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7:7-15 ,율법의 기능

호리홀리 2015. 1. 26. 14:04

롬7:7-15

 


 

7장 7~15절 :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8-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9-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함이니라. 14-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15-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 율법의 기능(7)

 

6장에서 사도 바울은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라는 말로써 도덕적인 국면을 거론하여 그것을 다루었는데, 여기 7장에서는 다른 문제, 소위 율법의 기능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①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라고 질문을 하고 나서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답변을 합니다. 그럴 수 없다는 말은 “천만에요”, 또 “생각할 수조차 없다”는 뜻인데 후자의 번역이 더 좋을 듯합니다.

 

②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다.”는 말씀은 율법이 죄를 자기에게 명확하게 해주기까지는 죄의 참된 본질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죄의 본질과 성격과 의미를 옳게 이해케 한 것이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❶ 중생하지 못한 자들은 죄의 진상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❷ 자연인들도 도덕적인 규례를 가지고 있고 어떤 일들은 옳고 그르다는 것을 믿지만 그것이 죄를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❸ 죄의 진정한 본질과 성격을 이해하게 되면 그는 자기 영혼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고 구세주를 추구하게 됩니다. ❹ 그러므로 구세주를 추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죄의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❺ 사람의 마음과 양심에 그러한 이해를 가져다주는 것은 율법의 독특한 기능입니다.

 

③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❶ “탐심”의 의미는 금지된 어떤 것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 즉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어떤 것을 바라고 갈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❷ “탐심”이라는 말은 말할 것도 없이 제 10계명을 의미하는데, 사람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과 외향적인 행동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탐심의 개념이 다른 계명들 속에서도 역시 내포되어 있습니다. ❸ 외적인 행동들의 차원에서 죄를 생각했던 바리새인들도 실제 율법이 사람의 내면적인 면에서 요구하는 것들이 있음을 “탐심”이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❹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이미 그 사람에 대하여 마음속에서 살인을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실제적으로 간음행위를 하지 않았다 해도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❺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관하여 질문을 받으셨을 때에 첫째 되는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❻ 그것이 율법이며, 근채와 박하와 회향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과 같은 세밀한 규례들까지도 율법입니다. ❼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은 영적인 것이요 율법은 인간의 마음과 하나님께 대한 궁극적인 태도와 관련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것이 율법의 의미입니다.

 

④ “내가 율법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 의하여 조명을 받기까지는 내 안에 있는 탐심과 욕심의 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말씀 중에 “안다”는 말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절대적으로 안다”, “느낌과 체험의 결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사실상 율법이 그를 밝혀주기까지는 죄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가지지 못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⑤ 율법은 죄의 의미와, 그 안에 있는 탐심의 능력의 결과인 죄의 조건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죄 짓고 싶어 하는 욕심 자체로도 죄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죄의 권세(8)

 

바울은 본문에서 “죄”라는 말을 단순히 죄의 행위들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타락한 인간 본성 안에 역사하는 하나의 원리와 하나의 세력으로서 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①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여기서 “기회를 타서”라고 번역된 말의 근본적인 의미는 ❶ “한 곳을 출발점으로 하다.”는 그 말은 여행을 출발한 곳, 그러므로 죄가 계명을 출발 지점으로 하여 라고 할 수 있지만, ❷ 군사 작전의 차원에서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준비하고 있는 본영이 되는데, 그곳에서 부대를 훈련시키고 포병을 정렬시키고 무장을 점검하고 작전을 개시하는 것과 같은데, ❸ 그보다 더 좋은 의미는 “죄가 계명을 지레받침대로 하여”라고 하는 표현이 더욱 적합합니다. ❹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죄가 율법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의 저항을 제거시키고 목표하는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② 여기서 바울은 특별히 탐내지 말라는 개념을 가진 10계명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는 말하기를 이제 일어난 일은 죄가 탐냄을 금지한 이 계명을 들어서, 또한 죄가 율법을 지렛대로 사용하여, 또는 군사작전의 본거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속에서 무엇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❶ 여기서 “이루다”는 말은 매우 강력한 “강력하게 역사하다.”라는 의미입니다. ❷ 또한 확실한 결론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❸ 그리고 어떤 것을 성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❹ “내 안에서 강력하게 이루어지게 한다.”, “내 속에서 권능 있게 이루다.”, “내 안에서 마지막 결과를 얻고야 만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습니다.

 

③ 죄가 역사하는 첫 번째 방식 : 죄는 먼저 내 안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고 그것을 증폭시켜, 결국 행위로서 나타나도록 우리를 인도해 갑니다. ❶ 죄는 소극적이어서 선한 성품이 결여 된 것이 아니라, 너무 적극적이고 강력하여 사람들을 들어 던질 수 있습니다. ❷ 죄는 노예의 상전으로 사람들을 절대적으로 조종합니다. ❸ 죄는 하나님의 율법마저도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는 지렛목으로 사용할 정도로 강합니다. ❹ 죄는 성공하고, 강력하게 이루어냅니다. 또한 성취하고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바를 완성합니다. ❺ 죄가 율법을 지렛대로 , 작전기지로,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죄가 우리 안에 있는 반역의 요소를 우리 속에서 일으킴으로서 입니다.[롬8:7]

 


 

④ 죄가 역사하는 두 번째 방식 : 죄는 인간의 가장 세밀한 생각들이 하나님 앞에 드러난다는 개념과 악한 생각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외적인 행실들만큼 책임을 져야 할 것임을 혐오하게 합니다. ❶ 율법에 대하여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게 취급당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합니다. ❷ 그러한 것들로 상황을 악화시켜 화나게 하고 악한 성질을 부리도록 만들며, 노하게 합니다. ❸ 그런 상태에서 그 전보다 더욱 많은 죄를 짓게 합니다.

 


 

⑤ 죄가 역사하는 세 번째 방식 : 나의 마음에 전에 없던 사념들을 집어넣습니다.  ❶ 전에 알지 못했던 일들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유혹할 수 없었으나 그러나 어떠한 책을 통해서 내 안에서 요동하기 시작하고 호기심이 생기게 됩니다. ❷ 호기심이 발생하였을 때에 그것들에 대한 지적인 충족을 위해 몰입하고 스스로 그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❸ 먼저는 상상을 통해서 그 모든 일을 행하고 즐깁니다. ❹ 그것이 죄가 역사하는 방식입니다.

 


 

3. 율법에 대한 반응들(9)

 

본문에 와서 혼돈을 주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것은 죄의 죽음과 살아남이라는 표현입니다.

 

① 율법이 없을 때에 죄가 죽은 것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죄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서, 그것이 활동함에도 불구하고 인식하지 못하여 죽은 것처럼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② 율법이 이르매 죄가 살아났다는 표현은,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니 죄가 살아있다는 것과 활동하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③ 내가 죽었다는 것은 죄가 나를 주장하는 것을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죄로 인하여 나의 존재는 죽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영혼을 지칭하는 것으로 죄를 인식함으로서 우리를 지배하는 죄로 인하여 우리의 영적 생명이 죽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④ 율법이 와서 한 일은 우리들 가운데 역사하는 죄를 확연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또 그를 이길 수 없음을 인하여, 절망하고, 결국 자신을 죄 가운데서 구원시켜 줄 메시아를 대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4. 율법과 생명(10~11)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통해서 사람들이 생명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만일 사람들이 그 계명을 지켰다면, 또한 어느 누구도 그 일이 가능하였다면, “생명”에 이르게 되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❶ 하나님께서 계명, 율법, 도덕법을 주셨을 때, 그는 그의 보시기에 매우 좋은 생활 방식을 그려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방식이며, 바울이 이 시점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❷ 여기에 우리로 하여금 거룩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생명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율법이 있습니다. ❸ [참조 : 롬10:5; 출19:5; 레18:5; 신6:25; 눅10장] ❹ 그것은 분명히 생명에 이르게 할 계명이었는데, 그것이 죄가 율법을 방편으로 하여 한 일 때문에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①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나를 속였다고 합니다. ❶ 완전한 방법으로 나를 속인 것입니다. ❷ 약한 방법으로가 아니고 나를 철저하게 속였습니다. ❸ 그리고 절대적으로 속인 것입니다. ❹ 우리는 죄가 가공할 힘이 될 뿐만 아니라 동시에 무섭게 기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② 우리가 도덕 교육과 모든 심리학과 엄청난 수의 협회나 기관이나 교육기관이 더 선하고 훌륭한 인간들과 보다 선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고심하였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죄는 계속되고 더욱 넘칩니다.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죄의 본성 때문인데,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인 것입니다. ❶ 율법을 잘못 사용하도록 속입니다.(딤전1:8) ❷ 우리 스스로 실패 감을 가지게 하여 절망적이 되도록 유도합니다. ❸ 율법에 대한 적대감을 주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고 계시다고 느끼게 합니다. 마귀가 하와에게 사용한 전술이 바로 그러합니다. ❹ 율법의 요구는 우리에게 부당하며, 불의하다고 느끼게 합니다.(좁고, 편협하다는 생각을 줌) ❺ 스스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으며 그 밖에 다른 것은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고 확신시킵니다. ❻ 어떤 본능들을 자극하고 충동질합니다. ❼ 자기표현 이라는 명목 하에 본능의 주인 노릇을 하게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고 합니다. ❽ 죄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훌륭하게 보이게 속입니다. ❾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그 결과들에 관한 어떤 생각들도 하지 못하게 함으로서 우리를 기만하는데, 그것은 그 결과들을 왜곡시킵니다.

 


 

5. 열쇠가 되는 구절(14~15)

 

① 기독교적인 관점은 율법이 신령하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문자가 아니라 문자와는 대조되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에 대한 영적이지 못한 관점은 율법을 단순히 외적 행동에만 관계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에 대한 영적인 관점은 율법이 행동뿐만 아니라 동기와 욕망과 상상(느낌)에 관해서도 똑같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②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육신이 팔려 죄 아래 있을 때에는 자기가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여 이런 일을 할 때에 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의 견해와 정 반대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이 하는 일을 단순히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미워하고 혐오한다는 것입니다.

 

③ 15절의 말씀은 “중생한 사람은 율법이 신령하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고 그것을 지키기를 원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라고 해석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