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성지순례

제2차 이스라엘 성지순례

호리홀리 2019. 12. 15. 15:48

1996년 이스라엘 관광청 초청, 한국교회지도자를 위한 이스라엘 성지순례


최고의 대접(비지니스석,5성급호텔)으로 모든 경비를 이스라엘 관광청에서 부담하여 성지순례를 떠났다. 1차 때와는 달리 검색대를 쉽게 통과시켰다.

히브리대학 교수 2명이 가이드를 했다.주로 순례코스가 아닌 곳으로, 가는 곳마다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여러곳의 키부츠를 방문했고 그중 모세 다얀이 외국정상과 회담을 한 2평의 거실을 보며,그들의 검소함에 놀랐다.

갈릴리 근처의 키부츠를 방문했다.관리인의 설명 중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이 나무를 가져와서 50번을 심어 결국 성공했다"는 것이다.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정신이 사막을 옥토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갈릴리호수에서 물위를 걷는 체험을 했다.멀리서 보면 물위를 걷는 것 같지만 호수 20센티 깊이로 다리를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사막에서도 체험한 적이 있었다. 모레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것,8월의 40도가 넘는 더위,몇미터 가기도 힘든 여정,광야의 40년간 불평이 나올 수 밖에 없었을 것 같다.베두윈의 검은 천막에서 지친 우리를 위해 화덕에 구운빵,우리는 걸레빵이라 했다.걸레같이 들면 너덜너덜한 모습이지만 콩을 간 소스를 올리브기름,치즈에 찍어먹으니 맛이 있었다. 진한 커피도 먹으며 잠시의 체험이었으나 그것 조차도 힘든 일이었다.


엔게디 근처의 키부츠를 방문했을 때,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마자 아름다운 선인장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여러종류의 선인장이 눈에 보였다. 그 중에 가장 보드라운 선인장을 만지게 했다. 몇번 쓰다듬었는데 가시가 손에 박힌 것이다.가이드가 말했다. 우리 이스라엘은 이 선인장과 같습니다. 우리가 힘이 없다고 건드리면 반듯이 댓가를 지불받게 된다는것이다.그들이 중동,무슬렘국가에 둘러쌓여 수많은 공격을 받으면서도 승리 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이를 보통 보복법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보복법이 아니라 오히려 보복 방지법인 것이다."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여기까지만 하라는 것이다. 눈을 뽑았다고 상대의 목숨까지 뺏으라는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악함을 아시는 하나님의 자비인 것이다. 지금도 그들은 무수한 공격을 받지만 반듯이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제3자의 눈에는 보복으로 보이지만,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게 대처하는 것이다.


통곡의 벽 안쪽,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은 장소를 방문했다.성전 기초석의 길이를 대략 재어보니 가로 12미터 세로 3미터나 되었다.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건물을 지을 때 제일 먼저 모퉁이 돌을 놓는다. 그래서 모퉁이 돌을 보면 그 건물의 규모를 짐작하게 된다.


갈릴리에서는 최근 발견된 예수님 당시의 쪽배가 갈릴리 수위가 내려가면서 뻘 속에서 드러난 것을 보여주었다. 일반에게 공개하지 않은 것인데 사방이 유리상자 속에 진공상태로 보존되고 있었다. 아마 예수님이 제자들과 탓던 배와 같은 배였을 것이라는 것이다. 


지중해 위쪽 악코에서 부터 욥바의 시몬,피장이 집 까지 해안을 따라 내려왔다.피장이 시몬의 집에서 베드로가 지붕위에서 기도했던 곳에 올라 해변을 바라보며 비젼을 위해 기도했다.

가이사랴에서는 갈멜산에서 부터 끌고온 수로의 위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수로 뿐 아니라 로마의 하수도시설,도로는 경탄을 금 할 수 없었다.


한번은 히브리대학교 교수가 우리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갔다. 골짜기 입구였다. 여기가 어떤곳인지 아십니까? 아무도 대답 할 수 없었다. 어떤 종류의 유적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설명은 이랬다. 여기는 실제 이리 두마리가 양 수백마리를 골짜기에 몰아넣고 방목하면서 한마리씩 잡아먹은 장소입니다.

그 말에 일행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각 교단 총회장,기관장,한국교회의 내노라하는 지도자들로 구성된 우리 일행에게 꼭 필요한 메세지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우리 양이 아닌 주님의 양이라는 것,나는 내 탐욕을 비젼으로 포장하여 목양하는 자는 아닌가?

나의 이익을 위해서 양들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가? 이리에 의해 사육되는 양들은 이리의 밥이 될 것을 모르고 열심히 풀을 뜯고 살찐 양으로 살고 있었다는것,충격이 아닌가?


나사렛에서는 시장이 한국에서 귀한 분들이 오셨다고 만찬을 베풀어주셨다.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여러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나사렛에서 북서쪽으로 6K 떨어진 "셒 포리스",지금의 이름 "찌포리"를 방문했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북부지역의 로마 행정수도였으며  유대교의 최고 의결기관인 산해드린이 세워졌고 1985년 대규모 발굴을 통해서 비로소 알려지게 된 곳이다. 후에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의 주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약시대의 유대교의 영적,행정적 중심지였던 찌포리, 도로 양 옆으로 상점들이 늘어선 유적을 볼 수 있었다.  나사렛은 작은 동네였고 요셉은 가까운 이곳에서 자주 일감을 얻었을 것이고 마리아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당연히 예수님도 자주 방문했을 거라 여겨진다.비유중에 부자의 의복이라든지  거대한 로마식 건물,최신 유행의 물품등을 볼 수 있었던 찌포리에서 예수님의 흔적을 찾아본다.예수님이 어릴 때 반란군 1000여명을 셒 포리스 길 옆에 십자가에 매 단 사건을 목격했을 것이고 대부분의 목수들이 십자가 만드는 일에 동원되었으니 예수님도 충격적인 체험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 날 국립묘지로 갔다. 얼마전 감명깊게 본 영화 쉬들러리스트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서 눈을 번뜩였다.수만개의 묘지 중에 바늘 찾기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국가별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고 유독 한 묘지위에 꽃과 돌이 많이 놓인 독일의 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뛰어가서 보니 역시 쉰들러의 무덤이었다. 수십년이 흘렸어도 그들은 잊지않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보니 유대인들은 늘 잊지 않는 민족이란걸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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