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예레미야서(구속사)

예레미야34장,언약적저주

호리홀리 2016. 4. 4. 16:13

바벨론 제국 내의 여러 속국에서 온 원정군들이 예루살렘 공격에 가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장면은 종주국 왕이 봉신 국가들로부터 온 파견대를 거느리고 진군하고 있는 모습이다. 봉신국이 군대를 지원하여 그 종주국의 원정을 돕는 것은 종주국과 봉신국 간의 조약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리고 '모든 성읍'이란 예루살렘 주위의 성읍을 말한다(Bright). 예루살렘과 그 주변의 성읍들에 대한 공격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유다 군대는 수세에 몰려 튼튼한 성벽이 있는 성읍들로 후퇴하여 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성읍들은 하나씩 침략자들의 공격에 무너졌으며, 마침내 철벽 같은 방어망을 구축하고 있던 예루살렘만 남았던 것이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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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에는 새로운 내용이 덧붙여져 있는데, 그것은 이 성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고대 국가들은 전쟁 때에 시체들을 불태우곤 하였다. 또 때로는 그 재를 모아서 용기에 담아 땅에 묻기도 하였다(Clarke). 아무튼 예레미야의 위협의 말씀은 이전의 것보다훨씬 더 강한 것이었다(21:4-7 참조). 그러나 시드기야는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성의 멸망이라는 실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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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눈은 바벨론 왕의 눈을 볼 것이며 - 충성 서약을 위반하고 바벨론 왕에 반역한 속국의 왕으로서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의 자비를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Bright). 이제 그는 배반한 속국의 왕으로서 종주국의 왕을 만나게 될 것이다(17:11-21). 그는 엄청난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하다. 한글 개역 성경은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고 있는데, 본문과 같은 장면은 고대 근동의 현존하는 문헌에도 잘 명시되어 있다.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과 대면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내용은 왕하 25:6, 7에도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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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 브라이트(Bright)는 이를 단순한 예언적 약속으로 보지 않고 이를 조건적 의미로 해석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주의해 듣고 항복하면 너의 생명만은 구해줄 것이다'라고 이해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톰슨(Thompson) 역시 이와 비슷하게 설명한다. 어쨌든 시드기야는 장님이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살해당하지는 않았으며 감옥에서 죽었다(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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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백성과 언약하고 자유를 선언한 후에 - 시드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맺은 언약의 내용은 9, 10절에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이 언약을 맺은 이유에 대해서는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로 갈린다. (1) 계속되는 적군의 침공 위협으로 인해 성 밖에서 자유롭게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가난한 자들은 굶주림에 시달리거나 노예로 전락하는 사례가 빈발하였따.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공격 이전에 노예 해방을 통해 그 주인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다는 견해. (2) 본문의 언약은 일종의 개혁조치의 일환으로서, 이를 통해 하나니의 은총을 받고자 했다는 견해. (3) 노예를 해방시켜 전투에 참여케 하고자 했다는 견해. 이중 두번째와 세 번째 견해가 비교적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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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 시드기야가 제안한 언약은 모든 방백과 백성들에게 수납되었다. 그리고 노예들은 자유인으로 풀려났던 것이다. 그러나 노예들이 풀려난 것은 잠시였다. 포위 공격이 잠정적으로 풀려지자 그들은 그들의 결정을 번복하여 그들의 동료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시 노예로 끌어왔던 것이다. 이들은 정말 예레미야가 수시로 언약 파기자라고 지적했던 바와 같은 그런 행동을 보인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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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 이것의 문자적 표현은 '애굽 땅에서부터, 노예들의 집에서부터'이다. 이런 표현은 모세 오경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Bright). 이들의 이와같은 번복과 배신에 대한 예레미야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이를 여호와와 이스라엘간에 맺어진 언약과 결부시켜서 설명한다. 여호와는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셨다(19:4-6). 그들 역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여호와의 능력에 의해 해방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를 다루는 문제는 언약 율법에서 대단히 중요한 항목이었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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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형제...칠 년 만에 너희는 각기 놓으라 - 형제 히브리 사람이 팔려서 6년 동안 섬겼으면 7년이 되는 해에는 그를 놓아주어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라는 명령은출 21:2-6;15:12-18에 명시되어 있다. 출애굽기의 내용은 일반적인 언급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여자 노비에 대한 사항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나 신 15장의 내용은 각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노예 해방이 제 7년으로 명시된 것은 그것이 7년 주기의마지막이고 또 안식년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또한 율법에는 제 7년에 농부들은 밭을갈거나 밭에서 나는 산물을 수확하지 말도록 규정되었다(23:10, 11;25:3-7, Thompson). 그리고 본절의 '칠 년 만에'란 말의 문자적 번역은 '매 칠 년 끝에'인데, 실제로는 '만 육 년끝'을 말한다. 따라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칠 년째가 되는 때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네게 팔렸거든'( 이마케르 레카)'그 자신을 너희에게 팔지 않을 수 없었던' 또는 '팔려지지 않을 수 없었던'으로도 번역된다. 그들이 팔려햐 했던 이유는 빚 때문이었다(B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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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되 - 그 당시 백성들은 일시적이나마 회개하고 여호와께 수납될 수 있는 행위를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노예 해방을 선언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노예 해방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 곧 성전에서 행하여졌다. 그러나 그것은 여호와를 모독하는 것이 되고 말았다.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한 언약이 곧 파기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포위 공격에서 일시적으로 풀려나자 금방 태도를 바꾸어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힘으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는 죄악을(20:7) 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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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삼았도다 - 어떤 주석가들은 B.C. 622년 요시야 당시에 있었던 언약 갱신(왕하 23:1-3)이나 또는 느헤미야 당시에 있었던 그것(9:38)과 같은 그런 보다 일반적인 언약 갱신 의식이 노예 해방 선언과 함께 치러졌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한다(Nicholson). 시드기야와 그의 백성들은 여호와를 섬기고 또 그의 율법에 순종하기로 맹세하였으며, 그 율법에는 안식년에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언약 갱신의 외형상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스라엘의 해방을 상징할 수도 있는 이런 노예 해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 문맥에는 이에 대한 암시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Thompson). 어쨌든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언약을 맺음으로써 여호와를 증인으로 내세웠으며, 여호와가 증인으로 참석한 그 언약이 파기됨으로 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더럽혀졌으며 여호와의 율법은 철저히 무시당했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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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를 선언한 것을 실행치 아니하였은즉 - 여호와의 이름이 먹칠된 이 시점에서 이제 여호와는 그들에게 칼을 내리실 것이다. 여호와는 칼과 염병과 기근의 '자유'를 내려 그들을 멸하실 것이다(Clarke). 그들이 노예 해방을 다시 번복하였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는 그들을 보호하여야 할 의무에서 그들을 해방할 것이다. 그들이 이제 불순종과 반역으로 인해 여호와의 보호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칼과 염병과 기근으로 넘겨질 것이다. 언약을 파기함으로 해서 그들은 그 언약의 저주 조항을 스스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다음절에서부터는 언약 의식에 대한 흥미있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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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아지를 둘에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 송아지를 둘로 갈라서 그 사이로 지나는 언약 의식은 창 15:10, 17에 나타나는데 이 의식의 의미는 언약 당사자들에게 언약 파기시의 저주를 일깨워주는 것이었다. , 둘로 갈라진 이 짐승의 운명이 언약을 어긴 자에게 임하게 될 것이란 의미였던 것이다. 고대 근동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언약 의식이 거행되었는데, 한 짐승을 여러 부분으로 쪼개어 언약 파기자에 대한 징벌의 상징으로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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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갠 송아지 사이로... - 쪼갠 송아지 의식에 대해서 클라크(Clarke)가 다섯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희생의 제물로 쓰이고 있는 송아지는 하나님께 바쳐졌으며, 그래서 하나님의 동의와 지지를 확보하였다. (2)희생물은 척추뼈를 세로로 절단시켜서 코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정확히 양분되게 하였고, 그리고 양편에 갈라져서 놓여야 했다. (3) 양분된 그것은 서로 마주보이도록 놓여야 했으며 그 사이로 지나가게 했다. (4) 언약에 참여한 양 당사자는 한쪽 끝에서 그사이로 지나가서 그 가운데서 만나며 그리고 거기서 언약을 맺고 만약 언약을 어기게될 경우 희생물처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저주 의식을 거행한다. (5) 마지막으로 양 당사자는 희생물을 먹으면서 잔치를 벌인다. 하나님은 (4)의 경우를 근거로 해서, 20절에서 언약을 어긴 이들 유다 백성들의 시체들로 하여금 공중의 새들과 땅 짐승의 밥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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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 원수의 손과...식물이 될 것이며 - 언약을 위반한 자들은 적들의 손에 넘어갈 것이고 그 시체는 새들과 야생 짐승들의 밥이 되도록 매장되지 못할 것이다. 이런 참혹한 광경은 본서 앞 부분에서 자주 언급되었다(7:33;16:4;19:7). 이런 저주를 받을 사람은 노예를 소유했던 모든 계층의 사람들, 곧 유다와 예루살렘의 방백들, 궁정 관리들, 제사장들, 그리고 토지 소유자들이 포함되었다(Thomp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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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에게서 떠나간 바벨론 왕의 군대의 손에 - 시드기야가 비록 언약을 주도했었고 또 노예를 해방시키긴 했지만, 그는 다른 여러면에서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이 저주에서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 구절에서 바벨론 군대가 포위 공격을 풀고 물러갔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다시 돌아올 것이고 또 예루살렘과 모든 유다 성읍들은 폐허가 될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애굽 군대가 예루살렘을 구원하기 위해 진군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위 공격을 풀고 애굽 군대를 치려고 물러났다. 이 예언이 전달된 것은 바로 이런 막간의 때였던 것 같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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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이 성을 쳐서...불사를 것이라 - 유다의 멸망이 얼마나 철저하였는지 하는 점은 최근에 조사된 고고학적 자료에서 더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올브라이트(Albright)'팔레스틴의 고고학'(Archaeology of Palestine)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B.C. 6세기 초에 대부분의 성읍들이 파괴되고, 그 이후 다시는 건설되지 않았으며, 또 그 당시 어떤 성읍들은 파괴된 지 얼마 후 다시 사람들이 거주했다...포로기 동안 파괴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었던 성읍은 단 하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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