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개론

구약개론2

호리홀리 2021. 7. 21. 07:07

성경배경 이해

 

 

 

 

1.구약의 언어

 

구약성경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쓰여졌다. 다만 단2:4-7:28,에스라4:8-6:18,7:12-26,창31:47,렘10:11은 아람어로 쓰여져 있다.

 

 

2.“히브리”란 말의 유래

 

아브라함이 처음 히브리인이라 불리웠다.(창14:13) 히브리라는 말의 어원은 “하비루”라는 말이다.(아마르나문서:B.C14세기) ,누지문서(B.C15세기),우가릭문서(B.C14세기). 하비루는 강을 건넌자들이란 뜻이다. 인류의 시작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메소”는 “사이”란 뜻이고 “포타미아”는 강이란 뜻이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 (오늘날 이라크) 여기에 에덴동산이 있었고 인류는 두개의 강 사이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제국이 여기서 탄생했다. 시날땅 바벨(창10:10),이다. 여기의 지도자는, 최초의 영걸 니므롯(창10:8)이다. 이것이 고대 바벨론 제국이었다.  그들은 거대한 바벨탑을 건설했고, 아브라함은 우르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고강을 건넜다. 그래서 하비루라 불리운 것이다. 그들은 강을 건넌 자들이다.(성 쌓는 자와 단 쌓는 자의 대조)

 

 

3.구약의 지리적 배경

 

구약의 공간은 북위 20-40 동경 25-50 사이에 놓여있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이다.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이 만나는 장소이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후 여기서부터 흩어졌기 때문이다. 셈,함,야벳은 가나안 땅에서 겹쳐지기도한다. 인간의 외모도 이지역으로 가까이 올수록 구분이 거의 없다. 인류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지정학적으로도 지구의 중심이다. 가나안은 끊임없이 강대국들의 약탈의 대상이 되었으며 고대 바벨론제국,앗수르, 신바벨론제국,페르샤,헬라,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가나안은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지중해는 The Great Sea 로 불리웠고 가나안은 동으로 사우디사막, 남으로는 네게브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나안을 가로지르는 요단강은 자연적 국경이 되었으며 가나안을 동서로 나누고 있다. 이 짧은 협곡을 Trans Jorden이라 부른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는 여리고성으로 B.C 7000이나 되었다.

 

 

4.구약의 지정학적 특징

 

가나안의 크기는 남북이 450km 동서가180km 의 작은 땅으로 강원도 만한 땅이다. 대부분 준사막이며,물이 부족한 바위로 된 척박한 땅이다.

 

1)시내반도:남쪽에 있는 시내산을 시작으로 삼각형으로 생긴 반도 사막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을 보낸 땅이다.

 

2)네게브 지역:히브리어로 네게브란 말은 남쪽이란 말이다. 현재 이스라엘 영토의 60%를 차지하는 광활한 면적이다. 강은 없으며 비가 올때만 강이 되는 와디로 형성되어있다.

 

3)요단강 동쪽:아프리카와 메소포타미아를 연결하는 왕의 대로가 있는 곳이다.(엘랏에서 다멕섹 통과) 에돔,모압 길르앗,바산으로 구분된다.

 

4)요단계곡:상요단과 하요단으로 나뉜다. 하요단은 사해에서 끝난다.  사해는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지표면으로부터 -400m에 달한다.

 

5)중앙 산지: 에브라임산지(미스바,벧엘,실로),유대산지(헤브론,예루살렘.베들레헴)로 되었으며 동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해발 800에서 -250의 여리고로 내려가는 가파른 협곡으로 되어있다. 여리고는 종려나무성으로 알려진 곳으로 헤롯이나 크레오파트라의 별장이 있었던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6)해안평야:수없는 전투가 치러졌던 곳이며 이 평야의 윗부분에 므깃도(헬라어로는 아마겟돈)가 위치해있다.

 

7)블레셋평야: 크레타섬등 지중해의 섬에서 들어온 해양민족으로 주전12세기부터 강력한 제국을 이루며 점령했던 지역이다.

 

8)강과산:

연중 우기는 두 번 이며, 갈릴리호수가 유일한 수원지이다. 신약시대에는 로마3대황제 의 이름을 따서 ‘디벨랴바다’로 불리워졌다.  위로 ‘게넷사레호수’ 아래로 사해에 이르는 요단강이있다.

모세산으로 알려진 시내산(2285m). 가장 북단에 위치한 헬몬산(2814m). 예루살렘 맞은편에 위치한 감람산(830m)등이있다.

 

9)구약의도로

국가의 운명이 도로로 좌우될 정도로 도로는 지금까지 중요한 교통수단이 되어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하듯이 로마의 발달은 사방으로 뻗은 도로이다.

 

가나안에는 2개의 중요한 도로가 남북으로 뻗어있다. 하나는 해안도로로서 사9:1에 언급되어있다. 바베론지역과 애굽을 연결하는 이 도로를 통하여 모든 전쟁이 일어났다.

또 하나는 왕의대로이다. 민20:17,21:22 . 남쪽 아라비아에서 향료를 수출하였으며 국제교역로의 역할을 지금까지하고 있다.

 

 

5.기후

 

지중해와 사막사이에 놓여있는 가나안은 다양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이른비와 늦은비로 나뉘어지는 우기가 있다. 이른비는 10-11월  ,이때 파종한다. 늦은비는 2-3월, 곡식의 결실를 좌우한다. 건기때는 거의 비가 오지않지만 자주 이슬같은 비가 내리기도 한다.

 

 

6.구약의 역사적 배경

 

1)가나안의 초기 원주민

 

(1)르바족속(창14:5,신2:10,20):르바임골짜기(삼하5:18,22.23:13,대상11:15,14:9)에 살았던 족속 암몬 땅의 원주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바산왕 옥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민족이다.

(2)호리족속(창14:6,신2:22):호리족속은 일찍이 세일에 살았던 자들로서 에서의 후손들에게 ?겨났다. 그들은 가나안의 중앙에 살기도 했으며 세겜과 길갈에도 살았다.(창34:2,수9:6-7) 후에 앗수르에게 망해 사라졌다.

(3)아낙족속:가나안의 원주민으로서 헤브론을 중심으로 살았다.(민13:22) 네피림의 후손으로 알려졌고 헤브론의 옛 이름인 기럇 아르바가 그들의 수도였다.

(4)겐족속(창15:19) :미디안 족속중 하나로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이족속이었다.

(5)그니스족(창36:11,15,42,대상1:36,53):에돔족속의 하나로 그들의 일부는 유다지파에 편입되었다. 갈렙(수14:6),옷니엘,야베스등 이 있다.

 

 

 

 

2)가나안의 후기 원주민(신7:1,수3:10)

 

(1)헷족속:가나안에서 가장 큰 족속이었다(수1:4). 사라가 죽었을 때 그땅의 주인 이었던 그들에게 땅을 샀다. 에서는 아내둘을 모두 그땅  여인을 취했다.

다윗의 부하 우리아,아비새도 헷사람이었다. 그들은 후에 솔로몬의 역군이 되었다.

(2)가나안족속:넓은 의미에서의 가나안 족은  모든 가나안인을 가르키지만 여기서 말하는 가나안족은 시돈과 두로지역 즉 페니키아 왕국을 말한다. 가나안 왕 야빈은 하솔에 수도를 세웠고 북부의 강력한 통치자로 군림했다.

(3)블레셋족속:그레데섬에서 이주해왔다. 5개의 수도를 중심으로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 (아스돗,아스글론,가드,가사,에글론). 아벡전투에서 법궤를 뺐았고 성소가 있었던 실로를 파괴했다.농업이 발달했고 철을 오래전부터 다루었다.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혔으며 오늘 팔레스타인의 조상이기도 하다.

(4)히위족속:기브온 주위에 흩어져 살았으며 여호수아와 언약을 맺어 살아났다.(수9:3-15)

(5)여부스족속:예루살렘주위에 살았고 다윗때 정복되었다.

 

3)가나안의 종교

 

(1)바알:신들의 신이었고 비와 땅을 주관하는 신이었다. 삿8:33,9:4 에 보면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언약을 맺는 “바알브리트” 라는 말이 나온다

(2)아스다롯:바알의 부인 신이며 성을 주관하는 여신으로 바알신전의 여사제들이 섬겼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사제 850명을 모두 죽엿다.

(3)몰렉또는 밀곰(왕상11:5,33) 암몬인들이 섬긴 민족신 .이스라엘에도 이 우상을 섬겨 자식을 제물로 바치기도 했다. 삿11:24에서 사사 입다가 암몬 왕에게 언약하기를 “너의신 그모스” 그모스는 몰렉을 의하는 말이다. 후에 딸을 제물로 바친다. 이방풍속을 따랐던 입다를 볼때 얼마나 이런 풍속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운지 알게된다.,아하스왕의 아들을 몰렉에게, 므낫세의 아들들을 몰렉에게 바침

(4)바알브올:모압의 신 민25:의 행음사건

 

4)족장시대의 생활

 

주로 목축을 했다. 그러나 이삭은 목축과 농사를 겸용하기도 했다. (창26:12). 주로 장막 생활을 했으며 장막안에도 내실이 있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 가축을 사고파는 물물교환부터 생활 필수품에 이르기까지 무역도 했다. 족장은 절대 권한을 가졌고 축복권을 가졌다.

 

 

5)애굽에서의 이스라엘

 

요셉이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였으나 역사적으로 셈족이었던 힉소스왕조가 애굽을 통치하고 있었기에 같은 셈족이었던 요셉을 등용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후 이짚트 본토인인 아하모세왕조는 힉소스왕조를 무너뜨렸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출1:8)은 바로 아하모세를 가르킨다. 그의 손자가 둣모세 1세였고 모세는 그의 이름을 본따서 지어졌다. 둣모세1세의 무남독녀였던 공주가 모세를 양아들도 키웠다.

 

6)가나안정복

 

여호수아에 의해서 강력한 여리고성이 파괴된다. 여리고 성에서 살아난 라합은 유다지파에 귀속되었고 다윗의조상, 예수그리스도의 조상이 된다.

 

7)사사시대

 

여호수아가 죽은 후 사울이 왕이 될 때까지의 342년간을 말한다. 이 시대의 특징은 삿21:25에 기록된 대로 “왕이 없으므로 사람들이 각각 그 소견이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무법시대와 암흑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도저히 헤어나올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드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숭배였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바알과 언약을 맺고 여화와의 언약을 폐기하는 바알 브리트 사건을 시작으로(삿8:33,9:4) 언약공동체는 무참히 깨어지고 만다. 그렇게 된 이유를 삿2:7에서 보여주고 있다. 다음세대들에게 언약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8)왕국의 시작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주역을 담당했다. 왕정을 시작하며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다.또 라마에 선지학교를 최초로 세워 선지자들을 양성했다. 사무엘은 사사이면서 제사장이면서 최초의 선지자이기도 했다.

 

제사장과 선지자의 차이는, 제사장은 제도권아래 있어 위로 왕과 아래도 백성들의 눈치를 봐야 했기에 타락할 소지가 많았다. 그러나 선지자는 제도권 밖에 있었기에 그런 소지가 적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왕정을 허락하시면서 왕을 견제할 제도를 열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선지자 제도인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역사의 무대를 끌고가는 것은, 얼핏보면 왕들의 역사인 것같이 보이지만 선지자들을 통해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줄 알아야한다.

 

9)다윗의 통치

 

다윗 때에 이르러 비로소 혼란했던 이스라엘은 통일된 부강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즉위할 때만 해도 여러지파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그는 그들을 효과적으로 단결시켜 그 후대인 솔로몬에게 평화로운 왕국을 물려주게 되었다. 다윗은 역대 왕들 중 가장 강력한 왕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울때 그에게 물었다. 이방의 왕들과 같은 군림하는 왕이 되겠느냐 아니면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겠느냐? 다윗은 하나님을 “주”(아도나이)라 부르고 자신을 철저히 “종”으로 고백하고 있다. 다윗의 중심을 보시고 삼하7장에 위대한 다윗 언약을 세우게 된다.(시89:3)

 

10)북 이스라엘 왕국(왕상12-22,왕하1-17)

 

에브라임지파는 언약 공동체를 향해 늘 몽니를 부려왔다. 여호수아가 같은 지파였기에 기득권을 요구했고 ,다른 지파와 계속된 불화를 조성했다. 기드온에게도,입다에게도 계속 가시가 되었고 급기야 언약공동체를 깨뜨리고 솔로몬 사후 자기지파의 장군 여로보암을 앞세워 북쪽의 지파들을 모아 이스라엘를 세우게된다.

그러면서 남쪽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가지 못하도록 브엘세바와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고 우상숭배를 강요하게된다. 결국 200년만에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고 백성들은 노예로  세계 각처로 끌려가고 나머지 백성들은 흩어지게 된다.

 

11)유다왕국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유다는 586년까지 계속되었다. 이스라엘은 왕조가 계속 바뀌었으나 유다는 정통 다윗 왕조가 왕위를 계승해나갔다. 그러나 요시아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실정속에 유다는 점점 언약을 배신하게 된다.

결국 586년 예루살렘은 함락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히고 유다는 멸망하게된다. 그러나 요시아 때 만은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며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된다. 바벨론 70년 포로 이전에 앞서 그들에게 마지막 부흥의 기회를 주신 것이다.

 

12)포로가 된 언약 백성들

 

바벨론 포로는 4차에 걸쳐 이루어졌다. 첫 번은 605년 다니엘을 포함한 귀족 계급이었고,둘째는 597년 에스겔,여호야긴과 백성,방백,군인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1만명정도이고,세번째는 586년 예루살렘이 함락될때 시드기야를 포함한 백성들, 네번째는 581년 마지막 남은 백성들을 끌고 갔다.

 

그들은 포로생활중에 회당을 세웠고 ,언약백성으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며 철저한 신앙생활을 했다.포로기간에 나타난 것들이 있는데 서기관 그룹이다. 후에 랍비로 불리운 그들은 선지자,제사장과 더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포로이후 귀환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에스라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들은 후에 바리새파를 이루었고 제사장그룹은 사두개파를 이루어 신약시대로 이어져온다.

 

13)해방과 귀환

  고레스왕이 바벨론을 정복한 것이 주전 539년1월29일 이었다.  그는 2개의 칙령을 공포하였다. 본토귀환과 성전재건이었다.(대하36:23) 이사야의 놀라운 예언이 성취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사야는 150년 후에 일어날 사건과 고레스의 이름까지 하나님이 일러주신 대로 정확히 예언하였다(사44:28-45:4)

 

귀환한 포로들은 에스라의 지도하에 537년 7월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들은 언약체결식을 했으며 다음해 2월 성전건축을 시작했다. 이것이 스룹바벨 성전이었다.

 

 

7.구약의언어

 

구약은 대부분 히브리어로 쓰여졌고 일부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단2:4-7:28,에스라4:8-6:18,7:12-26,창31:47,렘10:11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성경의 원본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원본은 애굽 나일강 유역에서 나는 파피루스로 기록되었다.  시간상 원본은 존재하지 않으나 수많은 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1)사해사본

 

  1947년 쿰란계곡에서 발견된 가장 귀한 사본으로 이사야서 전부가 발견되었다. 그 이후 근처의 동굴에서 계속 사본들이 발굴되었다. 기록연대는 주전150-100 경으로 보고 있다. 이 사본은 주로 마소라본문 즉 현 히브리어 성경을 따르고 있다.

 

2)구약의 전승

 

구약의 원본은 없어지고 사본들만 전해지고 있다. 사본의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들이 마소라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주후500-950년 사이에 활동했으며 그 이전의 사본들을 정리했다.그러므로 맛소라 이전학파와 이후학파로 나누어 볼려고 한다.

 

(1)맛소라 이전학파

 

서기관이란 직책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명확하지않다. 그러나 대체로 다윗이전부터 라고 생각된다. 삿5:14에 우리말 성경엔 대장군으로 번역되었으나 원문대로 직역하면 서기관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서기관시대는 에스라 때 부터이다.

 

랍비 힐렐부터 주후200년까지 이들을 가르켜 랍비라 불렀다. 그들에 의해서 기록된 것중 미드라쉬가 있다. 구약을 교리적으로 설명한 책이다. 탈무드는 주후 100년에서 500년 사이에 편집되었다. 이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데 미쉬나는 구전의 율법들,전통,성경에 대한 설명,농업등이 기록되었다. 게마라는 미쉬나를 더 자세히 풀어쓴 책이다.

 

(2)맛소라학파

 

히브리어로 맛소라는 전통이란 뜻이다. 이들은 갈릴리 호수 서쪽에 있는 티베리우스시를 본거지로 삼고 활동했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에 모음을 달았다. 이들은 본문비평을 통하여 성경원문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들은 악센트를 표시하여 운율을 가지고 낭독하게 했다. 그들은 “주”를 달아 본문이해를 도왔다.

 

(3)고대 역본

 

70인역:주전 250-15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유대인 학자70명이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성경이다. 예수님도 이 70인역을 인용하셨다.

 

(4)라틴역 벌게이트역

 

4세기 말 제롬이 번역한 것이다. 1500년 까지 서구세계의 성경으로 사용되었다.

 

(5)최초의 영어역본

영국에서 번역된 킹 제임스 버전이다.

 

(6)기타:말틴루터에 의해 번역된 독일어 성경

 

(7)한국어성경

 

  제일 먼저 번역된 한국어 성경은 1790-1800년에 사복음서에서 발췌하여 해석한 <성경직해광익>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국역한 것은 1887년에 나온 로스역<예수셩교젼서>이다. 이것은 이응찬,백홍준,이성하,김진기등이 중국의 한문성경을  선교사 로스와 맥킨타이어가 헬라어 신약성경 및 영역본과 대조하여 수정하는 방식으로 번역되었다.

 

그후 한국 최초의 공인 역본은 1900년에 완간된 <신약젼서>와 1911년에 출간된 <구약젼서>이다. 1936년에 개역 <구약젼서>가 출간되고, 한편 1937년 신약의 개역작업이 완료되자 1938년에 신구약성경전서 개역본이 완성되었다. 그리고1956년에는 한글학회가 펴낸 <개정한 한글?춤법 통일안 한글판>에 따라 개정한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이 나왔다. 1977년 신구교가 공동으로 성경을 번역한 <공동번역전서>가 완간되었다.

 

 

8.구약의 정경

정경이란 말은 헬라어 카논에서 나온 말이다. 카논은 자,척도,규칙 법규란 뜻이다. 아타나시우스가 처음 사용했다.

 

*성경을 정경으로 받는 이유

랍비들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딤후3:16)

주후 90년경 잠니아에서 열린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결정되었다.

 

 

9.WCC는 왜 교회 파괴주의인가? 

                                

    2천년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보존하기 위해 순교의 피가 하나님께 바쳐질 때 가장 영광된 교회로 승화되었다.  그때의 신앙고백은 오직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내용 외에 어떤 잡다한 종교적인 것들을 용납하지 아니했다.  이 신앙 고백은 한국교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왜정시대와 6.25 사변을 통해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한국땅을 적셨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성장을 가져왔다.

    그런데 2013년 10월 한국 부산에서 WCC 제 10차 총회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하지 아니할 수가 없는 심각한 고뇌에 빠지게 되었다.  더욱이 대형교회 목회자들이 WCC 총회가 한국 부산에서 열리게 된 일이 미래의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일이 되는 줄도 모르고 서로 다투기라도 하듯이 지지하고 나섰다.  이는 교회사가 고백한 신앙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로 불 수 밖에 없다.

    여기에 WCC가 지난 1970년대 이후 40여년간 주장해온 객관적 선언문을 통해 중요한 요점들을 설명하고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1. 왜 한국에서 WCC 10차 총회를 개최 하려고 하는가?  이는 한마디로      구미교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기울어져가는 WCC가 심각한 재정적 난을 해    결하기 위해서이다.  2011년 WCC 재정보고 8쪽에 2003년 34.4 Million    Dollar(스위스 단위 화폐) 예산안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에는 23 Million    Dollars 만이 집행되었다.  뒤이어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10차 총회만을     위해 4.3 Million Dollars가 모금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40쪽에 보고된 세계 교회의 헌금가운데 아시아 전체 62개의 교단과 단체    에서 432,132 Dollars를 헌금했는데 그중에 7개의 한국교회 교단과 단체    가 185,508 Dollars를 헌금했다.  아시아 전체의 헌금중 한국 교회가 너    무나 많이 감당했다.  이는 WCC가 한국교회 동냥하기 위해 온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눈물어린 성도들의 헌금으로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한    국교회를 파괴하는데 낭비하겠다는 말인가?

 

2. WCC의 선교 선언문(Statements on Mission by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이 1970년대 이후 제네바에서 계속 발표 되었는데 그 내용    을 5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데 성경 구절을 악마의 사역에 적용한     격이나 다름없다.  1)1972년부터 WCC 사무총장을 역임한 Philip           Potter가 “선교는 진정한 에큐메니즘이다.” 라고 선언했는데 선교는         공동신앙고백이 아니고 ,즉 역사교회가 고백한 사도신조주의적이 아닌,      마 5:14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구절을 사회적 공평과 번영에 적용    하고 있다.   2) 1980년대 들어와 공동 증거에 대해 WCC는 선교에 있     어서 책임 있는 관계성을 주장했는데 배교주의(Porselytism)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Proselytism이란 말은 초대교회 유대주의에서      기독교로 전향하는 자들을 종교적 배신자로 학대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     이다.  WCC가 강조하는 내용은 여러 잡신 종교에 속한 자들을 같은 종     교로 인정할지언정 그들을 기독교로 전향하도록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      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무슨 선교를 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런 기막힌     적그리스도적인 선언을 하는 WCC를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지지하고 나      서야 되는가?  묻고 싶다.  그리고 경고하고 싶다.   3) 그들은 선교에서    연합성(Unity)를 강조하고 있다.  케리그마(Kerygma), 즉 사회 복음주의    (Missio dei)와 파라다임(Paradigm), 즉 변혁을 강조하는데 경제적, 사회    적, 정치적으로 억눌린자의 해방을 위해 선포와 변혁을 해야 하며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인격적 변화를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발트     의 제자 비신화론주의(demythologization)자인 불트만(Rudolf Bultmann)    이 케리그마주의를 강조하는데 있어서 전도는 선포주의이며 성경 본문      신앙주의가 아니라는 내용과 통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공공연하게 주    보의 기록에도 말씀 선포를 강조하는데 그 내용을 알고 쓰는지 모르겠다.    4) 1990년대를 넘어오면서 화합을 강조했는데 이는 죄인과 하나님과의      영적 즉 구속적 화합을 제쳐두고 종교, 국가, 계층, 공동체간의 평등을 강    조하여 선교적 개념을 수평적 화합에만 강조점을 두고 있다.  즉 우선권     의 문제에 있어서 성경이 강조하는 “죄인이 하나님 앞에서 누구이냐?”      문제를 해결하는 신앙을 무시하는 것이다.   5) 2000년대에 들어와 “치료    선교(The Healing Mission)"를 강조했는데 기독교에서 기도를 통해 병      낫는 일과, 일반 의학을 통해 병 낫는 일과, 무당의 의식을 통해 병 낫는    일은 목적에 있어서 서로 상통하므로 교회가 이 일에 공동체적 화해를 해    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마귀주의와 야합하는 잡다한 종교주의가 아닌가?    아... 기독교의 절대 3위1체 하나님 우리 주님은 이일을 보시고 한국교회    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만약 우리 신앙의 선조들인 순교자들이 여기에     계신다면 그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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