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24장,무화과 환상

호리홀리 2016. 4. 1. 10:00

1-3절에는 무화과의 환상이 나오고, 4절이하에는 이 환상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본문의 환상은 그 내용면에서 암 8:1-3'여름 실과 환상'과 유사하다.

 이 환상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기 전에 우선 역사적 연대를 나타내는 어구가 등장하고 있는데, 이는 구문상 괄호로 묶어두어야 할 부분이며, 그 연대가 명확하게 지시되어 있다. 이 연대에 따르면 이 환상은 B.C.597년 이후에 주어진 것이다. 여고냐는 다른 곳에서는 고니야라고도 불렀으며, 또한 왕명(王名)으로는 여호야긴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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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앞에 놓여 있는 무화과 두 광주리 중 하나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들어 있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들어있었다. 이 광주리들이 성전 앞에 놓여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어떤 학자들은 이를 성전 제단에 바쳐진 예물(Graf) 혹은 여호와께 드리는 수확의 맏물 등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사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환상에 대한 묘사인 까닭에 하나의 상징적 의미로 이해함이 나을 듯하다(Delitzsch). 그렇다면 이 무화과들은 여호와께 나아오는 유다 백성들을 상징하며, 좋은 무화과란 여호와께서 인정해주시고 귀하게 여기시는 자들로서 여기서는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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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절,여호와께서 포로로 이미 붙잡혀 간 자들에게 자비와 은총을 베풀고자 하심을 보여주신다. 그들은 비록 죄를 범했을지라도 여호와의 자비를 구하며 회개할 것이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선한 존재들로 보신다는 것이다(Clarke). 물론 이들에게 회개하는 심령을 주시는 분도 바로 여호와시다(7). 이제 미래는 그들에게 있다. 한편B.C. 597년에 바벨론으로 옮겨진 자들은 이 나라의 지도층이었으며, 핵심되는 인사들이었다(왕하 24:14-17). 이들은 예레미야의 메시지를 거부하였으나, 막상 그 예언이성취되는 것을 경험하자 많은 이들이 뉘우치기 시작했을 것이다. 반면에 끝까지 유다땅에 남아 있던 자들은 예레미야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그는 이 기간 곧 B.C. 597-586년 사이에 심각한 고초를 겪었기 때문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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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절,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세우고', '헐고', '심고', '뽑는다'는 동사들은 1:10에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본서에서 계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12:14-17;31:27, 28). 이들 동사들은 심판과 회복이라는 이중적 주제의 메세지에 주로 등장하고 있으며, 예레미야의 소명 기사에서는 핵심을 가리키는 내용으로 쓰였다(1:10). 물론 대부분은 심판 선포에 할애되었으나 군데군데에 회복과 갱신의 메세지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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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 여호와께서는 특별한 섭리를 그들에게 베풀어 주실 것이며, 그들은 본토로 귀환하게 될 것이다. 본절 내용은 신 30:1 -10에 나타난 약속, 즉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추방당할지라도 다시금 회개하면 새롭게 회복될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로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언약을 갱신하실 것임을 암시한다(Clarke). 또한 그들은 '전심으로'( 베칼 레브) 그에게로 돌아올 것인데, 이러한 전인적인 돌이킴은 구약의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누차 강조된 바이다(29:13;31:33;36:26,27;37:13, 14, 27 28;13:9 ).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심판이란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새로운 시작이 임하고 있음을 알리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포로 중에 있던 자들과 B.C. 586년 이후의 사람들은 이런 메세지에 굉장한 격려를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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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 '악하여 먹을 수 없는 무화과'는 이 땅에 남아 있거나 애굽에 거주하는 자들에 비유되고 있다. 우리는 백성들이 언제 애굽으로 도망쳤는지에 관한 충분한 기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친애굽들은 여호아하스가 B.C. 609년 그곳으로 잡혀갔을 때 함께 건너가 그곳에 거주했을 수도 있을 것이며(왕하 23:34), 아니면 여호야김이 느부갓네살의 봉신이 되었을 때(B.C. 609년경) 또는 느부갓네살이 B.C. 597년에 유다를 침공했을 때 애굽으로 피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한 기록이 잇는 것은 보다 후대에 일군의 유다인들이 애굽으로 달아났던 사실에 관한 언급이다(43,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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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뜻에 따르기를 거부하고 유다 땅에 남거나 애굽으로 피신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더욱더 마음이 완악해져서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처한 가운데 파멸당하고 만다는 예언이다.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 이들 중에 많은 자들은 갈대아인들과 벌이는 전쟁의 칼과 기근으로 쓰러지게 될 것이다. 먼저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은 훗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중에 잡혀가는 이들은 먼저의 사건에서 교훈을 받고 돌이켜야 마땅한 것이었으나, 오히려 전보다 더욱더 마음을 굳게 하고 완악해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 대부분은 결코 귀환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이방 민족들과 뒤섞이게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