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8:24-27 ,궁극적승리

호리홀리 2015. 1. 26. 14:36

롬8:24-27

 


 

1. 구원의 과거, 현재, 미래(24,25)

 

우리는 모두 고통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들 때문에 실제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마음속에서 상심을 하고 있고,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째서 그런 일을 허락하시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발견하는 오직 유일한 길은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가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인이 이 시간 세계, 그리고 죄와 수치로 가득한 세계에서 살고 있는 동안 속으로 탄식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①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이 말씀은 소망으로 인하여서 구원을 받았다고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 안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②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라는 말씀에서 소망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❶ 그것은 믿음이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고 있는 것들을 우리가 신뢰할 근거와 이유들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❷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단번에 영원토록 어떠한 일을 이미 행하셨다는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또한 그가 아직도 더 많은 것을 행하실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❸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우리의 구원의 실상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❹ 믿음은 소망을 유발시킵니다. ❺ 소망은 무엇인가를 열심히 고대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❻ 믿음은 우리에게 있는 일들에 관하여 확신을 주고,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기다리면서 고대하고 서 있게 합니다. ❼ 소망은 믿음보다 더 강한 것이고 우리로 하여금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❽ 소망은 내내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참 기독교의 척도입니다.

 

③ 우리는 소망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은 우리를 바라는 것들, 즉 소망하는 것들의 영역 속으로 인도하여 줍니다.

 

④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입장이며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다른 말로 해서 소망의 재료가 되는 그것을 진정으로 “볼 수 있다”든지 “충분하게 받았다”는 생각을 제외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❶ 소망이 어떤 약속의 차원 속에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그것이 오기까지 기다릴 준비를 합니다.[예 : 휴일이나 휴가, 유언에 의해 상속될 어떠한 것] ❷ 우리가 그것을 즉각적으로 누릴 수는 없지만 그 소유권이 인정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❸ 우리에게 어떤 날이 오기까지 그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 자신과 그 사실 사이를 화목 시켜야 되며, 그것이 오기까지 참음으로 살아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⑥ 그리스도인은 현재의 상황을 제거하는데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하며,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덧입고자”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영광을 향하여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몸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주와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⑦ 그리스도인은 소망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만일 소망을 가지지 않았다면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소망을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연단을 이루게 되고 연단은 더 나아가서 다시 소망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인내는 소망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⑧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참아내는 것이며, 그들 앞에 있는 문제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견고하여 두려워 아니할 것인데, 그것은 소망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2. 성령의 더 많은 역사(26,27)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소망을 방편으로 해서 시련과 환난들을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왔습니다. ❶ 이제는 본문에서 소망이 우리를 도와서 그 시련을 대처하도록 할 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역시 우리를 돕고 우리를 이끌어 주어서 특별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고 주장합니다. ❷ 이 인생의 순례 길에서, 믿음의 싸움에서, 환난과 절망 가운데서 또한 여러 가지 묘사할 수 있는 면들 가운데서 우리는 기도할 충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❸ 성령은 우리에게 부가적은 도움을 주고 계시는데, 우리가 단순히 “소망”과 확신으로 인도하는 믿음만 가지는 것을 원치 않고, 기도의 생활과 관련하여 성령의 역사로 제공되는 이보다 더 많은 도움을 가져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① 8장의 전체 목적은 우리의 최종적인 영화가 우리의 최종적인 영화가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보증되었음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❶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 순간 하나님의 성령이 그 안에 들어와 계시며, 그 성령께서 이 거룩케 하시는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❷ 성령께서는 마음을 조명하시고 또 인도하사 우리에게 율법을 즐거워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최종적인 영화를 예비케 하십니다. ❸ 그것이 절대적으로 보증되어 있습니다.

 

②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양자의 영”을 주십니다.(14) ❶ 그러나 그보다 더 나아가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십니다. ❷ 이것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차원적인 확신의 형태입니다. ❸ 이런 모든 방식으로써 성령께서는 우리의 궁극적인 영화에 대한 보증이 되신 것입니다. ❹ 우리에게 이 세상에 사는 날 동안에도 그것에 대한 확신을 주시는 것입니다.

 

③ 우리가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어떻게 하면 늘 가까이서 접촉하는 방식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방식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우리에게 기도보다 더 위안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기도가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④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돕습니다. ❶ 연약함은 일차적으로 힘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❷ 그런데 연약함과 죄악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❸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유도할 수 있습니다. ❹ 연약함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그 연약함을 아담의 원죄로 주어진 것입니다. ❺ 아담의 타락한 이래 세상의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연약에 싸여” 있습니다. ❻ 그것은 타락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는 여러 가지 제한들 중의 하나입니다. ❼ 연약함 들은 몸에서 야기될 수도 있는데, 약함과 피곤함과 질병과 아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❽ 연약함은 우리의 몸의 다양한 조건들과 기능에 영향을 주는 것인데, 다른 말로 해서 여러 시련들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⑤ 연약함은 우리가 합당히 기도해야 할 바를 정확히 알지 못하여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게 합니다. ❶ 그것은 우리에게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우리가 잘못된 것을 위해서 기도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❷ 신명기 3장 23~26절에 있는 말씀 속에서 나타나듯이 하나님께서 모세로 침묵하게 하시고 그러한 간구를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하신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❸ 하나님께 허락되지 않는 잘못된 기도는 고린도 후서 12장 1~10절의 말씀 속에서도 나타납니다. ❹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될지, 어떻게 기도해야 될지를 모를 때에 그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여 주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다고 하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❺ 또한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순종적인 기도를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❻ 우리는 믿음에 충만한 확신과 소망의 온전한 확신과 거룩한 담대함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로 나갈 수 있습니다. ❼그러나 문제는 어떻게 정확히 간구하고 어떠한 축복을 구하느냐하는 것입니다. ❽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이것저것을 구하지만 하나님은 다시는 그런 일로 내게 고하지 말라고 하시며 네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❾ 우리는 그러한 어려움과 당황함에 대한 어떠한 체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하여 영광스러운 해답으로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그 말씀입니다.

 


 

3. 성령의 탄식하는 중보기도

 

우리는 기도에 관련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존전에 생각 없이 마구 뛰어 나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연약함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❶ 연약함이란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❷ 그것은 우리의 죄성과 죄악적인 조건에서 결과하는 것입니다. ❸그래서 우리는 어떤 주어진 순간에 어떻게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죄를 저질렀다고 느껴서는 안 됩니다.  ❹ 우리가 이 연약함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그 연약함은 우리가 결국 하나님의 자녀이며, 우리의 궁극적인 구원이 확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더욱더 증거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①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서 특별한 일을 하십니다. ❶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가 할 모든 일을 대신하여 짐을 다 져주시지 않고 돕는다고 하는 점인데, 그 말씀은 보조적인 역할로서 우리의 짐을 들어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❷ 그 방편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❸ 그것은 가령 우리가 매를 맞고 있는 자리에 있다고 할 때에 그 매를 대신하여 맞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매질을 하고 있는 그 상전에게 무진 애를 쓰며, 탄원함을 통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 친히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②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라는 말씀은 우리가 가진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도는 우리가 그러한 당혹함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를 표현해 낼 수 없고 우리의 원하는 것을 나타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❶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 “말 할 수 없는 탄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❷ 이것은 주님의 탄식이 아닙니다. ❸ 성령께서는 지식이 부족한 일이 없으므로 탄식 하지 않으시며, 탄식할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❹ 탄식은 우리 속에 있으며, 이 말로 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탄식하는 것은 우리인데,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으로 인한 것입니다. ❺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여 탄식하는 것을 위하여 친히 성령께서 간구하여 주시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바울 사도가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는 말을 할 때에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알아보면, 우리가 연약함으로 마땅히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여 기도하기를 두려워하거나, 잘못된 기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당황해 할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의 대변자로서 오셔서 대신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서 간구들을 형성시켜 주시고,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기도를 알지 못할 때에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④ 이 탄식은 우리의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완벽한 구원에 대한 절대적인 증거일 뿐 아니라 하나의 보증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자녀들 속에서만 이러한 역사를 행하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으로 탄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뿐이라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4. 기도의 비밀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을 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지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는 우리가 그에게 구하기 전에 우리가 어떤 필요에서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를 알고 계시지만, 그래도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기도해야 합니다.(빌2:13) ❶ 우리가 기도와 그 의미를 이해하든지 못하든지 기도하라는 분명한 명령이 있기 때문에 기도는 우리의 임무입니다. ❷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정하실 뿐만 아니라 목적에 이르는 수단들도 정하시며, 궁극적인 결과에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가 어떻게 산출되어 나올까에 대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❸ 그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뜻의 일부로서 많은 열매들이 이차적인 요인들을 통해서 산출되도록 놀랍게 질서 지워 놓으셨습니다. ❹ 기도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궁극적인 영광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시고 결정하신 방편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그 목적에 인도하실 수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것을 이런 식으로 하기로 결정하셨던 것입니다. ❻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신 우리 복되신 주님께서도 지상에 계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느라고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❼ 그것이 우리의 구원의 주로서 완벽하게 되는 하나의 일부였다면, 우리의 경우에는 얼마나 더욱 더 그것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합니다.

 

① 기도는 대주제요 천지와 만물들을 다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라도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고 그를 존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스스로 상기하며 모든 영광과 찬미를 다 그에게 드려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가르침입니다.

 

② 그 간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③ 하나님의 약속을 하나님 앞에 제시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을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아뢰어야 합니다. 성경을 인용하고 하나님의 약속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④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❶ 우리의 최고의 바람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❷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행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지든지, 우리의 다른 경로나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경로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❸ 그런 다음에 우리의 간구 내용들을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⑤ 우리는 하나님께 어떤 것을 주장한다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것을 요청해서는 안 됩니다. ❶ 또한 하나님께 어떠한 것을 요청하거나 명령조로 요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❷ 하나님이 누구시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❸ 심지어 우리가 매우 사랑하는 어떤 사람의 구원에 대해서도 마구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❹ 그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지만 자기의 요구나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죄인의 탄식을 좋아하십니다.(세리의 기도)

 

절대적인 확신은 성령님에 의해서 주어집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어떤 기도를 넣으시고 우리 생각에 어떤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기도를 주시고 그것을 주시면서 그것이 응답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