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2:9~21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호리홀리 2015. 1. 26. 17:41

롬12:9~21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기독교는 하나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보다 먼저 “방식”의 사람들로 불렸는데, 그들은 특별한 방식으로 생각했으며, 특별한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였고, 또한 특별한 방식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교리로부터 시작하여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약2:20)

 

①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바로 이 대목이 제일 대목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대목은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입니다. ❶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인 삶 전체를 아름답고 완벽하게 요약하고 있으며, 나아가 율법의 전체를 함축합니다. ❷ 만일 우리가 두 원리에 대해서 바르기만 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릇될 수 없습니다. ❸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❹ 위선적인 모습을 취해서는 안 되며, 정직해야 합니다. ❺ 그것은 존재의 깊은 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❻ 단순히 세련됨이나 상냥함 정도가 아니며, 감상적이거나 약한 것이 아닙니다. ❼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의 존재와 성품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것들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 계명이 즐거움이 되고(시119:143), 율법을 사랑하게 되어 율법을 지키는 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기는 자신을 즐겁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랑은 가식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평판을 생각하기 시작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의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된 영역 속에 있어야 하는데,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러한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입니다. ❶ 우리 속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 사랑을 창조합니다. ❷ 우리는 진리의 빛에 비추어서 우리의 사랑을 점검하여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면 그 사랑은 가식이 없는 사랑이 될 것입니다. ❸ 언제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자비를 통해서 행하신 일의 차원에서 그 모든 것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❹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 그 영역의 높이까지 이를 수 있도록 고양시킴으로 우리 악을 내려다보고 그것을 미워하고 혐오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❺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계명들을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❻ 우리는 형벌을 받고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를 상기하고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해서 그처럼 많은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으로서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표시해야 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신 사람이 되어가야 합니다. ❼ 이 세상에서 완전한 승화는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나 바로 그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에게 권면과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2. 형제 사랑과 자아(9~11)

 

10절에서 사도는 “형제 사랑으로 피차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먼저하고”라고 말합니다. 이 번역을 다르게 한다면 “피차 형제 사랑 가운데서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① “우애하고”라는 말씀은 마치 그들이 혈육으로 형제 된 자들처럼 그 형제들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대면하라는 뜻입니다. ❶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듭난 사람이며, 새로운 성품을 가지고 새 생명으로 시작한 생활에 들어왔으며,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역시 그것이 해당됩니다. ❷ 그러므로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권속입니다. ❸ 우리 주님은 그 점에 대하여 막10:29~30에서 언급하시고 계시는데, 그 말씀은 “너희가 형제들과 자매들과 아버지들과 어머니들과 남편들과 아내들을 얻게 될 것을 생각하라. 너희가 잃은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너희의 것이 되었다. 너희가 전에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게 될 것이다.” ❹ 그것은 우리가 놀라운 하나님의 권속이 되어 들어왔고, 이제 그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새로운 관계들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② 우리는 동일한 몸의 지체들일뿐만 아니라 같은 가족의 일원들이기 때문에 어떤 때에나, 어떤 상황에서, 어떤 형제자매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 되면, 그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유의 일을 행하고 있는 우리의 혈연의 친척들을 대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을 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생활이 조화롭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친척에 대해서 느끼는 것보다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더 가까운 친근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본성이 우리 속에 있고,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며, 같은 하나님의 권속이기 때문에 시간 세계에 있는 동안에만 그 관계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그 관계가 지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④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라는 말씀은 존경심을 나타내는데 있어서 먼저 하라는 뜻으로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마땅히 드려야 하는 존경심을 항상 먼저 나타내라는 뜻입니다.

 

3. 게으름의 원인들(11)

 

본문에서 사도는 우리가 가진 소명에 대한 태도, 즉 어떻게 일을 해야 할 것인지, 어떤 정신으로 일을 해야 할 것인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① 게으름의 주요한 원인은 기질적이고 체질적인 경우일 수도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활력이 넘치고 능동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느리고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❶ 그것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태어난 것 때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❷ 때로 어떤 특별한 기질이 민족성에 속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❸ 또한 기후에 따라 따스한 기온은 기운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차가운 기온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 기후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더 활력이 넘치게 합니다.

 

② 마귀의 공격에 의해서 나태하고 게으른 그리스도인들을 산출할 수 있는데, 그것을 마귀는 매우 기뻐합니다. ❶ 마귀는 많은 방면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귀신이 들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❷ 게으름과 일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산출할 수도 있습니다. ❸ 침울한 정신이나 고통을 야기 시킬 수도 있습니다. ❹ 좌절감을 통해서 게으름을 산출하기도 하는데, 낙담하게 하여 게으름에 빠지고 일에 온전한 마음을 쏟을 수 없게 합니다.

 

③ 우리는 자신을 깨우쳐야 합니다. ❶ 그것은 자신의 본성에 없는 것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❷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일깨울 수 있는데, 그렇게 할 필요가 있고, 이것은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큰 교훈중 하나입니다. ❸ 태생이 힘이 넘치는 사람같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깨우쳐서 자신답게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❹ 우리의 심령도 연습을 하고 사용할 때 가장 최선의 상태에 있기 마련입니다. ❺ 기독교는 본성을 배제시키지 않습니다. ❻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적 수준에서 출발할 때에, 우리가 그렇게 하게 될 때 자신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❼ 우리는 자신의 기질을 바꿀 수 없으며, “열심 있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있는 그대로 해야 하며, 소극적이고 무기력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본성적인 의미에 있어서 심령이 열심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태에서 열심을 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④ 사도는 우리에게 “성령 안에서 열심을 품으라.”고 합니다. 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❷ 무기력하고 나태하고 게으르고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라 절제와 능력과 사랑과 건전한 마음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❸ 성령은 능력과 힘의 영이십니다. ❹ 본성적인 능력의 차원에서 우리 자신을 생각하면 안 되고,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은사를 상기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❺ 본성적인 기질을 극복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❻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위대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4. 부르심의 소망(11~12)

 

우리의 속에 계시는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성령을 소멸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게으르지 말아야 하고 심령에 있어서 열심을 품어 나태함에 빠지지 않게 하여야 하며, 또한 그 부지런함으로 “주를 섬겨야” 합니다.

 

① “주를 섬기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❶ 우리는 값으로 산 노예로서 주인을 섬겨야 할 것을 말합니다. ❷ 노예는 자신을 위해서 어느 것도 하지 않으며 오직 자기의 상전을 위하여서 행합니다. ❸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이 신비로운 몸의 지체들이니 사람이 이 몸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 것보다 더 영예로운 일은 있을 수 없고,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하여 그리스도의 위대한 일의 어떤 부분을 함께 나누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이 보다 큰 영예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② 주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우리를 방해하거나 우리를 주저앉게 만드는 모든 것을 우리로부터 제거할 수 있습니다. ❶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❷ 우리는 언제나 멈추어 서서 우리의 실패 속에 주님도 수반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❸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우리가 게으르고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❹ 우리는 사적인 개인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들로서 한 몸임을 항상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❺ 또한 우리는 주님의 눈이 항상 우리를 감찰하시고 계심을 상기해야 합니다.

 


 

5. 인내 (12)

 

본문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골3:2)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합니다.(롬5:2) 그리고 두 번째 권면은 “환난 중에 참으며”라는 말씀인데,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① “환난”은 일들이 무겁게 내리누르되 거의 부서뜨릴 정도까지 압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❶ 환난과 시련이 여러 방면에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❷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환경들의 결과로 일어날 수도 있고, 시험을 통해서도 오며, 어떤 때는 핍박을 통해서도 옵니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시험하려고 보내지는 것입니다. ❸ 많은 유의 환난이 우리의 심령을 짓눌러 대고, 생각을 압박하고, 마음을 눌러댑니다. ❹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우리를 부수어 내고, 납작하게 만들려 하며, 나뒹굴어 낮아지게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❺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정도는 달라도 반드시 시련을 견뎌내야 합니다.

 

② 우리는 환난을 보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며, 그 환난에 지지 말아야 합니다. ❶ 만일 환난과 시련이 나를 넘어지게 내버려 둔다면 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족한 것입니다. ❷ 우리는 결코 불평이나 불만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❸ 시련이 닥쳐오게 되면 붕괴되어 버리는 날씨 좋은 날에만 그리스도인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③ 환난이 닥쳐오고 시련이 오게 되었을 때 참아 견뎌내는 인내심을 가지고 환난 중에 견고하라고 합니다. ❶ 환난을 당했을 때에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그것이 없는 것을 걱정해야 합니다. ❷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우리의 복되신 주님이시오 상전이신 구주께 일어난 바로 그 일임을 인식하게 될 때 환난 중에서도 능히 인내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주님을 그렇게 대적하였기 때문입니다. ❸ 환난이 우리 자신에 대해서 가르치도록 해야 합니다. 환난이 오는 순간 우리는 낮아지게 되고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며 자신의 교만과 이기심을 발견합니다. 또 자신 속에 있는 패역한 정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환난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배워야 합니다. ❹ 환난과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과 거기 하늘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영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듭니다. ❺ 환난이 우리로 하여금 세상이 우리를 유익하게 만들 것이고 그 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④ “환난 중에 참으며”라는 말씀에 이어 “기도에 항상 힘쓰며”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권면들의 연관성을 알아야 합니다. ❶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다가올 세상에 대하여 생각하게 만들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상기하도록 해줍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합니다. ❷ 환난과 소망과 기도는 항상 함께 갑니다. ❸ 우리가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고 기도에 항상 힘써야 하는 것은 기도는 낙심에 대한 오직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눅18:1) ❹ 이 세상은 마귀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으니, 우리가 믿음을 지키고 항상 서 있을 오직 유일한 방식은 기도 밖에 없기 때문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고 항상 기도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⑤ 우리가 만약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가 게으르기 때문이며, 영적으로 죽어 있거나, 영적 갈등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것은 영적 무지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❶ 기도는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❷ 기도는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말을 통해서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히4:16) ❸ 기도는 하나님의 면전으로 들어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갖는 것이고,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는 것입니다.(약4:8) ❹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❺ 예를 든다면,밤중에 어린 아이와 함께 걷고 있고, 그 어린아이가 무서운 마음이 들 때는 평소보다 더 많은 말을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아버지가 거기 여전히 자기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확인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놀라운 위안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린 아이들입니다. 그래서 기도와 다른 어떤 것을 해 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도하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❻ 기도는 하나님께 늘 가까이 하고 싶은 느낌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것은 자녀에게 있어서 본능적인 것입니다. ❼ 참된 기도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교통입니다. ❽ 우리는 늘 주님과 교제를 유지해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자주 놀라운 느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끊임없이 주님께서 여기에 계시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6. 청지기 정신(13)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분명한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의 생활 속에서 슬프게 낙담하게 될 것이고, 금방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경고하셨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비시키신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우리 개인적인 환난을 대처해 나가는지 그 방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보다 더 나아가 우리가 고통을 당하는 유일한 존재가 아니며, 우리의 모든 동료 성도들도 정확히 같은 조건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인식해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동료 성도들이 같은 난제를 대처해 나가도록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도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① “공급하라”는 말씀은 “나눠 주는 것”을 뜻하며, 그 쓸 것이 필요한 성도들과 교제에 들어가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❶ 그들의 짐이 자기들의 짐인 것처럼 여기라는 것입니다. ❷ 그들이 당하는 그 어려운 고초에 함께 참여하고 실제로 그것을 스스로 느끼라는 것입니다. ❸ 그들이 당한 그 곤란 속에 우리가 참여하여 그들과 동반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② 피는 물보다 진하고 성령은 피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❶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들도 함께 고통을 받습니다.(고전12:26) ❷ 그러므로 고통을 당하는 형제들을 보게 되면 우리도 그 형제와 함께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❸ 우리는 한 몸으로서 연계되어 있어서 기쁨도, 슬픔도, 고통도 다른 지체들과 동일하게 일어나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❹ 우리는 우리의 소유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지만, 궁핍에 처한 형제들이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 가질 권한이 있다고 생각해야 하고 그들이 자신에게 속한 것만큼 그 형제자매에게도 소속되어 있다고 느껴야 합니다.

 

③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❶ 청지기는 달라는 대로 누구에게나 다 주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❷ 청지기는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평가해야 합니다. ❸ 또한 계산하고, 그 일에 돈을 쓸 가치가 있는지를 평가하고 나중에 모두 합산해 보아야 합니다. ❹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다 비워 준다면, 그는 나쁜 청지기입니다. ❺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을 죄 가운데 계속 거하도록 도와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❻ 그리고 정말 바른 사람이 왔을 때에는 그 사람에게 줄 것이 없게 됩니다. ❼ 청지기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임을 알아야 합니다.

 

④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궁핍에 처한 형제들과 동반자가 되고, 교제해야 합니다. ❶ 그리고 난 다음 외인을 사랑해야 합니다. ❷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님께”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❸ 그 일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❹ 우리가 섬기는 분은 바로 주님이십니다.

 


 

7. 악한 대접에 대응하는 법(14~15)

 

하나님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영광은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우리 속에서 보는 바를 통해서 그 영광을 판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칭의, 성화, 영화에 대해서는 학식 있는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유의 삶을 영위한다면 우리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복음에서 돌아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가장 위대한 복락들을 당신의 계명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행복에 관해서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순종의 길을 밟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복락을 향유하도록 유도하는 지름길입니다.

 

① 가장 훌륭한 형태의 복음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일상적인 삶과 직업 생활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수세기에 걸쳐 하나님께서 행하신 방식입니다. 이론적인 기독교는 개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무용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②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형태나 모양으로든지 핍박을 받고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❶ 세상은 참된 그리스도인만을 핍박합니다. ❷ 우리가 어떤 핍박도 받지 않는 교회의 지체일 수도 있지만, 만일 우리가 참으로 그리스도인이요,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서 속에 새로운 성품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그 새로운 성품 때문에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❸ 그처럼 세상은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를 핍박함으로서 우리에게 큰 공헌을 하며 큰 선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❹ 주님께서 받으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절대적인 증거가 됩니다.(요15:18~19) ❺ 그러나 핍박이 항상 같은 식으로 오는 것은 아니며, 매우 교묘한 방식으로 올 수도 있습니다. 

 

③ 그러나 우리는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데, 가장 좋은 최고의 방식은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❶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구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저주하지 않고 그 반대로 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십사고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것은 핍박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❷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와 같이 다루시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고방식입니다. ❸ 죄와 죄인의 차이를 구분 져서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고, 무지한 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사람이 영적인 진리에 대해서 소경이고, 그의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모든 방식들을 대적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❹ 우리의 핍박자는 사단의 노예가 되어서 이와 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합니다.

 

③ 우리는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안 됐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그들의 구원을 소원하게 됩니다. ❶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❷ 그분의 제자들인 우리가 우리의 복되신 선생이신 주님의 높이까지 올라가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8. 같은 마음을 가지라(15~16)

 

우리는 이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는 권면을 대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문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과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 중에, 언뜻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쉬워 보인다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을 점검해 보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① 우는 자들로 함께 우는 것은 다소 자연스러운 것으로서 다른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마음에 같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❶ 아무리 악한 사람일 지라도 어떤 사람이 울고 있는 것을 보면 어떤 모종의 반응을 느낍니다. ❷ 거의 모든 사람들 안에는 우는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 경향을 가진 어떤 것이 있는데, 말하자면 우리도 함께 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❸ 사람이 운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것을 뜻하며, 그 사람이 낙담의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말하며, 이렇게 낮아져 있는 사람에 대하여 동정심을 가지는 편은 훨씬 더 단순합니다.  ❺ 그리고 우리는 더 나은 입장에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② 어떤 사람이 즐거워하고 있을 때, 그 사람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고, 그것은 성공이나 행운을 만나게 되었거나, 어떤 좋은 일로 인해 그 사람이 들 떠 있는 느낌을 가지게 되어 매우 즐거워합니다. ❶ 자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있어 상대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이 있습니다. ❷ 모든 사람에게는 예외 없이 자아, 교만의 문제라는 궁극적인 문제가 있기 마련인데, 기뻐하는 사람 앞에서는 질투와 시기심이 일어납니다. ❸ 그러므로 기뻐하는 자들과 함께 기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❹ 모든 것 중에서 가장 큰 난제는 질투심과 시기심의 문제입니다. ❺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이 도달 할 수 있는 최고의 덕은 시기심을 배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❻ 그런데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이 즐거워할 때 적극적으로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말합니다.❼ 이웃이 즐거워하는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간에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③ 몸은 하나이며, 유기체이기 때문에 몸의 한 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이든지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9. 참된 지혜를 구하라(16)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언제나 스스로 생각하고 항상 자신에게 말합니다. 지식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지혜를 뽐내고 자랑하며 스스로 지혜롭게 여깁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사도의 권면을 지키지 못한 결과로 교회 안에서 그런 일들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생의 자랑이며, 세상정신, 세상적으로 생각하는 육체의 자랑으로서 모든 죄 가운데 가장 큰 지적인 교만의 죄입니다. 그 죄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가장 큰 은사를 남용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지적인 교만의 죄는 마귀가 저지른 죄인데,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이지와 총명에 의해서 자기의 이지가 높다는 생각으로 교만하게 되고, 자기의 지혜를 하나님의 지혜보다 더 높게 여기게 됨으로서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① 이 지적인 교만은 두 가지 형태를 취할 수 있는데, 그 중에 한 가지 형태는 지식이며 또 다른 형태는 지혜입니다. ❶ 지혜와 지식은 매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둘이 같지는 않습니다. ❷ 지식은 정보, 어떤 사물에 대한 것을 아는 것, 어떤 사물을 발견하는 것, 어떤 유의 사실들을 작고 크든 간에 모아 확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❸ 지혜는 지식을 사용하고 적용하는 능력과 수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❹ 거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지혜가 없어 선하고 가치 있는 목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추진해 나가는 능력이나 수완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❺ 반면 지혜는 있는데, 지식이 없으므로 바른 길로 가지 못하고, 허황되고 잘못된 것에 속아, 그 길로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② 사도는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말합니다. ❶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다고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정당하지 못한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❷ 사람의 지혜는 한계가 있어서, 최고의 지점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지혜의 끝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❸ 그러므로 위대한 학자는 겸비하다는 것을 항상 발견하게 됩니다. ❹ 설 아는 것이야 말로 위험천만한 일인데, 설 아는 것이 머리를 쳐들고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❺ 사람들이 알면 알수록 자기들이 모르는 것을 더 인식하게 됨으로, 학자가 위대해지면 위대해질수록 그 사람이 거의 필연적으로 더 겸손해 지는 것입니다.

 

③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든지, 또는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그 지식과 지혜를 우리 스스로 산출한 것이 아니니 뽐낼 것이 전혀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많은 사실들을 습득할 수 있는 일종의 지성을 갖추고 있어서 무엇이든지 금방 배우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산출한 것은 우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④ 지식은 교만하게 합니다. ❶ 교만은 마음을 부풀립니다. ❷ 마음을 부풀게 만드는 것은 바람과 같아서, 견고하거나 진정한 것이 아닙니다. ❸ 그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❹ 사랑이 덕을 세우지만 지식은 더 교만하게 만듭니다. ❺ 그것이 대단해 보일 수도 있으나 허풍선에 불과합니다.

 

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부풀어 오르거나 거만하게 들뜨지 않으며, 무례한 방식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혜를 자랑하고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균형을 잃게 만들어 무례한 일들을 행합니다. ❶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나 자기의 지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고 칭찬 받기를 구하며 갈채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❷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아니하지만 거짓된 지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매우 쉽게 성냅니다. ❸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고,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게 됩니다.

 

⑥ 우리는 위대한 사도의 이 권계를 지켜야 할 이유를 다른 성경에서 찾아보면 잠16:18; 고전10:12; 갈6:3; 약3:1; 마7:1~2; 11:29; 12:20; 요12:49~50등에서도 말씀하시고 계시는데, 그 외에 여러 곳에서 더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⑦ 자기의 지혜를 자랑하지 않도록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는 길은 참된 지혜와 거짓된 지혜 사이의 차이를 배우서, 거짓된 것은 물리치고, 참된 것은 추구해야 합니다. ❶ 참된 지혜는 위, 곧 하나님께로부터 오며, 거짓된 지혜는 세상으로부터 옵니다. ❷ 아래로부터 난 지혜는 세상적이며, 영리하지만 인간 이상을 올라가지는 못합니다. 그 지혜는 정욕적인 동물적 본성의 한 부분입니다. ❸ 더 나아가 이 지혜는 마귀 적이라고 야고보는 말하고 있습니다. ❹ 이 지혜는 악한 영들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고, 악한 영들은 매우 영리합니다. 심지어 광명의 천사로 과장할 수도 있습니다. ❺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자기 지혜로 교만하게 되면 세상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참된 지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옴으로서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⑧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지혜로 오직 지혜로우신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기 때문에 여러 특성들을 나타냅니다. ❶ 그 지혜는 순결합니다. ❷ 그리고 항상 화평합니다. ❸ 그 지혜가 항상 온유함과 겸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❹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양순한 사람입니다. ❺ 그 지혜는 자신을 제어하고 생각을 통제하고 자신들에 관한 다른 모든 것을 조정합니다. ❻ 그들은 사랑스럽고 화평을 만듭니다. ❼ 지혜는 이론적이지 않고 항상 실천과 행실과 일상 삶을 통해서 그것을 드러냅니다.

 


 

10. 할 수 있으면 모든 이들과 화평 하라(17~18)

 

우리는 실천 생활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우리를 해롭게 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축복해야 한다고 하며,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합니다. 또한 교회의 지체들은 항상 마음과 사고방식에서 하나를 이루는 특성을 견고하게 세워야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매우 실천적인 차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참된 지혜를 가진 자들은 항상 화평케 하는 자들이며, 이 화평케 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위로부터 난 생명을 가지고 처신합니다.

 

①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라는 말씀은 부정적인 국면에서 말하고 있는데, 우리가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자에게 본성적인 본능대로 스스로 되받아 치거나 스스로 복수하지 않아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❶ “도모하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앙갚음을 하는 것은 나쁜 것이니 우리는 선한 것들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❷ 여기서 말하는 “선”의 개념은 고유하게 선한  것을 묘사하는데, 내면적이고 고유한 본래적 선함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❸ 그러므로 앙갚음을 하거나 보복을 하는 대신 모든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분명히 선한 것들을 생각해 내고, 공급하고, 산출하고, 그 증거가 있게 하라는 말입니다. ❹ 이것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 대하여 처신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② 어떤 사람이 나에게 악을 행하면 그것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내 삶 전체의 맥락 속에 놓아야 합니다. ❶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지고 보아서는 안 되고, 흐름을 통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❷ 자신의 본능이나 느낌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의 평판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❸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예가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명예가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❹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이제 속하게 된 그 하늘의 가문의 평판이 걸린 문제이므로 독단적으로 홀로 떨어진 사람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③ 어떤 사람이 우리를 향해서 악한 방식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세상의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로부터 알게 해야 합니다. [예 : 스데반의 순교 장면(행6:15)]

 

④ “할 수 있거든” 이라는 ❶ 이 말씀에는 할 수 없는 상황들도 있다는 것을 내포 하고 있습니다. ❷ “너희로서는” 이라는 말씀은 너희가 결코 고통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너희 때문에 투쟁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너희 됨됨이와 너희가 행하는 일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❸ 그러므로 이 문제는 오직 문제가 네 자신, 즉 너희에게 통제 권한이 주어져 있다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❹ 어떤 댓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 화평의 조건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❺ 그러나 두려움에 빠져 화평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면 진리를 어그러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⑤ 우리는 화평을 위해서라 할지라도 진리의 문제에 대해서 타협해서는 안 되며, 진리를 말하는 일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되고, 어떤 댓가를 치르더라도 진리는 선포되어져야 합니다. ❶ 진리가 선포될 때에 교회의 어떤 지체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자신도 고통에 빠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거침이 될 만한 메시지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진리이라면 선포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❷ 우리는 다른 모든 문제들에 있어서는 인내하고, 할 수만 있으면 도움을 주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고집을 부리거나 양보를 하지 않는 자세를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❸ 우리가 진리를 역설하고 선포하는 방식은 오직 사랑 안에서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오직 진리 자체로 말미암아 되어져야지 전파하는 사람의 어떠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게 하여서는 안 됩니다. ❹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적인 이슈로 삼아서는 안 되고 우리 자신을 위해서 싸우거나 우리 자신의 관점 또는 자신의 평판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❺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속에서 심판, 또는 중재자처럼 활동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한 어떤 행동을 결정할 권한을 스스로 가지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평강이 그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❻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든지, 고통을 당하든지,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말하든지 오직 한 가지 관심만 가져야 하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 평강이 존재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의 은택을 충만하게 누리기를 원해야 하며,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일에 있어서 심판이 되게 해야 합니다.

 


 

11.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라(19~20)

 

성경에서 부단히 만나게 될 놀라운 원리들은 언제나 우리가 처해 있는 위치로부터 시작하여 점차 우리의 수준을 높여 갑니다. 또한 소극적인 데서부터 시작하여 적극적인 부분으로 점진적으로 넘어갑니다.

 

① 만일 우리가 복수심에 빠져 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어떠한 일을 한다 할지라도 자기 자신을 매우 비참하게 만들 것입니다. ❶ 싸우는 교회, 분쟁하는 교회보다 더 나쁜 것은 없습니다. ❷ 그것은 역사에서 너무나 확증 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② “선한 것을 도모하라.”는 표현의 의미는 즉각적으로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③ “진노하심에 맡기라.”는 적극적인 진술을 대면하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 자신이 분노하지 말고 오히려 전체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자리를 내주고 진노하심에 활동할 자유로운 범위를 내주고, 또 그 하나님의 진노하심 위에 허용하고, 그것을 위한 길을 예비하고, 그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그것을 맡기라는 뜻입니다.

 

④ “갚으리라.”는 다음의 말이 단순합니다. 그 말은 “돌려주다” 또는 “도로 주다” 또는 “되갚다”는 뜻입니다. 복수는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며 그것은 하나님의 특권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일이 아닙니다. ❶ 그 이유는 우리 모두가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❷ 우리 모두 죄로 말미암아 불의하기 때문입니다. ❸ 우리의 판단은 부정확하며, 그러한 일을 하기에 우리는 적합하지 못합니다. ❹ 우리는 자신이나 자신의 입장이나 자신의 조건에 대해서 매우 그릇된 판단을 하는 재판장들입니다. ❺ 또 우리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매우 그릇된 판단을 합니다. ❻ 죄의 결과로 우리는 다 자기 중심적이고, 언제나 자기 방어적이라서 우리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❼ 우리는 전체 입장을 보지 못하여 참된 판단에 이를 수가 없는 편협 된 재판장들이기 때문입니다.

 

⑤ 원수를 갚는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❶ 우리는 개인적인 복수를 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❷ 우리는 그 원수가 개인적으로 해를 당하기를 간절히 소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❸ 마음으로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❹ 하나님께서 왕 노릇하심이 입증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기를 바라는 것이 옳으며, 그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온 땅에 나타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야 합니다.

 

⑥ 저주의 시편들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앙갚음을 소원하여 쓰여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입장과 영예와 영광의 차원에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것을 볼 때 그 시편 기자들은 슬펐던 것이며, 그들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며, 거만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을 향한 열심에 의해서 주님의 이름을 위한 열심히 쓴 것입니다. 시편기자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공의의 입장에서 쓴 것입니다.

 

⑦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노하심과 하나님의 보수하심에 대한 위대한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원수들과 하나님의 복음을 배척한 사람들, 그 신적인 음성을 멸시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의 독생자 안에서 제공하신 사랑의 위대한 선물을 거절한 사람들에게 진노하시고 보응하십니다.

 


 

12. 악에게 지지 말라(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우리가 원수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원수에게 적극적으로 좋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질적인 기독교입니다.

 

①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말씀은 잠언 25:22의 하반 절에서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고 결말짓고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실제로 머리에 핀 숯을 놓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며, 또는 그것이 하늘로부터 벼락을 내리게 하는 것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육체적인 고통이 아니라 수치감과 양심의 가책과 고통을 느끼게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② 여기서 사도는 사람들에게 지지 말라고 하지 않고, “악에게 지지 말고”라고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게 한 배후에 무엇이 있는 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❶ 만일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일로 혈기를 부리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가 아니라 마귀에게 진 것이 됩니다. ❷ 또한 우리가 분내고 성내고 열을 내는 것은 이미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❸ 우리가 자제력을 잃고 그릇된 것을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그 그릇된 것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면, 마귀는 이미 이긴 셈이고 우리는 진 것입니다. ❹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으로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해야 합니다.(골3:15) 결코 그 평강을 상실하지 말아야 합니다.

 

③ 우리가 승리를 얻을 때마다 그것이 복음을 드러내며, 다른 사람들을 얻는데 도움을 주고, 다른 사람들을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는데 도움을 줍니다.

 

④ 우리가 큰 전쟁에 가담한 한 병사임을 스스로 상기시키고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으며, 전사들과 권세자들을 대항하여 씨름하고 있다면, 그것은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한 일이며, 그 나라를 위해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그 싸움을 싸울 때에 육신적이고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전투 방식을 포기하고, 오직 신령한 방식으로서만 이 전투에 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