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39장,함락

호리홀리 2016. 4. 4. 16:22

유다 왕 시드기야와...그들을 보고 도망하되 - 어쩌면 성문을 통하지 않고도 성밖으로 빠져나가는 비밀통로나 지하통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들키지도 않고 성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성에서 상당히 멀리까지 달아날 수있었다(Clarke).

 

 아라바로 갔더니 - '아라바'란 요르단 계곡을 망라하는 지역을 가르키는데, 사해 남쪽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리고 지역인 요르단 계곡을 가리키는것으로 쓰였다(Thompson). 클라크(Clarke)는 이를 광야길로 번역한다. 아무튼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감람산을 넘어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산을 넘는 것은 시간을 지체할 것이기 때문에 시드기야는 다른 길인 광야길, 다시 말해서 아라바를 택했던 것이다. 아마도 시드기야는 요르단을 건너 애굽으로 도망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 --> 

 하맛 땅 립나에 있는...느부갓네살에게로 - '립나'는 팔레스틴 지역 북쪽 변방에 위치해 있었으며 '하맛' 역시 수리아에 속해 있던 대도시였다(10:18 참조,Clarke). 또한 오론테스 강변에 있었는데, 가데스 남쪽의 수리아 고도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도시는 애굽과 메소포타미아를 직통으로 연결시켜주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느부갓네살은 수리아의 심장부인 립나의 사령부에 머물러 있고 그의 군장은 유다에서 전쟁을 수행했었다. 포로들은 느부갓네살에게 심판을 받기 위해 압송되었다(Thompson).

) --> 

 왕궁과 백성의 집을 불사르며 - 니콜슨 (Nicholson)은 왕궁과 백성의 집 사이에 여호와의 집이란 말을 덧 붙이고 있다. 물론 8절에는 언급되고 있지 않으나 52:13에는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여호와의 집이 파괴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날 남아있는 예루살렘 성벽 남쪽 지역의 동쪽 비탈을 발굴한 결과 그 당시 백성의 개인적인 집들에까지 파멸이 미쳤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서 '헐었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타추'는 성을 헌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는데, 예레미야의 소명 장면에서도 나타났다(1:10).

) --> 

 시위대장 느부사라단 - '시위대장'은 히브리어로 '라브 타바힘'인데, 여기서 히브리어 동사 '타바흐'(짐승이나 사람을)'학살하다', 살해하다'는 뜻이다. 여기에 착안하여 탈굼역(Targum)'살해자의 방백'이라고도 번역하나, '시위대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 혹자는 이를 '남아 있는 장인들'로 번역하는데 이는 같은 말의 반복을 피하고자 함이다(Nicholson). 그러나 본문은 예루살렘내의 백성을, 또 본절 말미의 '남은 백성'이란 유다 지경내의 백성들을 포함하는 말을 뜻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Calvin).

) -->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을...그들에게 주었더라 - 여호야긴 당시의 예루살렘 함락때와 같이(왕하 24:10-14), 바벨론 군대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사로 잡아서 바벨론으로 끌고 갔는데, 특히 유력한 인사들이나 재능있는 장인들을 잡아갔다. 반면에 빈민들은 유다의 땅을 할당받아 포도원이나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는 바벨론의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이해될 수 있다(Feinberg).

) --> 

바벨론 왕이 예레미야에 대해서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는 내용이 언급된다. 예레미야가 바벨론 정부에 어떻게 해서 알려지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분명하지 않다. 아마 예루살렘 멸망 전에 바벨론에 투항한 유대인들에 의해서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Thompson). 즉 느부갓네살은 그들로부터 이 선지자가 예루살렘 함락을 예언하였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또한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바벨론에 반역하지 말고 항복할 것을 권유하곤 했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예레미야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었다(Clarke).

) --> 

13,14절에는 느부사라단과 환관장 느부사스반, 박사장 네르갈사레셀 등을 포함한 바벨론 왕의 주요 관리들이 시위대 뜰에서 예레미야를 데려다가 그를 그다랴에게 넘겨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그달리야'라고도 불리우며 유다에 남은 자들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왕하 15:22-24). 한편 기자는 여기서 예레미야를 '집으로 데려 가게'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다소 불명확한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의 집이라고 표현되지 않고 그냥 '그 집'( 하바이트) 즉 정관사가 사용된 ''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 집'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흔히 성전을 뜻할 때 쓰였으며, 때로는 왕궁을 가리키기도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집은 예레미야의 집이나 또는 그다랴의 집인 것 같지도 않다. 어쩌면 이는 바벨론 군대가 사령부 건물로 사용하고 있는 새로운 정부 청사, 곧 그다랴 행정부 건물이나 또는 총독 관저 정도되는 곳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와 관련된 기사가 40:1-6에도 나오는데 그 내용이 다소 다르다. 40장에는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8km 가량 떨어진 라마의 포로 행렬 중에서 예레미야를 발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느부사라단은 그를 포로의 사슬에서 풀어주고 솔직하게 담화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본장의 11-14절의 내용은 사건의 세부 사항을 생략한 채 그 결과만을 간단히 기록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아마 그는 1차 심문을 당한 후에 석방되었다가 그 후 다시 병사들에게 붙잡혀서 사슬에 묶이게 되었을 것이며, 그런 다음 리블라를 거쳐 바벨론으로 압송되기 위해 라마의 수용소로 보내졌을 것으로 추론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