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33장,위로와 회복

호리홀리 2016. 4. 4. 16:06

'회복과 위로의 메시지'(30-33)의 결론부에 해당하며, 최대의 민족적 위기를 맞은 유다 백성에게 다시 한번 소망의 빛을 확신시키고자 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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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부르짖으라...응답하겠고 - 이는 미래의 모든 일을 주관하며 계시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뿐이므로, 그분께 간절히 매어달려야 함을 상기시킨다. 특히 '부르짖으라'의 히브리어 '카라''절규하다'는 의미로서, 심한 갈증속에서 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던 삼손의 모습이나 자식의 잉태를 위해 간구하던 한나의 모습을 연상시킨다(15:18;삼상 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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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절은 예루살렘을 구하려는 모든 인위적 노력들이 무용함을 밝히고 있다. 성읍의 가옥과 왕궁은 폐허화될 것인데, 그것은 대적의 파괴로 말미암아서가 아니라 포위당한 예루살렘 백성들 자신에 의해서 그렇게 될 것으로 묘사된다(4). , 백성들은자기 집과 왕궁을 헐어서라도 포위 공격하는 갈대아 군대를 막아 보고자 애쓰지만, 이러한 자구책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패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여호와의 도우시는 손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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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 '치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루카'는 원래 상처 부위에 돋아나는 새 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스라엘은 범죄로 인해 심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그들을 연단시켜  회복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마치 피부에 새 살이 돋듯이 치유함을 받게 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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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갇혀 언급되고 있는데, 이로 보아서 이곳의 회복의 약속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에게 해당될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이전에 멸망한 북이스라엘 왕국과 앞으로 멸망할 남유다 왕국 모두에 대한 미래의 희망의 메시지인 것이다(Nicho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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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사할 것이라 - 여기에는 회복의 날에 있을 가장 중요한 양상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하였던 죄를 용서하고 악한 죄에서 정하게 할 것이란 사실이다(36:25, 26 참조). 이는 결국 이스라엘이 당한 파멸과 시련의 근본 원인이 바로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으며 따라서 사죄의 은총은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기 위한 근원적 처방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이는 복음 시대의 새언약을 향한 암시적 언급으로도 이해될 수 있겠다(31:34;50:2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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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읍이...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은 열방들 앞에서 기쁨과 찬양의 원천이 될 것이고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는 곳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여호와 앞에 바르게 서는 것은 전세계적인 의미를 띠는 것이다. , 지상 모든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해 행하신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듣고는, 그들의 엄청난 축복을 부러워하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모든 열방들 위에서 다스리시는 여호와의 우주적 통치에 대한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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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절부터 마지막까지는 칠십인역(LXX)에서 누락되었으며 많은 주석가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즉 이 부분은 예레미야의 저작이 아니라 후대의 편집자에 의해 삽입되었다는 것이다(Hyatt). 그러나 이 부분은 23, 30:1-33:13장에 수록된 내용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고 있음에 분명하다. 여기 수록된 바, 다윗 왕조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약속은 포로 귀환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으로 성취될 것이며(1:8;2:2, 40-54;8:15-20), 궁극적으로는 메시야의 사역을 통해 온전히 성취될 것이다(Fei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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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 15절과 16절은 23:5, 6의 내용과 유사하다. 여기서 '의로운 가지'란 다양하게 번역되기도 하나 분명히 정의롭고 바르게 다스릴 이상적인 왕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4:2), ''(6:12), '뜨인 돌'(2:34), '머릿돌'(벧전 2:7) 등으로 묘사되기도 하는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메시야의 통치가 도래하면 유다는 구속함을 입을 것이고 예루살렘은 안전하게 거할 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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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절에서는 다윗 왕조와 레위계통의 제사장직이 영구히 존속될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이를 단순히 역사적 안목에서만 보면 이 예언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포로 귀환 후에도 다윗 왕조가 이어지지는 않았으며,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 역시 줄곧 이어져 갔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왕적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에 의해 온전히 성취되어짐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물론 그리스도는 레위 계통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7:11). 그렇다면 레위 계통에 관한 언급은 민 25:13에서의 비느하스에 대한 약속과 마찬가지고 제사장직의 영원한 존속에 대한 말씀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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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에 대한 확실한 보증으로 사용했던 31:35-37의 내용을 19~21에서 재차 언급하여 확신을 더해 주고 있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 낮과 밤은 하나님에 의해 태초에 설정되었다(1:5;8:22). 여기서는 낮과 밤의 교차가 하나님과의 계약과 관련되어 표현되고 있다(Bright). 이런 표현은 여호와 약속의 신뢰성과 영속성을 입증하기 위해 쓰였다. 낮과 밤이 규칙적으로 계속되는 것은 자연 질서의 일부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 질서가 파괴되고 낮과 밤의 기능이 제때에 작용하지 않는다면, 여호와께서 자기 종 다윗과 레위 제사장직에 대해 맺으신 언약이 파괴될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는 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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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4에서는 이스라엘의 회복이 결론적으로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두 족속에 대해서는 (1)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2) 야곱과 다윗(26절 참조) 혹은(3) 야곱과 레위(왕직과 제사장직을 염두에 둔 구분) 등으로 보는 견해로 갈리지만, (1)이 가장 무난할 듯하다. 그리고 또한 24절 초반에 나오는 '이 백성'이란 여호와를 믿지 않는 유다인들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Bright). 민족의 절망적 현실에 부딪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선포된 메세지를 믿지 못하는 자들은 공포에 질려 완전한 파멸만 생각하고 있었겠지만,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최종적인 계획은 그들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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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597년의 포로 사건이 있은 이후, 그리고 B.C.722년의 사마리아 함락이라는 사건을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셨다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다 B.C.586년의 예루살렘 함락 사건은 그들의 비관적인 태도를 더욱더 분명하게 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다시 야곱 자손들의 통치자로서 다윗 자손 통치자를세우시는 데 실패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이 실패하게 될진대 차라리 낮과 밤이 바뀌고 말 것이다. 한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고 하는 족장들에 대한 삼중적 언급은 그들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졌던 모든 언약들을 강조하여 지칭하기 위함이다(Fein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