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리미야21장,소용없는 다라쉬

호리홀리 2016. 4. 1. 09:46

시드기야는 B.C. 588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부터 침략을 받자 당황하여 예레미야를 부르고 있다. 그는 본래 느부갓네살에 의해 옹립되었으나 반바벨론파의 득세로 인하여 애굽, 암몬, 두로, 모압, 시돈 등과 동맹을 맺어 바벨론에 반란을 꾀하였다(17:15). 그러나 막상 상황이 다급해지자 그는 자신이 투옥시켰던(32:2) 예레미야에게 특사를 보내어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말기야의 아들 바스훌이 등장하고 있는데, 20:1-6에 언급된 임멜의 아들 바스훌과는 동명 이인이다. 이곳의 바스훌은 더욱더 악랄하게 예레미야를 반대했었으며 훗날에 가서는 예레미야를 반역죄로 처형하려고도 하였었다(38:1-13). 그 뒤에 등장하는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스바냐는 본장에서 시드기야의 특사로 예레미야에게 왔지만 훗날에도 예레미야를 찾아오게 된다.(37:3). 그는 예레미야에 대해서 그렇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9:25-27에서 예레미야를 징책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는 유사(有司)로 언급되고 있다.

 

 여호와께 간구하라 기사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 여기서 '간구하라'(다라쉬)고 하는 말은 여호와의 생각과 뜻을 찾고자 할 때 흔히 사용되는 말이다. 구약에서는 이 말이 다양한 문맥에 산재해서 나타난다(25:22;18:15;4:29;삼상9:9;31:1;10:12 ). 시드기야는 그때로부터 약 1세기 전, B.C.701년 예루살렘이 산헤립과 앗수르 군대에 의해 포위 당했던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왕하19:35 ,36;37:36,37). 그때 여호와께서는 기사를 행하사 산헤립을 물러가게 했었다. 현 상황 역시 그때와 대단히 비슷한 상황으로서 어떤 기적이 없이는 도저히 극복될 수가 없는 처지였다. 다만 이번에는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갈대아인들과 느부갓네살(히브리어 음역은 '네부카드레차르'이며, 아카드어로는 나부-카두리-우추르임)이란 이름은 보다 완전한 형태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 장에서만도 수차례 등장한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이 이름이 '네부카드네차르'로 쓰였다(27:6,8;28:3,11;29:1,3). 그는 B.C. 605년에서 562년 사이에 바벨론을 통치했으며, 나보폴라살(B.C. 625-605)의 아들이며 후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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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절, 골짜기와 평원 반석의 거민아 - 공동번역은 '계곡을 굽어보는 예루살렘아, 벌판에 우뚝 솟은 바위야'라고 번역하여 요새로서의 예루살렘의 지형적 이점을 시각적으로 잘드러내었다. 유다 백성은 지리적 이점 때문에 예루살렘의 난공불락의 요새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다분히 조소적인 표현으로서 그들의 자만을 꼬집고 있다. 한편 본절의 '너희'2인칭 단수 여성으로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도시나 성들은 흔히 그곳 주민들의 '어미'로 표현되었으며 그 주변의 마을들은 '딸들'로 불리었다(왕하 19:21;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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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인역(LXX)에는 14절의 첫 행이 누락되어 있다. 그러나 문맥상 이 부분을 포함시키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앞 구절과는 달리 여기서 '너희'2인칭 남성 복수로 표현되고 잇는데, 이는 예루살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편 '수풀'( 야아르)이란 명사에 대해 어떤 주석가들은 이 말이 왕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설명하는 근거로서 왕상7:2에 있는 '레바논 나무로 궁(레바논 수풀 궁)을 지었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아마 이 궁을 건축하는 데는 엄청난 백향목이 소요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을 예루살렘 혹은 유다의 온 땅을 암시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로 이해하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수풀을 불에 사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9:18;10:18, D.R. J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