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요한계시록강해

21과. 완전한 회복 계시록 22장: 1절 ~ 21절

호리홀리 2014. 12. 17. 13:22

21과. 완전한 회복


  성경본문: 계시록 22장: 1절 ~ 21절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재앙이 모든 식수의 근원을  오염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그 물을 먹는 자마다 다 죽었습니다. 첫 번째 회복은 22장 1절입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첫 번째 회복은 ‘맑은 생명수’입니다. 17절 끝부분에서도 ‘생명수’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이것은 물론 상징적인 것입니다. 실제로 천국에 생명수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상징화 되어진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생명수는 어디서부터 흘러내립니까?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립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입니다. 에덴의 회복입니다. 에덴에서부터 강이 갈라지면서 생명수가 흐르듯이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회복입니다. 2절 보겠습니다.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뭐가 있습니까?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창세기 3장 22절 끝부분에 보면 생명나무는 영생을 상징합니다.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영생할 수 있었지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생명나무 실과를 먹지 못하게 하고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길을 차단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누구도 에덴동산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서 다시 생명나무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계시록 22장 14절 말씀을 보면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간다고 그랬습니다. 생명나무로 나아가는 에덴동산의 길을 막으셨는데, 이제는 그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완전한 에덴의 회복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9절에도 생명나무가 기록됩니다.

  이 모든 것은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완전한 회복입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 속에도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오시면 완전한 회복이 됩니다. 나라와 민족, 가정, 교회, 공동체에도 예수그리스도가 들어오시면 완전한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당위성이 있는 것입니다. 22장 2절 끝부분을 보면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풍성한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은 에스겔서 47장의 성취입니다. 에스겔서 47장을 보면 하나님의 제단에서 생명수 물이 흘러 내려와서 죽은 땅을 살리고, 그리고 많은 실과를 맺히는 장면이 나오고 있습니다. 바로 에스겔서 47장의 완전한 회복입니다. 3절 보겠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완전한 회복에는 다시 저주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그리스도 때문입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노아의 홍수로 세상을 다 쓸어 버리셨지만 노아가 하나님께 단을 쌓을 때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언약을 세우시면서 내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그 말씀이 본 절에 해당됩니다. 4절 보겠습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완전한 회복이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인간이 하나님을 보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는 하나님과 대면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속되었지만 범죄한 후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볼 수조차 없습니다. 위대한 모세도 하나님의 일부분을 볼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조차 우리에게 완전하게 계시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얼굴을 볼 터이요. 이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완전한 회복은 3절 끝에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고, 5절 끝부분에는 누리는 삶입니다. 이 누리는 삶은 왕 노릇 하는 삶입니다. 여기에서 왕은 세속적 통치자 같은 왕이 아닙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창조하시고, 다음에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특별한 명령이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정복하고 다스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통치를 위임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이름을 지으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바로 왕 노릇 하는 삶은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섬기며 누리는 삶은 우리가 바로 사는 현재에서도 나타나야 할 줄 믿습니다.    섬기는 삶이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의 회복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이 땅에서도 누리는 삶, 즉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위임받아 정복하고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절부터는 결론의 결론입니다. 마지막 결론의 최종 결론입니다. 에필로그에 해당됩니다.

  마지막 결론을 종합해 보면 몇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에는 7번 반복을 이야기 하는데 22장에 두 번 나옵니다.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는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지만 본 절은 말씀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10절 보겠습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인봉하는 것은 비밀이고 밝혀지지 않는 것이지만 인봉하지 말라는 말은 빨리 보여주고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급한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냥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씀의 권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16절 보겠습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라고 말씀합니다. 18절 보겠습니다.


  “18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 예언의 말씀을 누구든지 더하거나 19절에 이 예언의 말씀을 제하여 버리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강력한 말씀을 합니다. 20절 보겠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로는 말씀의 권위를 강조합니다. 말씀을 더하거나 빼거나 하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냥 사도요한이 보고 들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결론의 결론은 계속 반복되는 7절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12절에도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20절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에 보면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는 말씀으로 계시록을 시작합니다. 이제 마지막 결론에서도 ‘속히 오리라’라고 할 때 성도들의 대답은 20절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이때 22절은 화답의 말씀으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합니다. 마지막 결론의 결론 말씀은 7절로, 이 예언의 말씀을 꼭 지킬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