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시편해석

시편136,137,헤세드와 언약적저주

호리홀리 2014. 12. 27. 07:42

시136,137,헤세드와 언약적저주

 


 


 

시편 중에 가장 은혜가 안되는 시편이 137편이다.

 보통 시편의 구조는 고난, 아픔으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찬양과 감사로 끝나는 데,137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주이다.

 137편은 언약백성들이 포로로 끌려왔다.

 성전은 불타고 수많은 백성들은 살육을 당하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은 없고,

다윗언약은 끊어졌는가?

 하나님은 죽으셨는가?

바벨론 신보다 약하신가?

우리는 저주를 받았는가?

 


 

그들은 혼란스러웠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는 것 밖에 없었다. 

 1절,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절엔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

 찬양도 기도도 그쳤다

 그런데 3절에 우리를 포로로 끌고온 그들이 우리보고 노래하라고 했다.

 6절에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우리가 낙심 할 때 기도도 찬송도 예배도 모두 끊어 질 수 있다.

그런데 드디어 기도가 터져나왔다.

 그 기도는 저주의 기도였다.

7절“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유다가 망할 때 제일 종아하던 에돔족속에 대한 저주가 터져나왔다.

 


 

8절에는 바벨론을 저주한다.

그리고 9절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8절에도 바벨론에게 복수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하며 반복된다.

유다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올 때 어린아이들이 반석에 내어침을 당해 죽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끌려온 것이다.

분노에 치를 떨며 다시 돌아 갈 수 없다는 절망이 그들로 하여금 저주를 퍼붇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저주일까?

저주가 아닌 축복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알게 되었다.

언약을 보고,선지자들의 멧세지를 듣고 그들은 말씀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포로 중에 대부분의 구약성경을 완성하게 되었다.

 


 

136편은 최고의 시편이다.

 추수감사절에 교독문으로 쓰이는 이 시편의 내용을 알고 있는 성도는 많지않다. 

 1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헤세드를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헤세드는 영원하다는 것을 매절 후렴귀에 반복하고 있다.

 매절의 전반부는 감사 ,후렴은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반복 찬양하고 있다.

 1절은” 여호와께” 언약의 하나님, 반듯이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고백이고 ,

2절은 “하나님께” 엘로힘 하나님,즉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고백이며,

3절은 “모든 주께” 즉 만물의 주인이신 아도나이(주)에 대한 감사와 고백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삶에 고난과 절망이 오더라도 언약을 믿는다면 우리도 136편으로 찬양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