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7:5-6 ,위대한 전환

호리홀리 2015. 1. 26. 13:58

롬7:5-6

 


 

7장 5~6절 :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6-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1. 정욕과 탐심(5~6)

 

이 두 구절은 한 진술을 이루며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5절은 그 진술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6절은 긍정적인 면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① “육신” 안에 있었다고 말하는 바울의 의도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❶ 여기서 바울은 인류 전체를 관찰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말로 생각해야 합니다. ❷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육체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몸을 의미할 수는 없습니다. ❸ 그래서 이 말은 영 안에 있는 생명의 반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❹ 우리의 현재 상태는 영 안에 있습니다. ❺ 롬8:4 이후에서 이점에 관하여 다시 대하게 될 것인데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❻ 다시 8절에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러므로 “육신 안에”의 분명한 의미는 “영 안에”있는 것의 반대입니다. ❼ 요3:6절의 우리 주님과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발견됩니다. ❽ 본문의 육신 안에 라는 말의 주요한 의미는 바로 육신 안에 있는 것과 영 안에 있는 것을 대조시킬 뿐만 아니라, 영 안에 있는 것과 율법 안에 있는 것을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② 모든 인류는 두 조건 중 하나에 속해 있는데 그들이 육신 안에 아니면 율법 아래 있든지, 성령 안에 아니면 은혜 아래 있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③ 여기서 말하는 육체라는 말에는 특별한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❶ 악한 죄의 원리에 지배를 받음과 동시에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❷ 죄의 정욕이라는 말인데, 우리가 육신 안에 있을 때에 이 정욕과 탐욕과 죄에 대한 애정이 우리 속에 있었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❸ 그것들은 우리가 나면서부터 우리 모든 사람 각자 속에 있습니다. ❹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분별해야 할 것은 몸의 욕구들을 필연적인 죄악으로 보는 거짓된 금욕주의입니다. ❺ 자연적인 욕구들 그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욕구들을 주신 것은 세상을 사람들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번식의 목적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❻ 또한 다른 모든 본능들, 즉 먹고 싶은 욕망이나 사회성 같은 본능들은 인간의 복락과 이 세상에서의 삶을 향유케 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❼ 바울이 죄의 정욕이라고 하는 말은 근본적으로는 선하지만 타락으로 인하여 죄의 결과로 악의 통로가 되는 자연적인 욕구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❽ 하나님께서 자연적인 욕구들을 가진 인간을 만드셨는데, 타락하기 전에는 인간이 그 욕구들을 통제하여 균형이 있었지만, 죄를 짓는 순간 그 균형은 깨어지고 자기의 욕구를 통제하는 대신 오히려 욕구들이 인간을 조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❾ 이러한 욕구들은 이지와 이해와 의의 관점에 의해서 지배되고 통제되는 동안이나 하나님의 관계에 의해서 조정되는 동안은 결코 선하고 바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 순서를 바꾸고 이러한 충동과 정욕과 탐욕에 지배를 받게 될 때 인간은 죄의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는 육신 안에 있는 것입니다.

 


 

2. 구원의 목표(6)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이제는”이라는 말을 대하게 됩니다. 그 말은 우리가 처해있던 참담한 현실을 단번에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반전시켜줌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기쁨으로 감사하며 찬양하는 조건으로 인도해 줍니다.

 

① 우리는 이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❶ 그것은 얽매었던 것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는 의미와 동일합니다. ❷우리는 그것에 의하여 얽매어 있었고 그것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었는데,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것에 의해 얽매여 있었습니다. ❸ 그는 율법에 의하여 붙잡힘을 당하고 있으며 지배받고 있으며, 율법과 결혼 관계에 있었습니다. ❹ 율법은 그를 통제하고, 그의 행동 전체를 주관해 왔습니다. ❺ 그러나 더 이상은 우리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데, 그것은 우리가 구원 받았고 전에 이 지배와 이 폭군적 권세를 가지고 우리에게 영향을 끼쳤던 율법으로부터 죽었기 때문입니다.

 

② 이제는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게 된 그것이 바울에게는 그처럼 행복한 일이라서 즐거워하며, “이제는”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③ 그러나 바울은 더욱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그 섬김의 대상과 목적과 목표입니다. 구원의 위대하고 장엄한 목적은 우리가 거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참조 : 엡1:4; 살전4:3]

 

④ 구원은 죄로부터 거룩함에로의 옮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의 전체 요지는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모든 것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그 앞에 거룩하고 책망할 것이 없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⑤ 이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기 위함이라고 말하는 그 의미는 “노예로 산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부르기를 즐겼습니다. 그의 섬김은 완전히 자원하는 섬김으로서 섬김의 대상에게 노예가 되는 것보다 더 훌륭한 방법은 없습니다.

 

⑥ 그런데 이 섬김은 의문의 묵은 것, 즉 옛 것으로 할 수가 없습니다. ❶ 그것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❷ 아니 옛 성품을 가지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조차 없습니다. ❸ 영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❹ 의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⑦ 영의 새로운 것은 성령 안에서 영위하는 삶입니다. ❶ 이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❷ 그리스도인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인데 그러한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연합되고 그와 결혼한 결과로 인해서 우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 때문입니다. ❸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성령 안에 있는 생명입니다.

 


 

3.새 생명과 옛 생명의 대조 (6)

 

 

새 생명은 성령 안에서 삶을 영위하게 되고, 옛 생명은 율법 아래서 육체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그들의 삶의 방식은 차이가 있습니다.

 

① 첫 번째 차이 : 옛 율법은 사람의 밖에 있었으며, 육안으로 볼 수 있도록 돌에다 쓴 것인데, 이제는 성령으로 쓸 것이며,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심비에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에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우리 밖에 있는 어떤 표준과 본에 일치하려고 노력하였었으나 이제 그리스도인에게 그 표준은 밖에 있는 것은 물론 우리 안에도 있어서, 말씀 속에서 그 표준을 읽게 된 것입니다.

 

② 두 번째 차이 : 성령 안에 있는 새 생명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이제 전에 가지지 못했던 이해를 가졌습니다. ❶ 율법과 그 목적에 대한 것과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율법에 해당되는 모든 것에 대한 이해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❷ 옛 시대 아래 있는 사람들은 수건이 그 마음에 덥혔다고(고후3:3)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매주 율법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율법을 연구하여 강론하고 주해하느라고 그들의 생애 전체를 바친다고 해도 율법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여 유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❸ 그러나 사람이 주께로 돌아오는 순간에, 수건은 벗겨지고 그는 보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의 전체 입장에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③ 세 번째 차이 : 사람이 단순히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과 율법의 정신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중대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❶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은 모두 율법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거기에 내포된 정신이라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❷ 예를 들어서 율법의 “탐내지 말라”는 말씀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으로 어떤 일들을 삼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상상으로, 마음으로 생각으로 하고 싶어 하고 있는 그 자체가 탐욕이며, 그것이 계명을 어기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❸ 그러나 성령의 권속에 들어오는 순간 즉시 그것을 알게 되고, 그의 모든 전에 행하던 도덕성이 더러운 옷과 같으며 배설물과 분토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❹ 그로 인하여 그들은 그처럼 자랑하였던 옛 의는 이제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됩니다.

 

④ 네 번째 차이 : 새 삶의 방식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요인을 갖게 되어 선하고 의로운 삶에 대한 새로운 동기를 가졌다는데 있습니다. 옛 동기는 하나님을 무서워하여 율법을 지키려고 애썼으며, 자기 보존, 자기 이익 추구는 그러한 과정을 밟게 됩니다. 오늘날도 지옥이 무섭고 하나님이 무섭고 심판이 두렵기 때문에서만 선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일 하나님과의 영적인 체계를 무시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것이 사실이라고 판명되기만 한다면 그들의 행실은 달라질 것입니다.

 

⑤ 이 영 안에 있는 새 삶에 오게 될 때의 그 차이가 얼마나 큽니까! 그리스도인들로서 이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싶어 하는 우리 안에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❶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은 더 이상 지옥을 두려워해서가 아니고 ❷ 우리 스스로를 만족시키려 해서도 아니고 ❸ 우리 자신의 표준에 이르려고 하기 때문도 아니고 ❹ 더 이상 자기 보존에 관심이 없는 것은 구원받은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❺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나타내는 방식이 그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