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43장,역 출애굽

호리홀리 2016. 4. 4. 16:27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의 수효가 어느정도 되는지는 여기서 분명히 암시되고 있지않다. B.C. 586년 예루살렘 함락 이후 이 땅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다랴와 함께 미스바에 집결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숫자도 상당하였다. 그렇다면, 이곳의 '남은 자'란 표현은 베들레헴으로 도피했었던 특정한 무리일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트랜스요르단 지역에 피난해 있다가최근에 유다로 돌아온 자들도 포함되었을 것이다(40:11, 12). 또한 미스바 일원에 거주하던 모든 유다인들이 이 애굽행 대열에 동참했다고 보기도 힘들다. 포로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할 즈음에는 유다 지역에 상당수의 유다인들이 이미 살고 있었다. 한편,본문에서 나타나는 이 무리는 중요한 인물군을 암시하고 있는데, 그들을 구성하고 있는 인물을 보면 군대 지도자들, 왕의 딸들이나 예레미야 또는 바룩과 같은.영향력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예레미야와 바룩이 이들 난민들 무리에 포함된 경위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살펴 보았을 때 예레미야 선지자가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되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32:6-15 ; 40:1-6 ; 42:13-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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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굽 땅에 들어가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 '다바네스'란 하 이집트 극단인 헬리폴리스 부근에 위치해 있던 펠루시안 다프네(Pelusian Daphne)라고도 불리었다. 또한 이곳은 아랍과 아시아 쪽으로부터의 침략군을 저지하기 위해 한때 그리스 용병들을 주둔시킨 지역이기도 하다(Herodotus). 제롬(Jerome)이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충실하고 온 생애를 다바쳐서 자기 민족의 죄악을 지적하고 회개를 요청했던 예레미야가 이들 난폭한 반역도들의 돌에 맞아 숨진 곳이 바로 이곳이라 한다. 예레미야는 이들의 행복을 보기 원했고 또 그렇게 기도했었지만, 도리어 그들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겪었던 것이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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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바네스에서 여호와의 말씀이...임하여 - 예레미야는 애굽 땅 '다바네스'에서 42:15이하의 말씀을 최소한 한 번 이상 반복해서 말했을 것이다. 즉 애굽으로의 피난이 칼과 기근과 염병에서 그들을 지켜주지 못할 것이라고 다시 선언 했을 것이다. 본절에서부터는 보다 더 상세하고 특별한 내용이 제시된다. 그리고 이들을 심판할 대행자는 이들이 무서워하여 피해왔던 바로 그 바벨론 군대가 될 것이다(42: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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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돌들을 가져다가...벽돌 깔린 곳에 진흙으로 감추고 - 본절의 '바로의 집'이란 바로의 왕궁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즉 국경 도시인 이곳 다바네스에 왕궁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곳은 바로가 이 도시를 방문할 때 숙소로 사용했던 별궁과 같은 곳으로 볼 수 있겠다. 엘레파틴 파피루스에는 애굽 남쪽 국경에 있던 왕궁에 대한 언급이 있다(Bright). 이 부분의 설교, 또는 상징적 행위는 예루살렘 파괴 이후 약 1년 정도 지난 때에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이 무리들은 갈대아인들을 두려워해서 유다에 머물지 못하고 이곳으로 건너왔지만,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이 그의 정복지를 애굽에까지 확장할 것이며, '큰 돌'이 놓이는 곳에 느부갓네살의 군막이 설치될 것임을 상징적 행위를 통해서 보여 주었다. 44장 끝부분에 가면 이 예언들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밝혀 줄 것이다(Clarke). 아무튼 예레미야는 이곳에 와서도 유다에서 행했던 것과 같은 그런 상징적 행위로써 호소하였다. 그것은 예언의 메시지와 동일한 능력이 있었으며 성취되고야 말것이다. 비록 본문의 텍스트 판독에 어려움이 있긴 하나, 이 상징적 행위가 보여주는 의미는 분명하다. '큰 돌'은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정복했다는 증표로써 세우게 될 그의 보좌의 주춧돌을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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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절 이하에는 10절의 예언을 확증하는 예언이 나온다. 애굽은 사방이 요새화되어 있었고 나일 강과 홍해 및 호수들로 둘러싸여 천혜의 방벽을 보유하였으므로, 갈대아 원정군들에 의해 점령되리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민족의 흥망 성쇠를 좌우하시는 하나님의 개입이 있을 때는 그러한 방벽들도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Cal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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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굽 땅 벧세머스의 주상들을 깨뜨리고 - 느부갓네살의 활동은 애굽 신전과 그 신들을 모욕하는 데까지 이른다. 그렇게 피정복지의 신들을 모욕하는 것은 고대 근동지역에서는 잘 알려져 있던 관행이었다. 엘레판틴 파피루스는 페르시아의 통치자 캄비세스가 애굽을 정복했을 때 애굽의 신전들을 황폐화시켰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본절의 '벧세메스'란 곳은 '태양의 집'이란 뜻을 가진 신전이었는데, 신성한 기둥들로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의 카이로에서 북동쪽으로 약 8km 정도 되는 지점에 위치하였다고 한다(Nicholson). 한편, 느부갓네살은 B.C. 572년과 568년 두 차례에 걸쳐 애굽을원정하였다(29:19 ; 40:1-48:35). 단편 조각으로 발견된 비문들을 보면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항구적으로 정복하여 통치하려는 의사가 없었음을 보여주며 단지 아시아 지역에서의 애굽의 간섭이나 영향력을 배제하려는 의도였음을 시사한다. 그 당시 애굽은 이 전투에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을 유지했으며, 그 이후에는 바벨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예언이 진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여호와의 진정한 선지자였음을 증거로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Thomp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