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2:3-6 ,역동적행함

호리홀리 2015. 1. 26. 17:36

롬12:3-6

 


 

12장 3~6절 :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1.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들(3~5)

 

여기서 사도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서 은사를 행사하는 남녀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어떤 방면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함께 모이는 사람들이며, 바로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들이 함께 모이는 것은 그들이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에서 사도는 교회의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은사의 표준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① 진리는 하나입니다. 교회가 고린도에 있든지, 로마에 있든지, 기독교는 하나이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났기 때문에, 그들의 민족성이나 그들의 배경이나 그들의 문화가 어떠하다 할지라도 같은 종류의 난제가 항상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② 은사들이 항상 다툼을 일으키고 분쟁을 가져오고 있음은 자기주장이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도용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❶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들이 교회의 유익을 망가지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처럼 우리의 본질적 죄악성을 입증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❷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자기주장을 해서는 안 될 것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교회를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을 알게 됩니다. ❸ 은사를 받은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는 겸손으로 그 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❹ 은사가 자신의 능력이나, 자신의 어떤 자격을 나타내 주는 것이 아님을 항상 명심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에 그 부작용은 교회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것은 물론 자신 또한 큰 징계가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③ 세상의 철학은 자기 자신을 믿고 신뢰하라고 하지만, 복음은 언제나 겸손하라고 요구하며, 심지어 자기희생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❶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을 끼치기 보다는 해로움을 더 끼칠 수가 있습니다. ❷ 어떠한 지식도, 능력도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❸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두 은혜와 믿음에 속해 있습니다. ❹ 그것은 그들이 결코 자랑하지 못하기 함이니(엡2:8~9), 우리는 우리의 어떠함을 결코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④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로서 존재합니다. ❶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❷ 그리고 맡은 자리에서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기의 역량을 다하여 몸을 조화롭게 해야 합니다. ❸ 교회의 지체는 따로 떨어져 나와서 독립된 하나의 개체를 허용하지 않으며, 교회를 떠나서는 생명이 없고, 교회를 떠나서 행하는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⑤ 첫 번째 원리로서 모든 것이 은혜에 속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믿음의 분량”이란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믿음의 분량”대로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는 것인데, 그것은 ❶ 우리를 그리스도인의 삶에 들어오도록 인도한 믿음이 아닙니다. ❷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는 믿음은 모든 사람 안에서 동일하지만 본문의 “믿음의 분량”은 그것과 어떤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❸ 그것은 고전 12:9에서 “믿음의 은사”와도 구별이 되는데, 은사로 주어진 믿음은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인 반면, “믿음의 분량”은 모든 개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❹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씀은 우리 각자의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어떤 특별한 은사가 주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❺ 성령님께서는 그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각 사람에게 은사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⑦ 은사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니 우리가 결코 자랑할 것이 전혀 아닙니다. ❶ 우리는 어떤 은사들의 중요성을 과대평가 하지 말아야 합니다. ❷ 그러나 은사를 작다고 하여 결코 낮게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❸ 과대평가하여 거만해지는 것과 낮게 과소평가하여 무시하는 것 모두가 동등하게 나쁩니다. ❹ 크고 작은 은사들이 모두 교회 안에서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❺ 은사가 교회 안에 있다는 그 자체가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며, 그 가운데 우리가 어떤 은사든지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놀라운 특권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❻ 진정으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눈 속에서 바라보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여기에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❼ 그리고 하나님께서 은사를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나누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⑧ 두 번째 원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❶ 몸은 유기적인 연합체로서 하나입니다. 그것이 하나가 되게 한 것은 성령님입니다. ❷ 그 몸은 여러 가지 기능과 능력과 기질로 다양성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❸ 그러므로 다른 지체들은 다른 역할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❹ 우리는 모두 같은 일을 하지 않고 기능에 따라 자기의 고유 영역에서 각기 다른 일들을 해 나갑니다. ❺ 그러나 몸의 어떤 기능들도 각기 독립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❻ 각 지체는 항상 몸의 전체로서 작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❼ 각 지체, 개개 지체의 역할, 그 몸의 각 개개 부분이 항상 머리의 뜻과 조정에 복종하고 굴복해야 합니다. ❽ 한 지체의 실패는 전체 몸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몸의 육체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❾ 결과적으로 몸의 어떤 한 지체이든지 고통을 받게 되면 전체 몸이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교회의 지체 의식(4~5)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었는데, 교회는 인간적인 제도가 아니라, 신령한 사회, 초자연적인 사회, 즉 영적인 단체를 말합니다.

 

① 그리스도 교회의 지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생명 있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로서,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❶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 거하시고 그의 생명과 충만이 교회 안에 있으며, 교회 안에서 교회로 말미암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❷ 교회는 여러 부분과 많은 기능들이 있지만 몸은 하나밖에 없는데, 한 머리에 한 몸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❸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될 때에 교회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 한 몸을 이루게 되는데, 그것은 새로운 탄생으로서 시작되며, 새 생명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일을 성령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② 이렇게 유기적인 하나의 몸을 이룬 교회의 제일 되는 임무는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알리는 것입니다. 만일 선구자들이 이 좋은 소식의 전령자들이라면 교회 전체도 그러한 것입니다. ❶ 그러나 교회를 통해서 교회로 말미암아 우리가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❷ 우리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활동에 대하여는 교회가 하지만 우리를 낳는 것은 교회의 행동 자체가 아닙니다. ❸ 그 일은 하나님의 결정 방식에 따라서 된 것입니다.

 

③ 몸의 특성은 여러 기관들과 부분들이 항상 일하고 있으며 전체 몸으로 하여금 그 기능들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❶ 모든 것은 머리의 통제를 받아 머리로부터 출발하게 되므로 교회의 활동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속합니다. ❷ 참된 부흥은 조직이나 활동들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성령의 작용, 교회 전체의 생명 있는 활동에 의해서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그 마음이 충격을 받고 뒤집어지는 일들로 인하여 이루어집니다.

 

④ 자기의 영적 생명에 대하여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도 가지지 않고 행동하는 행위나, 또 자기의 영적 생명에 대해서 과도하게 염려함으로 그것에 너무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다른 것을 위해서는 시간을 전혀 쓰지 못하는 두 극단은 영적인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❶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항상 준비되어 있는지 영적으로 점검하고, 영적으로 바른 위치에 있는지를 늘 살펴서 즉각 순종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❷ 우리가 주님께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즉각 반응하고 그렇게 민감한 모습을 보이기를 원한다면, 머리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내려오는 살아 있는 활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⑤ 교회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데, 자기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와 살아 있는 관계를 가지고 있는 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교회 활동은 그 머리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❶ 교회의 생명과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 가장 영광스러운 일들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는 숫자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에 의존한다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 ❷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부분의 일보다 전체를 더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❸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에 만족해야 합니다. ❹ 몸 안에서 우리가 활동하는 것을 만족해야 합니다. ❺ 몸이 우리에게 어떤 기회를 주든지 그것에 만족해야 합니다. ❻그리고 각 부분이 머리뿐만 아니라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어야합니다. ❼ 그리고 전체의 조화로운 작용 가운데서, 자신의 부분에 만족해야 합니다. ❽ 자신이 처음부터 자기의 몫을 결정하지 않으며,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습니다. ❾ 사실 자신이 몸 안에 있는 것도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영적 은사들의 본질(6)

 

우리는 세상적인 삶의 방식인 자아를 중심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 자신과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관계에 비추어서 생각해야 합니다.

 

①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람들로서 이 눈에 보이는 교회 형태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성공을 보기 위해서 불타는 열심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우리는 그 성공을 위한 매우 간절한 염려를 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진작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고, 섬기되 자신을 드려 섬기고 자신이 그 일을 유익하게 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저 은혜만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기도하지 않거나, 교회의 생활과 교회의 기능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잘못입니다.

 

② 은사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유익하게 하는데, 사도는 사랑을 따라 구하되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합니다.(고전14:1) ❶ 은사들은 다른 어떤 의미에서 더 낫고 못한 것이 없는데, 전체의 문제를 개인적인 즐거움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교회의 유익과 교회를 세우는 차원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 은사를 저 은사보다 더 낫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❷ 더 좋은 은사를 사모하는 가장 좋은 방식은 “사랑을 따라”구하는 것입니다. ❸ 그러나 더 좋은 은사들을 간절히 사모하면서도 언제나 자기에게 주어지는 은사로 만족해야 합니다.

 

모든 은사는 주님의 영광과 그의 찬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은사에 만족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은사만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주어지는 모든 은사는 한 가지만일 수 없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사람의 권한이 아니라 성령의 특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 속에서 그러한 은사를 산출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가장 최선의 일은 “사모하고 간절하게 탐하는 것 뿐”이며, 그 이상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③ 예언은 하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그것이 바로 예언의 기능과 임무입니다. ❶ 예언은 자신이 받은 것 이상을 넘어가지 말아야 하며, 뒤로 감추어 있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❷ 그리고 자신의 믿음의 차원에서 옳다고 여기는 것으로 자신을 통제하고 조정해야 합니다. ❸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❹ 예언적 발언은 자신이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차서대로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