 받아 삶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⑥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말씀은 “잠에서 깨라”는 것이며, 그리고 해야 할 일은 옷을 단정히 차려 입는 것인데, 우리가 어떻게 옷을 입어야 합니까? ❶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라고 말합니다. 그 옷을 계속 입고 있지 말고 벗어 버려야 합니다. ❷ 이것은 영 단번에 벗어 버리고 다시 주워 입지 말라는 것입니다. ❸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벗어야 합니까? 그것은 어둠의 일입니다.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에 부끄러운 말이라.” 이것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참조 : 골3:9; 엡4:22; 갈5:19~21; 엡5:11]

 

⑦ 바울은 더 적극적인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빛의 갑옷을 입자.” 라고 말합니다. ❶ 여기서 “입자”는 뜻은 영 단번에 입자는 뜻입니다. ❷ “빛의 갑옷”이라는 말씀은 “빛의 무기”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은 번역입니다. ❸ 그것은 빛, 곧 낮에 속한 사람들인 우리들에게 적당한 복장이기 때문입니다. ❹ 낮에 속해 있는 방식으로 행하자는 말입니다. ❺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시민권이 하늘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빛의 자녀에 합당하게 단정하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⑧ 방탕과 술 취함, 그리고 음란과 호색, 또한 쟁투와 시기, 이 모든 것들은 육에 속한 것들로 우리는 육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신의 성품을 가진 새로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것들과 별개입니다. ❶ 그것들은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성품입니다. ❷ 전에는 우리도 그러했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❸ 그런데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자신의 참 모습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❹자신의 옛 모습과 습관들로 인해 자신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옛 모습을 답습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❺ 우리는 언제나 신의 성품의 참예한 자로서 그런 모습들은 거짓된 나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❻ 사탄은 항상 우리의 옛 모습을 들추어내고 그것이 우리의 참 모습이라고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는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❼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남으로서 우리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고, 하늘에 속한 성품이 주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옛 기억을 떠올리지 말아야 합니다. ❽ 우리가 사는 방식은 언제나 우리의 참 모습을 발견하고 하늘에 속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❾ 우리가 죄 가운데 있던 기억들로부터 벗어나 더 이상 그 옛 모습대로 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⑨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❶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를 의존하여 삶을 영위하셨습니다. ❷ 우리도 우리 주님께서 아버지를 의존하여 삶을 영위하신 것과 똑 같은 방식으로 주님을 의존하여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❸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표현은 주님이 머리가 되시며 모든 양분과 다른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옴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❹ 우리는 주님과 그 생명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❺ 어두움의 세상과 죄악의 세상, 즉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맞서 싸워야 하는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❻ 그래서 그들을 이겨내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