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성지순례

제3차 성지순례 3부

호리홀리 2019. 12. 19. 09:58

6일차/새벽부터 다시 국경을 넘기위해 부산을 떨었다.일찍 출발해야 다음 일정에 차질이 없기에 알렌비 국경으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트랜스 요르단 지역이 이어졌다. 트랜스는 사이,요르단은 요단강을 의미한다. 요단강 사이의 지역이란 뜻이다.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비둘기가 날면 30분 정도의 거리가 트랜스 요르단이다. 이스라엘 지역도 높지만 요르단지역은 더 높은 산맥이다

 

요르단이란 말은 "단"에서 흐른다는 뜻이다. 갈릴리 호수면은 -210M,사해는 -400M, 트랜스요르단의 위쪽 갈릴리에서 남쪽 사해까지190미터가 되는 낙차로 요단강 물이 흘러  내려오는 것이다. 신,구약 당시는 요단강 하류의 폭이 1.5키로에 달했으나 지금은 수량이 많이 줄어들어 강물이 흐르는 곳은 2~3미터 밖에 안된다. 성지의 지역을 지금 상태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성이나 교회 역시 허물고 그 위에 또 건설하고 했으니 계속 아래로 파 내려가면 십자군시대,비잔틴시대,신약시대,구약시대, 이런 순이다.

 

국경은 검문,검색이 까다로왔다. 이스라엘과 아랍국가는 견원지간이지만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국경을 열었다.그러나 1967년 6일 전쟁에서  요단 서안지구를 뺐겼고 지금까지 국경으로 되어 있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해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요르단보다 이스라엘이 더 까다로운것은 테러를 막기위한 고육책인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해를 끼고 마사다로 향했다.

 

첫번째 장소인 마사다가 저 멀리 보인다. 마사다는 요새라는 뜻이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엔게디에서, 유대광야, 그리고 마사다까지 도망왔다.다윗이 이곳 마사다에 올라가자 사울은 더 이상 추격을 하지 못한다.우리 말 성경의 "요새"는 히브리어의" 마사다"이다.

 

 요세프스의 유대전쟁사에 보면 헤롯이 피난처이자,요새로 만들었고 주후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게 파괴될 때 열심당원 960명이 이곳으로 옮겨와 3년간 최후항쟁을 벌인 곳이다.로마의 실바장군의 10군단은 2년을 공성퇴로 공격했으나 물과 양식을 비축한 마사다는 함락되지 않았다.지금도 로마주둔군 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로마군의 마지막 묘책은 토성을 쌓는 것이었다.6개월에 걸쳐 유대인 노예로 하여금 토성을 쌓게했으나 그들을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같은 동족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토성이 완성된 날 로마군이 공격을 시도했으나 아무런 저항이 없었다. 모두 자결로 최후를 장식했던 것이다. 로마의 노예로 사느니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율법에 자살을 금했으니 집으로 가서 가족을 모두 죽이고 다시 모인자들 중 제비뽑기 한 자가 모두를 죽이는, 소수만 율법을 어기며 유대항쟁사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 비극적인 사실은 한 명의 교사 와 아이 여러명이 살아서 창고에서 발견되어 알려졌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수백명의 유대인 학생들이 방문하였고 사관생도, 군인들도 와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의 산 교육장이 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은 6일 전쟁에도 아랍 전체와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왜 6일 만에 끝낸 줄 아시는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란다.실력과 자신감이 오늘의 그들을 있게한 것이다. 여기서의 그들의 구호는 naver again 이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그들의 결사항전의 의지를 절대 잊지말자,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외침이었다.

 

2천년전 마사다 곡물 저장고에서 발견된 대추야자 열매를 심었더니 놀랍게도 싹이 나고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근처의 키부츠에 가면 무성하게 자란 대추 야자나무가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두번째 장소는 엔게디였다. 쿰란으로 가기 전 오아시스인 엔 게디는 염소의 샘이란 뜻이다. 유대광야에서 스며든 물이 엔게디에서 터져나와 폭포를 이루는 것은 장관이다. 이곳은 물  때문에 고대로 부터 사람이 살고있었다. 엔게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중간에 드고아가 있다. 뽕나무가 많은,아모스 선지자의 고향이다.최근에 엔게디에서 관이 발견되었는데 뽕나무로 만든 관이었다. 드고아에서 옮겨진 것이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들었다.동굴 속에서의 조우, 그러나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자를 죽일 수 없었다.다윗이 숨을 곳은 더 이상 없었다. 왜 다윗이 근처의 마사다로 올라갔는지는 현장을 봐야 알 것이다.엔게디동굴은 광야에 위치해 노출되어 있으나 아둘람굴은 예루살렘이 보이는 구릉지 숲속에 있다. 400여명이 임시로 숨었던 아둘람공동체는 예배공동체였다.

 

세번째 장소는 쿰란이었다.예수님 당시 바리새파,사두개파,에센파가 있었다.바리새파는 랍비들이 중심이 되어 회당을 중심으로 성경과 율법을 가르치며 철저한 율법생활,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었으나 지나친 외식주의로 흘렀다. 사두개파는 제사장 중심으로 지배층을 형성했고 종교적 껍데기만 남은 자들이었다.그들은 성전을 장악하고 성전세를 받고 기득권을 행사했다.에센파는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광야로 나와 메시야를 기다리며 겅건한 삶을 실천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했으며 흰옷을 입고 물을 뿌리는 정결의식을 통해 날마다 자신을 돌아보며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필사해서 기록으로 남겼다.

 

 우리가 갔을 때 10분짜리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세례요한이 그 공동체에서 2년간 수련하다가 자신들을 배신,이탈하여 목베임을 당했다는 부정적인 자료는 유대교의 관점에서 보여주는 위험한 것으로 가이드나 순례자들은 주의해야 할 것이다.세례요한은 태어 날 때 부터 나실인이었다(눅1:15)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들에 의해 유대광야에 머물렀다(눅1:80) 유대광야에 있을 곳은 쿰란공동체가 유일한 것이다. 요한이 에센파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가르침과 일치하기 때문이다.세례와 유사한 정결의식도 그러하다.요한은 세례를 베풀었고,요한의 첫 메세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즉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했다. 에센파가 사라진 것은 핍박도 있었으나 자연스럽게 초대교회로 흡수되었던 것이다.초대교회 역시 이들과 유사한 유무상통의 공동체 생활을 했던 것이다.

 

그들이 기록한 사해사본(현존하는 사본 중, 가장 원본에 가까운 사본)은 로마의 공격을 피해 주위의 11개 동굴에 숨겨 놓았다. 급히 숨긴 흔적을 볼 수 있는 장면은 쿰란 공동체 맞은편 제4 동굴(그 옆에 5,6,7동굴)에서 이사야서를 비롯한 다수의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해사본은 현존하는 구약사본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에스더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구약이 발견되었다. 아직도 어느곳에는  또 다른 자료들이 숨겨져 있을 것이다.현재 쿰란공동체는 10/1 정도만 발굴된 것이라한다.

 

 쿰란 공동체가 발굴된 북쪽에는 망대가 있었으며 식당에서 1,000여점의 토기가 발굴되었다.토기장이의 집,방앗간,염색집,7개의 저수탱크등을 보았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성경 기록실의 의자,책상,잉크들이었다. 그들은 성경 기록과 보존을 사명으로 알고,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리며 경건하게 살았던 거룩한 공동체였던 것이다.우리도 주님 다시 오신다는 언약을 믿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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