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29장,70년이 차면

호리홀리 2016. 4. 1. 10:29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와 의도가 무엇인지가 언급되고 있다. 바벨론에서의 70년이란 기간이 차게 되면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한편, 근동의 패자로 급부상하였던 바벨론 제국의 권세가 불과 70년만에 몰락하게 될 것을 암시하는 본절의 예언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잘 믿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70년이라는 기간에 대해서는 굳이 엄밀하게 계수할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25:11 주석 참조). 니느웨의 멸망이 B.C. 612년에 일어났고 이때로부터 바벨론 권세가 시작된 것으로 한다면 바벨론 멸망이 B.C. 539년이기 때문에 그 기간은 73년간이 된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의 즉위하던 때(B.C. 605)로부터 바벨론 멸망 때까지 66년간이란 기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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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 자기 백성을 위한 여호와의 생각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곧 그것은 궁극적으로 그들의 고통과 재앙을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행복과 번영을 위하여 계획되어 있었던 것이다. 미래에 이 백성은 여호와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여 이전에 누리던 특권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아마 예레미야가 이 편지를 기록할 당시에는 여호와를 향한 원망과 그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진심으로 여호와를 찾고 또 그에게 기도하며 그에게 나아갈 때에는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5:4-6;2:16-20). 반면에 여호와는 패역한 길에서 돌이키지않는 백성에 대해서는 언약의 축복을 주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2:3-5; 33:17-20).여호와의 축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권에는 순종과 충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통이 우선적으로 요청되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33:10)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이백성에게 소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죄악을 깨닫는 백성에 대해서 여호와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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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 여기서 '전심으로'( 베칼레바브켐)라는 말은 '네 마음을 다하여'란 뜻으로서 감정적인 면보다는 의지적인 측면에 더 강조점이 주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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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돌아오게 하리라 - 13절에 제시된 약속이 여기서도 계속되고 있다. 즉 언약의 축복이 유용하게 될 것이란 내용으로서 신 30:3-5에 언급된 약속의 축소판이라 할 만하다(Delitzsch).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을 회복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할 선결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순종이다. 여호와를 거부하고 그의 언약을 저버리는 자들에게 아무런 조건도 없이 저절로 허용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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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97년 이후에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 종을 통하여서 말씀하셨던 것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행위를 고쳤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호와께서 끊임없이 그들을 설득하고 재촉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악된 고집에서 돌이키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심판은 불가피했던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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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보낸 너희 모든 포로 - 여기서는 다시 화제가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에게로 옮겨지고 있다. 블레이니 박사(Dr. Blayney)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보낸 편지가 두 개였다고 보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에게 사신으로 보낸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가 귀환했을 때 예레미야는 자신의 충고가 그들에게 적절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바벨론의 포로들이 예레미야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포로들 중에 있는 거짓선지자들의 허황된 설교에 속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두번째 서신을 기록해서 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21-23절 내용을 14절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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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 이 두 사람은 바벨론의 포로들 중에 있었던 많은 거짓 선지자들의 대표적인 위치에 있었던 사람일 것이다. 예레미야의 설교에 반기를 들고서 유다의 번영과 평안을 주장하였던 허황된 예언이B.C. 597년 느부갓네살의 침략으로 인한 파멸에도 불구하고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던것이다. 이러한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엄청난 고통을 자초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이들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계속해서 거짓을 예언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의 생활 역시 악하고 죄악에 물들어 있었다(23:9-15). 그들은 동료, 이웃의 아내들과 간음을 행하였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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