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16장,세가지 행위메세지

호리홀리 2016. 4. 1. 09:21

여호야김 통치 기간 

 이 땅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며 - 예언의 계시는 직접적인 설교나 상징적인 행위에 의해서 전달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한 선지자의 생애나 또는 그의 가족 생활을 통해 전달되기도 하였다. 이사야의 가족(8), 에스겔 아내의 죽음(24:15-27), 호세아의 불행한 결혼(1-3) 등은 다 후자의 경우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지 말라는 예레미야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 역시 후자의 경우를 통한 말씀 선포의 본보기 중 하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 독신 생활을 명령하는 이 같은 부르심은 대단히 독특하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 지역에서는 대가족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으로여겨졌다(2:17;127:3-5). 이런 반면에 자식이 없는 것은 저주로 간주되었다(30:1;삼상1:6-8 ). 그리고 동정(童貞)을 지킨다고 하는 것은 애곡할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것으로 여겨졌다(11:37), 따라서 독신을 명하는 본문의 상황은 유다의 종말이 가까이 와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징조였다. 수많은 백성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땅에서 죽거나 사로잡혀감으로 생이별을 당해야 하므로 자식과 아내를 둔 자들보다는 오히려 더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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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에 들어가지 말라 애곡하지 말라 - 온 백성에게 미치는 재앙이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죽음이란 미처 고려의 대상조차 될 수가 없음을 나타낸다(Clarke). 본절의 핵심은 민족적 참사가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 친지와의 사별에 대한 애도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이 백성에게서 나의 평강을 제함이니라 - '평강'이란 말은 가장 폭넓은 의미를 가진 행복의 총체를 말한다. 이제까지 변함없는 사랑과 동정을 그들애게 베풀어 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제 그것을 거두어가실 것이다. 본절에 쓰이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세 단어인 '평강'(, 솰롬), '인자'(, 헤세드), '긍휼'(, 라하임)에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제 이것들이 전부 몰수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남은 것은 재앙뿐이다. 이 같은 저주와 최종적인 재앙은 모두 언약 파기의 결과이다. 에스겔은 그의 아내의 사망에서 이와 비젼되는 파멸 상황을 보았다(24: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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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절에 언급된 바 '떡을 떼고 위로의 잔을 마시운다'는 행위에 대해서는 대략 두가지로 해석된다. (1) 죽은 자의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부정하게 여겨졌으므로 초상집에 모인 고인의 친척들을 위해 이웃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해 왔던 것을 가리킨다(삼하 3:35;24:17;9:4). (2) 죽은 자와 관련되는 애도가들의 금식이 끝났을 때 그들에게 주어졌던 것을 가리킨다(26:14;24:1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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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치집에 들어가서 마시지 말라 - '잔치집'을 대연회장이나 선술집을 가리키는 용어일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아무튼 이것은 앞의 상가와는 대조적인 위치에 있다(Bright). 클라크(Clarke)는 이를 장례 후의 연회로서 죽은 자를 달래고 생존한 친척들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런 류의 연회는 전세계에 걸쳐 널리 알려져 있는 보편적인 것이긴 하다. 그러나 다음 절에 언급되어 있는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라는 내용을 고려하건대 결혼 축하연 따위의 흥겨운 잔치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나을 것이다(7:34;25:10;33: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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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주제들로 연결되어 있는 2-8절의 내용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고 있다. 민족적 파멸에 대한 신탁의 말씀은 예레미야의 사사로운 결혼 금지 명령에 대한 메아리로서 모든 결혼식이 완전히 없어져 버릴 것임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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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절에 어급되는 어부와 포수(捕手)의 비유는 대적들에 의해 당하게 될 여러 참상들을 적절하게 밝혀준다. 여기서 어부는 유다인들을 그물에 잡듯이 하여 포로로 잡아갈 대적들을 비유하며(4:2;1:15 참조), 사냥꾼은 폐허화된 성읍들을 떠나 산속이나 계곡에 피신한 이들까지 찾아내어 살육하거나 잡아가는 대적들을 비유한 말이다(4:29;6:2;삼상13:6 참조, Delitzs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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