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성지순례

제3차 성지순례 4부

호리홀리 2019. 12. 19. 20:35

6일차 오후/사해

사해는 지구 표면에서 가장 낮은 지역으로 -398 미터이며 매년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 최근 홍해의 물을 끌어 들이는 수로를 건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홍해 물이 사해로 들어올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사해는 낮아짐의 원리,죽음의 영성은 낮아짐의 원리인 것이다.

수영복을 입고 누워 물에 뜨는 체험을 했다. 편안하게 몸을 맡기면 뜨게 되는 것이다. 구태어 애를 쓰지 않아도 내 몸을 맡길 때 주께서 나를 뜨게하시는 원리일 것이다.


세례터 방문/예수님이 세례받으신 세례터를 방문했다. 역시 요단강물의 수위가 낮아지고 있었다.많은 이들이 여기까지 와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본다.국경이기에 총을 든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양쪽 세례터의 장면이다.


여리고 삭개오 뽕나무방문/


엘리사의 샘/왕하2:19 이 샘 때문에 세계 최초의 도시국가 여리고가 세워졌다. 주전 8,000년, 그 이전에는 굴혈생활을 했다. 여리고는 수량이 풍부하고 기온이 온화해서 종려나무 성읍으로 성경에 나오고있다. 종려나무의 열매는 크고 달아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꿀로도 비유 될 만큼 달았다.종려나무는 멀리서보면 아브라함 같다고 해서 별명이 아브라함 나무라고도 한다.온화한 기후 탓에 클레오파트라,헤롯이 휴양차 오기도 했다. 

성경을 읽으면서. 요단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를 바라 볼 때 여리고는 지형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더구나 여리고성은 언덕위에 세워진 성이었다.


시험산/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마치신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여리고에 있는 시험산


7일차/사마리아 방문(sebastia)

BC 876년 오므리에 의해 세워진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남 유다의 예루살렘과 달리 북 이스라엘은 여러번 수도를 옮겼다.모두 교통의 요지였으나 정세가 불안정했다.이제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오므리는 남 유다의 예루살렘에 견줄만한 강력한 요새가 필요했다. 사마리아성은 멀리서 보면 면류관 같이 생겼다고 했다. 남북 모두 19명의 왕들이 통치했으나 북 이스라엘은 구데타,역 구데타로 이어졌다. 불순종의 역사는 우상숭배 만큼 질겼다. 그와 달리 남 유다는 왕이 숨을 거둘 때까지 기다렸다. 아무리 악한 왕이라도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순종하며,비록 문둥병에 걸린 웃시야까지 그들은 인내하며 기다렸다. 이것이 양국의 차이였다. 예루살렘과 달리 사마리아는 방치되어 있었다. 아랍인들이 사는 서안지구의 기독교 유적은 동네 아이들 놀이터로 사용되기도 하고 민간인들이 집을 짓기도 하는등 방치된 곳이 많았다.


7일차 첫방문지/세례요한의 무덤교회,세례요한이 사마리아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쳐 고마움으로 요한의 목을 가져다가 기념교회를 세운 곳이다. 


두번째 방문지/벧엘에 도착했다.예루살렘에서 20K, 족장의 길로 이름 붙여진 벧엘~실로~세겜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도시로서 북 이스라엘의 종교적 도시였다.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배드렸던 장소였다.(창12:8) 야곱이 기도한 굴,꿈에 환상을 본 장소,돌베게 등을 보았다.두려웠던 야곱은 여기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두려움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속에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세번째 방문지/실로에 도착했다. 실로는 가나안에 입성 한 후 약 200년동안 성소가 있었고 이스라엘의 수도 역할을 했다.지금도 그들의  영적 지주가 되는 성지이다.그러나 아벡전투에서 언약궤를 뺏긴 후 패퇴하여 실로는 성소와 함께 파괴되고 국경은 베들레헴까지 후퇴한다. 내륙 깊숙히 들어온 블레셋의 군대를 물리친 이는 다윗이다.고향 베들레헴을 탈환하는 3용사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보시라.(삼하23:13~17)


네번째 방문지/세겜

지금도 600명이 유일하게 남은 사마리아인들이 사는 도시,세겜에서 그들은 전통과 가치를 잘 보존하고 있다.매년 이들의 양잡는 유월절 축제를 보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세겜은 어깨라는 말이다. 양쪽에 어깨와 같은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 움푹 파여진 곳이며,요단강의 지류인 얍복강을 따라 하란에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교통의 요지였다.얍복은  사막에 많은 물을 급하게 흐르게 하는 강이다. 야곱이 에서를 만난 곳,조금 더 올라가면 브니엘과 마하나임이 마주하고 있다. 야곱이 하나님의 얼굴이라 고백했던 브니엘의 정상에는 고대  성곽의 유적이 있으며 강 건너 마하나임의 정상에도 요새가 있어 한 눈에 산 아래길을  관찰 할 수가 있다. 이곳을 지나 세겜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첫 기착지  세겜에서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이후 세겜은 야곱의 아들들의 복수의 피로 얼룩졌고 출애굽 이후에 가나안에 들어와 처음 성소를 세우고 요셉의 뼈를 묻었다. 


신명기27:11~26 모압언약의 절정이다,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에 서서 세겜언약을 체결하라는 장면이 나온다. 언약을 지키면 언약적축복,어기면 언약적저주가 임할 것이라는 경고이기도 하다.이 말씀대로 여호수아는 가나안에 들어와 아이성의 패배 후 세겜으로 향한다. 지금이 세겜언약을 체결할 적절한 타이밍 이었다고 여겼을 것이다.그들은 적들이 재정비하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비장한 모습으로 언약을 체결했던 장소,그 현장에 서있다. 우리에게도 늘 두개의 선택이 놓여있다. 그리심산과 에발산 이다. 여러분은 과연 어느쪽에 설 것인가?


다섯번째 방문지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해발 777미터의 산악지대,석회암지대의 벌집처럼 많은 동굴,동굴에서 사람이 살기도 했고 짐승들의 우리로 사용되기도 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마굿간은 동굴이었다.지금의 베들레헴은 철저히 관광도시로 변모한 것 같다. 하긴 관광수입이 거의 전부라고 보면된다. 베들레헴 역시 서안지구라 거대한 장벽이 저멀리 보인다. 들어갈 때는 쉽지만 나올 때는 검문 검색이 철저하다. 버스기사는 아랍인이었으나 통행증만 5개 정도된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이 그만큼 복잡한 것이다.휘황찬란한 불빛,각종 숙박시설,상점,버스주차비는 한시간에 50달러를 받는다.


여섯번째 방문지는 예루살렘의 비아 돌로로사(십자가의 길)

1지점은 가야바의 법정이다.2지점은 십가가를 지게한 곳.3지점은 채찍을 맞으시며 쓰러지신 곳.4지점은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 5지점은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 진 곳. 6지점은 12년 혈루병에서 나은 베로니카가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준 곳,7지점은 성문 밖으로 나가서 두번째 넘어지신 곳, 성묘교회, 십자가에 달린 곳에 세워진 교회,지금은 8개의 종파에서 관리하고있다.



8일차/예루살렘

첫 방문지는 감람산이다.예수님 승천교회로 갔다. 교회안  강대상 앞에는 바위가 놓였는데 예수님이 밟고 승천하신 장소라 한다.안타깝게도 현재는 이슬람 소유로  되어있다. 외관의 기둥은 비잔틴 양식으로, 교회였으나 이슬람이 점령한 후 증축해서 이슬람 양식인 둥근 지붕을 올려놓고 이슬람 사원으로 쓰고 있었다.


두번째 방문지는 주기도문 동굴교회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동굴에서 주기도문과 말씀을 전하셨다. 교회의 벽면에는 82개국 언어로 주기도문이 기록되었고 심지어 점자로도 적혀있다.


세번째 방문지는 비탈길로 내려오면 예수 눈물교회에 다다른다.지붕이 눈물방울 형태로 건축된 교회는 이곳에서 건너편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며 통곡하셨던 곳이다.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면 수많은 유대인들의 공동묘지가 보인다.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혹시 자신들도 부활 할 까하여 묘지를 쓴 것이다. 위에 있는 동굴교회는 가룟유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대제사장의 하속들을 이끌고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다.


네번째 방문지/베데스다연못

우리는 기드론 시내를 지나 예루살렘의 양문으로 들어왔다. 양과 목자만 다닐 수 있었던 이 문을 지나면 베데스다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현존하는 위치에서 맨 아래 쪽으로 한참 내려가야 양각이 있었던 연못을 볼 수 있다." 벧 에스더 "은혜의 집인 이곳에서 예수님은, 38년된 병자에게 불가능한 이적을 보여주시며 당신이 누구인가를 보여주었다.


다섯번째 장소인 성안나교회,이곳은 마리아의 부모가 살던 집으로 마리아가 출생한 집이다. 비잔틴 시대 때 지어진 후 가장 잘 보존된 교회로서 공명이 가장 잘 되는 곳이다.우리 모두는 강단에 서서 "주 하나님"을 찬양했다.교회안에 있던 다른 순례자들이 박수를 쳤다. 성지의 대부분의 교회가 십자군전쟁 때 파괴되어 1950년 이후에 세계 각처 성도들의 헌금으로 지어졌다.그리고 많은 교회가  입장료와 기념품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여섯번째 장소인 통곡의 벽이다. 성전 서쪽에 로마가 성전을 파괴하며 남겨둔 성벽이다.성전이 파괴된 것,성전을 뺏긴 것,나라를 잃은 애통으로 통곡하는 벽이다. 남여가 구분 되었고 남자들은 유대인들이 쓰는 키파라는 모자를 쓰고 들어가야 한다. 국가적인 행사 혹은 특별한 때 여기서 의식을 행하곤 한다.


일곱번째/마가의 다락방은 비잔틴 시대 때 세워진 곳으로 아래 지하에는 다윗의 가묘가 있다.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이곳에 상징적 의미로 다윗의 가묘를 둔 것이다. 유대교 랍비들이 성경을 읽고 있는 곳에서 나도 키파를 쓰고 히브리어 성경을 낭독했다.이곳에서 성령이 강림했고 초대교회가 세워지고 부흥한 역사적인 장소였다.

오 주님 우리에게도 다시금 성령의 불 같은 역사로 인한 부흥이 오게하소서


여덟번째/베드로 통곡교회를 방문했다.교회당 꼭대기에는 십자가와 함께 닭이 세워져 있었다. 지하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갇혀있었던 지하 감옥이 있었다.


아홉번째/욥바의 피장이 시몬의 집을 방문했다. 지중해 앞에 있는 이 집에서 이방선교의 환상을 보고 고넬료를 통해서 이방선교가 펼쳐지는 역사의 산 현장이었다. 바람이 태풍이상으로 불었기에 기상 악화로 염려되었으나 무사히 출발 할 수 있었다.


 여행 중에 메모를 하지 않았기에 기억을 되살려 기록했으나 수정 해야 할 곳이 많은 것 같다 천천히 고치려한다. 이번 성지순례가 사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녀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도 귀하게 여겨 스프링 쿨러를 연결해 놓고있는 나라,중동의  유일한 비 산유국에서 세계 2위의 매장량를 소유한 나라, 마지막 때를 위해 예비시킨 나라,세계 최고의 벤처기업들을 가진 나라,이스라엘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새삼 느껴본다.


귀한 분들을 만났다. 여행 내내 따라 다니며 사진사 역활을 자처했던 장로님,늘 식탁을 자주 했던 권사님 부부,설교한 이후로 이것 저것을 선물해 주신 여러분들(말린 무화과 한 박스:한달이 지난 지금도 먹고 있슴당),좋은 가이드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응답해 주셨다.,목사님 자제로 단신으로 요르단에 들어와 축구와,음악을 가르치며,시리아 난민 캠프도 섬기는 순수한 청년가이드 황우림씨,예수 믿기 전 성경을 확인하기 위해 11월에 성지에 왔고 한달 후 또 다시 성지를 찾은. 부산에서 온 변호사 부부,성지순례를 통해 예수를 믿게 된 ,역사와 지리에 대한 열정이 가득찬 분이었다.그외 모든 분들,순간 순간이 너무나 감사한 시간들이었고 소중한 순간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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