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여호수아서1

여호수아서 6장 여리고야 무너져라

호리홀리 2014. 12. 18. 15:04

6장 여리고야 무너져라

 


 

1절,여리고는 굳게 닫혔다.

 

New English Bible 에는 “볼트로 죄고 빗장을 걸었다”라고 번역한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앞에 세운 이스라엘 ,언약궤는 10번 반복된다. 그들은 언약을 믿고 7일 동안 돌았고 마지막 날 7바퀴를 돌았다. 비무장, 말을 끊고(침묵),7번의 완전수, 완전한 언약에 대한 순종이다. 히11:30에 믿음으로 돌았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정복의 방식에서 우리는 몇 가지 뜻을 찾을 수 있다. 첫째, לארשׂי은 하나님의 언약을 의지해야 했다. 가나안 정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לארשׂי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셨다(창 12:7; 13:15; 15:18-21 등). 이 약속은 이삭과 야곱에게도 계속된다(창 26:3; 28:13).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고 하셨다(출 3:8).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은 출애굽기와 레위기와 민수기와 신명기에 반복되었고(출 3:17; 13:5; 33:3; 레 20:24; 민 13:27; 신 26:9) 예레미야와 에스겔의 말씀에도 나타난다(렘 11:5; 32:22; 겔 20:6).

 

그러므로 לארשׂי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어야 했다. 그들의 행렬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앞세운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또 제사장들이 일곱 양각나팔을 들고 행진 중에 나팔을 분 것은 하나님께 아뢰는 뜻이 있는 것이다. 민수기 10:10은 말하기를,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고 했다. 제사장들의 나팔소리는 하나님께 대한 기도의 소리와 같았다. “오 하나님, 주의 약속만 의지합니다. 주의 명령을 따라 이 시간 이 곳까지 왔사오니 우리의 이 전쟁을 주께 부탁하나이다. 주의 대적들을 주의 종들의 손에 붙여주소서.”

 


 

לארשׂי 백성이 하나님의 지시대로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성을 돌 때에 아무 소리도 나지 않게 조용히 행진하며  오직 제사장들만 나팔을 불었고 제7일에 일곱 바퀴 성을 돈 후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맞춰 큰 소리로 외침으로 성을 정복하게 된 이 모든 과정은 한마디로 순종의 과정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지시하신 방식대로 이루어졌고 인간편에서는 믿음과 기도와 순종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10절에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들레지는 “솨마‘로 입으로 내는 소리 뿐 아니라 발자국소리나 옷깃이 스치는 세미한 소리를 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음성 즉 외치라하는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함이었다. 우리도 때로는 침묵기도가 필요한 이유이며 세상의 소리를 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위함이다.

 


 

6:22~27 언약적축복과 저주

 


 

가나안은 언약의 성취로 주신 것이다 언약에는 두가지가 포함된다. 곧 언약적 축복과 저주이다. 신28장은 언약적 축복으로 시작되지만 언약적 저주는 3배이상 분량이 많다. 즉 경고차원으로써 언약은 반듯이    지키라는 것이다. 수8장 1차 세겜언약체결식에서도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는데 저주를 상징하는 에발산에 단을 세우게 하신 것은 언약적저주에 대한 경고였다. 이는 시내산 언약이나 모압언약에서도 볼 수 있는 언약적 축복과 저주였다.

 


 

라합은 언약적축복이며 아간은 언약적 저주였다. 26절 “여호수아가 그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막내아들)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가나안은 언약적축복이지만 여리고는 언약적저주로써 경고하시며 맹세라는 단어를 쓰고있는 것이다.

 


 

아합왕 때에 벧엘에 히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여리고를 재건하고자 기초공사를 시작 할 때에 그의 맏아들이 죽었다. 그러나 그는 공사를 강행했을 때 막내아들이 죽음으로 하나님은 언약적저주를 보이셨다.(왕상16:34)

 

그가 언약적저주를 몰랐을리 없고 주위의 만류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언약을 가볍게 여긴 결과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보여주신 것이다. 히엘 사건은 450년이 지난후에 일어났지만 하나님은 반듯이 언약을 시행하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은 이후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물이 좋지않아서 나무들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언약적저주를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엘리사는 소금을 뿌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다.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다시는 이 물을 먹고 사람이 죽거나 농산물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왕하 2:19~22) 소금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언약적저주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히스기야가 무화과를 쓴 것도 마찬가지 경우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저주아래 놓여있는 우리를 구원하시며 저주를 풀어주시고 사망에서 해방시켜주셨다.

 


 

6장 25절 “그가 오늘까지 거주했다“

 

1) 역사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포함하는 영원한 생      명을 뜻한다.

 

2) 라합이 살몬과 결혼 - 보아스 - 오베스 - 이새 - 다윗 - 예수그리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